▒ 가정선생글 ▒ 204

서(序) 계림부공관 서루시서(鷄林府公館西樓詩序) -이곡(李穀) -

서(序) 계림부공관 서루시서(鷄林府公館西樓詩序) 내가 동경(東京 경주(慶州)) 객사에 이르러 동루(東樓)에 오르니 별로 아름다운 경치가 없으므로, 서루(西樓)에 오르니 자못 장대하고 아름다우며 탁 트여서 성곽(城郭)과 산천을 한꺼번에 다 볼 수 있었다. 삼장법사(三藏法師) 선공(旋公)의 대서(代書)..

서(序) 송 김회옹 부 화평부서(送金晦翁赴化平府序) -이곡(李穀) -

서(序) 송 김회옹 부 화평부서(送金晦翁赴化平府序) 내가 도하(都下 중국)에 있을 적에 들으면 새로 수령(守令)으로 제수된 자들이, “어떤 주는 장기(?氣)가 있어 살 수 없다. 어떤 현은 그 습속이 완악하고 어리석어서 다스릴 수 없다고 하거나, 그 다음에는 고향과 거리가 너무 멀어 가기가 어렵다. 봉..

서(序) 하 최시승 등제시서(賀崔寺丞登第詩序) -이곡(李穀) -

서(序) 하 최시승 등제시서(賀崔寺丞登第詩序) 선비를 선출하는 법은 오래되었다. 그 과목이 늘어나고 줄어든 것은 세대마다 비록 동일하지 않으나 빈흥(賓興) 하고 작록(爵祿)하는 데 문ㆍ무를 쓰는 것은 일찍이 다름이 없다. 그러므로 육예(六藝)가 삼물(三物)의 하나를 차지하고 사어(射御)는 그 가..

서(序) 송 백운빈 환도서(送白雲賓還都序) -이곡(李穀) -

서(序) 송 백운빈 환도서(送白雲賓還都序) 우리 서울이 중국 서울과 거리가 겨우 4천 리 밖에 되지 않고, 또 가는 길이 위험하거나 경삽(梗澁)한 염려가 없으므로 급히 달리는 역마(驛馬)가 줄을 이어 상인 나그네들의 걸음이 밤낮으로 끊어지지 않는데, 유독 벼슬길에 노니는 자가 오지 않는 것은 무슨 ..

서(序) 기 박지평시서(寄朴持平詩序) -이곡(李穀) -

서(序) 기 박지평시서(寄朴持平詩序) 전 감찰지평(監察持平) 박윤문(朴允文) 질부(質夫)는 선대가 밀성군(密城郡)에서 살았는데, 그 형 중랑장(中郞將) 윤겸(允謙)이 인척의 관계로 복주(福州)에 살면서 대부인을 맞아들여 봉양하였다. 지원(至元) 무인년 8월에 대부인이 세상을 떠나자 그곳에서 장사하..

서(序) 송 신시승 입조서(送辛寺丞入朝序) -이곡(李穀) -

서(序) 송 신시승 입조서(送辛寺丞入朝序) 황제가 즉위한 지 8년 봄 2월에 승상으로 전권(專權)한 자를 내쫓고 크게 천하에 포고하여 정치 풍화를 일신하게 하니, 조정이 깨끗하고 기강이 엄숙해졌다. 그래서 일월이 비치는 곳에 무릇 혈기가 있는 자는 춤을 추며 황제의 성덕(聖德)을 노래하고 읊조리..

서(序) 송 홍밀직 출진 합포서(送洪密直出鎭合浦序) -이곡(李穀) -

서(序) 송 홍밀직 출진 합포서(送洪密直出鎭合浦序) 원 나라가 천하를 차지하여 만방을 신하로 삼았는데, 유독 왜인이 굴복하지 않으므로, 세조(世祖) 황제는 장수에게 명하여 남북으로 군사를 내보내어 동해에서 회합하는데, 전함(戰艦)이 공지를 메우고 깃발이 햇볕을 가리니, 왜인이 기(氣)가 질리..

