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시모음집 ▒ 105

산을 보면 산이었고 물을 보면 물이었다.-靑源惟信-

老僧이 30년 전 參禪하러 왔을 때는 산을 보면 산이었고 물을 보면 물이었다. 뒤에 와서 善知識을 친견하고 깨달아 들어간 곳이 있게 되자, 산을 보아도 산이 아니었고 물을 보아도 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몸뚱이 쉴 곳을 얻으매 예전처럼 산을 보면 산이요 물을 보면 물일 뿐이로다.   性澈 스님..

말이 사람 놀라게 해야지 꾸밈만으론 안되지.〈論詩詩〉-都穆-

學詩渾似學參禪/ 시 배움은 흡사 참선 배움 같거니語要驚人不在聯/ 말이 사람 놀라게 해야지 꾸밈만으론 안되지.但寫眞情幷實境/ 단지 眞情과 實境만을 그려낼 뿐任他埋沒與流傳/ 묻히고 전함은 내 맡겨 둘 일이다.     말이 사람을 놀래키려면 어떠해야 할까? 낡고 정체된 인식을 깨부수는, 정신이..

앞 사람을 흉내내면 그 누가 알아주리.〈論詩詩〉- 都穆-

學詩渾似學參禪/ 시 배움은 흡사 參禪 배움 같거니筆下隨人世豈傳/ 앞 사람을 흉내내면 그 누가 알아주리.好句眼前吟不盡/ 좋은 시귀 눈 앞에서 끝없이 읊조려도痴人猶自管窺天/ 어리석은 이들은 우물안 개구리라.   예전 佛法의 大義를 묻는 제자의 물음에 臨濟는 喝로, 德山은 몽둥이로 대답하..

시 배움은 흡사 參禪 배움 같거니〈論詩詩〉-都穆-

學詩渾似學參禪/ 시 배움은 흡사 參禪 배움 같거니 不悟眞乘枉百年/ 眞諦를 깨닫잖콘 백년이 부질없다切莫嘔心幷剔肺/ 심장 토하고 폐부 도려냄도 더할 나위 없겠지만須知妙悟出天然/ 妙悟는 天然에서 나옴을 알아야지.   깨달음 없는 參禪은 공연히 제 몸을 들볶는 것이나 같다. 살아 숨쉬는 깨달..

시 배움은 흡사 參禪 배움 같거니〈學詩詩〉-吳可-

學詩渾似學參禪/ 시 배움은 흡사 參禪 배움 같거니 竹榻蒲團不計年/ 대 걸상 부들 자리에 해를 따지지 않네. 直待自家都了得/ 스스로 깨쳐 얻음을 얻게 되면 等閑拈出便超然/ 멋대로 읊조려도 문득 초연하리라. 北宋의 시인 吳可의 〈學詩詩〉이다. 대나무 걸상 위에 부들 자리를 깔고 坐禪을 오래 했..

시는 禪客에게 비단 위 꽃이 되고 禪은 詩家의 玉을 끊는 칼이라네-元好問-

詩爲禪客添錦花/ 시는 禪客에게 비단 위 꽃이 되고 禪是詩家切玉刀/ 禪은 詩家의 玉을 끊는 칼이라네   禪客이 參禪의 길에서 깨달은 奧義를 詩의 형식을 빌어 쓰니 錦上添花가 아닐 수 없다. 詩人은 또 禪의 방식을 빌어 자신의 意象을 표현하니 切玉刀를 지닌 셈이라는 것이다. 禪學이 발흥한 宋나..

좋은 시 잠시 빌려 긴 밤 새우다 〈跋李端敍詩卷後〉에서, -蘇軾-

暫借好詩銷永夜/ 좋은 시 잠시 빌려 긴 밤 새우다每逢佳處輒參禪/ 좋은 곳을 만나면 문득 參禪하네.  깊은 밤 고요히 앉아 시를 읽다가 得意會心의 구절과 만나면 시집을 놓고 고요히 三怡의 禪定에 빠져든다는 것이다. 이럴 때 그에게 있어 詩를 읽는 것은 禪의 話頭를 參究함과 다름이 없다.

詩心을 어떻게 전한단 말인가〈寄鄭谷郞中〉에서,-齊己-

詩心何以傳/ 詩心을 어떻게 전한단 말인가所證自同禪/ 증명함이 절로 禪과 같구나. 詩心을 설명하기나 禪을 설명하기나 '不立文字, 敎外別傳'의 전수임에는 한 치의 차이가 없다. 禪을 말로 설명할 수 없듯이, 詩의 깨달음 또한 언어의 영역 밖에 있다. 수많은 이론가들이 詩論을 집필하였어도, 그 글..

杜甫는 "시 짓고 用事함은 마땅히 禪家의 말과 같아야 한다.

說禪作詩, 本無差別 杜甫는 "시 짓고 用事함은 마땅히 禪家의 말과 같아야 한다. 물 속에 소금이 녹아 있어도 물을 마셔 보아야 소금의 짠 맛을 알 수가 있듯이."라고 말했다. 시의 언어는 물 속에 녹아든 소금의 맛과 같아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있는 맛, 접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뜻, ..

날마다 산을 봐도 또 보고 싶고〈居山詩〉-盓止-

日日看山看不足/ 날마다 산을 봐도 또 보고 싶고時時聽水聽無厭/ 물 소리 늘 들어도 싫증나잖네.自然耳目皆淸快/ 저절로 귀와 눈 맑게 트이니聲色中間好養恬/ 소리와 빛깔 속에 마음 기른다. 산은 언제나 거기 그렇게 서 있고, 나는 언제나 여기 이렇게 산을 바라본다. 물은 쉬임 없이 흘러가며 無上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