서(序) 송 김동년 동양 유상국서(送金同年東陽遊上國序) -이곡(李穀) -

서(序) 송 김동년 동양 유상국서(送金同年東陽遊上國序) 초왕(楚王)이 박옥(璞玉)을 의심한 것은 박옥이 아름답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요, 노(魯) 나라 사람이 원거(爰居)를 제사(祭祀)지낸 것은 원거가 덕이 있는 소치가 아니다. 예나 지금에 있어 사군자(士君子)의 진퇴도 대개 이와 같다. 동년 김수..

서(序) 송 수정장로서(送水精長老序) -이곡(李穀) -

서(序) 송 수정장로서(送水精長老序) 이곡(李穀) 공자가 돌아가자 부도(浮圖)씨가 나와서 유(儒)와 함께 대립하였는데, 그 교(敎)가 공적(空寂)하고 고원하여, 세상의 생리와 소활하기 때문에 공자를 위하는 자는 배척하게 된다. 당 나라의 한 이부(韓吏部 한유)같은 이가 더욱 대단하였다. 그러나 그 글..

기(記) 한주 중영객사 기(韓州重營客舍記) -이곡(李穀) -

기(記) 한주 중영객사 기(韓州重營客舍記) 이곡(李穀) 지정 기축년 가을에 비가 심하여 마산(馬山) 객관(客觀)의 남쪽 낭사(廊舍)가 무너졌다. 비가 이미 개고 농사 또한 한가하니 고을 사람들이 수축하려 하였다. 군수 박군(朴君)이 말하기를, “남쪽 낭사뿐 아니라 청사도 거의 무너졌는데, 왜 한 번에 ..

기(記) 영주 회고정 기(寧州懷古亭記) -이곡(李穀) -

기(記) 영주 회고정 기(寧州懷古亭記) 지정 기축년 윤달에, 내가 한주(韓州)로부터 영주(寧州)를 거쳐 서울로 가는데, 그 고을 군수 성군(成君)이 고을 정자의 이름을 짓기를 청하며 말하기를, “옛날에 우리 태조가 장차 백제를 치려 하는데 술자(術者)가 말하기를, ‘만일 왕자(王字) 성(城)의 세 용이 ..

기(記) 신효사 신치 상주 기(神孝寺新置常住記) -이곡(李穀) -

기(記) 신효사 신치 상주 기(神孝寺新置常住記) 지정 기축년 봄에 신효법사(神孝法師) 수공(修公)이 나에게 청하기를, “내가 어려서부터 종적을 여기에 의탁하였는데 이제는 이미 늙었다. 예날 우리 충렬왕(忠烈王)께서 이 절을 중흥(中興)시켰는데, 그 때에는 전세(田稅)로 해마다 들어오는 수입이 적..

기(記) 영해부 신작 소학 기(寧海府新作小學記) -이곡(李穀) -

기(記) 영해부 신작 소학 기(寧海府新作小學記) 예주(禮州)의 소학(小學)은 장서기(掌書記) 이천년(李天年)이 지은 것이다. 이군이 부(府)에서 보좌관으로 있으면서 제생(諸生)을 보고 말하기를, “본국의 향교제도는 사당과 학교가 한 집 안에 있으니, 무례한 행동에 가까운데다가 또 여러 아이들을 끌..

기(記) 고려국 증 광정대부 밀직사 상호군 박공 사당 기-이곡(李穀) -

기(記) 고려국 증 광정대부 밀직사 상호군 박공 사당 기(高麗國贈匡靖大夫密直使上護軍朴公祠堂記) 유원(有元) 조열대부 동지대도로 제색민장 도총관부사(朝烈大夫同知大都路諸色民匠都摠管府事) 박군(朴君) 쇄노올대(?魯兀大)가 이미 그 선인(先人)을 위하여 신복사(神福寺) 중흥비(重興碑)를 세우..

대도 곡적산 신작 나한 석실 기(大都穀積山新作羅漢石室記) -이곡(李穀) -

기(記) 대도 곡적산 신작 나한 석실 기(大都穀積山新作羅漢石室記) 지정 갑신년 겨울에, 대부태감(大府太監) 주완자첩목아(朱完者帖木兒)가 서산(西山)을 유람하다가 석실(石室)을 찾으니, 두 개의 구멍이 동서로 서로 마주 대하고 있는데, 그 사이는 다섯 길 가량 되고, 그 북쪽 언덕은 벽처럼 섰다. 군..

기(記) 대원 증 봉훈대부 요양등처 행중서성 좌우사랑 중비기위 요양현군 조공 묘형 기-이곡(李穀) -

기(記) 대원 증 봉훈대부 요양등처 행중서성 좌우사랑 중비기위 요양현군 조공 묘형 기(大元贈奉訓大夫遼陽等處行中書省左右司郞中飛騎尉遼陽縣君趙公墓瑩記) 지정 4년 4월 15일, 중정원사(中政院使) 조공(趙公)이 그 아우 이용소감(利用少監) 완택(完澤)을 보내 와서 말하기를, “내가 무종(武宗) 때..

기(記) 대도 천태 법왕사 기(大都天台法王寺記) -이곡(李穀) -

기(記) 대도 천태 법왕사 기(大都天台法王寺記) 이곡(李穀) 지정(至正) 3년 계미년 봄에 법왕사(法王寺)가 완공되었다. 영록대부(榮祿大夫) 태의원사(太醫院使) 조공(趙公)이 나에게 기(記)를 청하며 말하기를, “나는 고려 영춘(永春) 사람으로, 지난 지원(至元) 계사년부터 내시(內侍)로 뽑혀서 액정(掖..

기(記) 한국공 정공 사당 기(韓國公鄭公祠堂記) -이곡(李穀) -

기(記) 한국공 정공 사당 기(韓國公鄭公祠堂記) 사당 짓고 제사지내는 제도는 옛날부터이다. 그 어버이를 섬기는 자는 집에 사당을 짓고, 성스럽고 어질고 공덕(功德)이 있는 자는 나라나 고을에 사당을 지었으니, 그 제도를 상고할 수 있다. 한(漢)나라 이후로 예절이 때에 따라 변하여 사당에 영정을 ..

기(記) 대원 고려국 광주 신복선사 중흥 기(大元高麗國廣州神福禪寺重興記)

기(記) 대원 고려국 광주 신복선사 중흥 기(大元高麗國廣州神福禪寺重興記) 동지민장총관부사(同知民匠摠管府事) 박군(朴君)이 나에게 와서 말하기를, “내가 약관(弱冠)의 나이에 부모를 하직하고 황제의 조정에 내시가 되어 무종(武宗) 때부터 두터운 은택을 입었고, 인조(仁祖)가 황통(皇統)을 계승..

기(記) 조정숙공 사당 기(趙貞潚公祠堂記) -이곡(李穀) -

기(記) 조정숙공 사당 기(趙貞潚公祠堂記) 지정(至正)으로 원년을 고치던 봄에 내가 정동막(征東幕)에 있을 때 찬성사(贊成事) 조공이 그 조카 평원군(平原君)과 가전(家傳)을 가지고 와서 나의 글을 청하며 말하기를, “선군(先君) 정숙공(貞肅公)의 공로가 사직에 있어 덕을 후세에 전해야 할 것인데, ..

기(記) 경사 곡적산 영암사 석탑 기(京師穀積山靈巖寺石塔記) -이곡(李穀) -

기(記) 경사 곡적산 영암사 석탑 기(京師穀積山靈巖寺石塔記) 영암사의 동쪽 봉우리 석탑은 전 동지민장총관부사 박쇄노올대(前同知民匠摠管府事朴?魯兀大)가 사리(舍利)를 보관한 곳이다. 사리가 있는 곳에 탑이 있는 것은 불서에 기재되어 있으니, 석가여래께서 살아 있을 때에 칠보(七寶)로 된 것..

기(記) 신작 심원루 기(新作心遠樓記) -이곡(李穀) -

기(記) 신작 심원루 기(新作心遠樓記) 중향 대사가 보광사를 중흥한 것은 내가 이미 기문을 지었는데 다시 그 동북 모퉁이에 누를 짓고 나에게 이름을 묻길래, “이름은 실상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으로, 물건에 이름을 짓는 것도 그 닮은 것을 따르는 것이다. 나의 귀와 눈으로 듣고 보지도 못하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