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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詩, 깨달음의 바다

천하한량 2007. 5. 15. 17:05
禪詩, 깨달음의 바다

안목 없는 세상은 자꾸만 길을 따라 오라고 요구한다. 이렇게 쓰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요한다. 시는 끊임 없는 반란의 산물이어야 한다. 친숙한 관습과의 결별, 익숙해진 접점에서 벗어나기를 없이 추구해야 한다.

산은 산, 물은 물

老僧이 30년 전 參禪하러 왔을 때는 산을 보면 산이었고 물을 보면 물이었다. 뒤에 와서 善知識을 친견하고 깨달아 들어간 곳이 있게 되자, 산을 보아도 산이 아니었고 물을 보아도 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몸뚱이 쉴 곳을 얻으매 예전처럼 산을 보면 산이요 물을 보면 물일 뿐이로다.

性澈 스님의 法語로 해서 유명해진 靑源惟信 선사의 公案이다. 禪師는 30년 간의 수행 끝에 처음 본래 자리로 돌아와 앉아 있다. 그러고 보면 30년의 공력은 본래 자리로 돌아오기 위한 고초일 뿐이었다. 한때 눈 앞이 번쩍 열리는 깨달음의 빛 속에서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닌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와 다시 보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일 뿐이다. 무엇이 어떻다는 말인가? 3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그 사이의 소식을 알 수 있다면 그는 이미 깨달음의 경계에 진입한 자일 터이다.

이 뜻을 받아 고려 때 慧諶은 다시 이렇게 말한다.

하늘이 땅이고 땅이 곧 하늘이라. 산은 물이요 물은 산이로다. 중은 속인이요, 속인이 중이로다. 이 이치를 이미 깨닫는다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며, 중은 중이고 속인은 속인일러니.

이것이 무슨 말인가? 이 깨달음의 경지를 그는 다시 부연한다.

깨달은 자는 布孱尊者가 똥덩이를 들고서 "이것이 극락세계다"라 하고, 마른 생선 조각을 들고서 "이것이 도솔천의 궁전 밑이다."라 한 뜻을 알게 될 것이다. 깨달은 자는 절굿대에 꽃이 피고, 부처의 얼굴이 온통 추함을 알게 될 것이다. 깨달은 자는 빈 손에 호미를 쥐고 머리로 걸어가며, 물소를 타고서 사람이 다리 위를 지나는데, 다리가 흐르고 물은 흐르지 않는 이치를 알게 될 것이다.

禪家의 깨달음은 미묘하여 말로 세워 전할 수가 없다. 初祖 達摩가 동쪽으로 건너 와 말로도 세울 수 없고 가르침으로도 전할 수 없는 "敎外別傳, 不立文字; 直指人心, 見性成佛"의 법을 전한 이래, 새로운 사유의 방식을 제시한 禪風이 중국에서 크게 진작되었다.

禪이란 무엇인가. 梵語의 Dhyana를 옮긴 이 말은 원래는 '瞑想'의 의미를 지녔다. 禪은 달리 '靜慮' 또는 '思惟修'라 옮기기도 하나, '定慧'와 같은 뜻으로 보기도 한다. 圭峯 宗密은 《禪源諸詮集》에서 "근심과 기쁨을 마음에서 잊는 것, 이것이 바로 禪. 憂喜心忘便是禪"이라 하였다. 또《南天竺國菩提達摩禪師觀門》이란 불경에 보면, 달마와 제자 사이에 禪의 의미를 두고 다음과 같은 문답이 보인다.

묻기를,

"무엇을 이름하여 禪定이라 합니까?"

대답하기를,

"禪은 어지러운 마음이 일어나지 않음을 말하나니, 생각도 없고 움직임도 없는 것이 禪定이니라. 마음을 단정히 하고 생각을 바로 하여, 生도 없고 滅도 없으며 감도 없고 옴도 없이 고요히 움직이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禪定이라 하느니라. 말을 비우고 생각을 정히 하여 마음으로 깨달아 고요 속에 침잠하여, 갈 때나 머물 때나 앉았거나 누웠거나 언제나 고요하여 흐트러짐이 없는 까닭에 禪定이라 하느니라."

내가 나를 잊어, 나도 없고 物도 없는 자리, 일체의 경계가 모두 허물어지고 난 그 텅빈 허공, 이것이 禪의 세계이다. 이 세계는 澄心相照, 洞然自得의 깨달음이 있을 뿐, 언어와 사변으로서는 도달할 길이 없다.

慧諶은 위 같은 글에서 懷讓禪師의 시를 인용하고 있는데,

懷州 땅의 소가 풀을 뜯는데
益州의 말이 배가 터졌네.
천하에 의원을 찾아가 보니
돼지의 어깨 위에 뜸질을 하네.
懷州牛喫草
益州馬腹脹
天下覓醫人
炙猪左膊上

라 하였다. 말 그대로 言語道斷이다. 풀은 懷州의 소가 먹었는데, 수천리 떨어진 益州의 말이 배가 터진다. 고쳐 달라고 의원을 찾아가니 엉뚱하게 돼지의 어깨에다 뜸질을 한다. 럭비공처럼 이리저리 튀니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아니 慧諶은 아예 갈피를 잡을 생각은 버리라고 요구하는 듯 하다. '離言絶慮', 말을 떠나고 생각이 끊어진 곳, 그곳의 소식은 언어로 설명하려 하면 이렇듯 헛김이 샌다. 언어의 집착에서 벗어나라. 분별하는 생각을 끊어라.

바다 밑 제비 둥지에 사슴이 알을 품고
불 속 거미집선 고기가 차 달이네.
이 집안 소식을 뉘 능히 알리
흰 구름 서편으로, 달은 동으로.
海底燕巢鹿胞卵
火中蛛室魚煎茶
此家消息誰能識
白雲西飛月東走

근대의 禪客 曉峯禪師의 悟道頌이다. 말이 꼬여도 한참 꼬였다. 허공을 나는 제비의 집이 어째 바다 밑바닥에 있으며, 태생동물인 사슴은 어쩐 일로 바다 속 제비 둥지에 들어와 알을 품고 있는가. 불 속에 거미집이나, 거기에 올라와 차를 달이는 물고기에 와서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달은 서편에 떨어지는 것인데, 어찌 동으로 달려가는 이치가 있는가. 꼬집어 내려 하면 할 수록 오리무중이다. 시인이 말하고 있는 '이 집안 소식'의 정체는 무엇일까. 曉峯 스님의 다음 法語에서도 이러한 '反常'은 계속된다.

누구든 四相山을 건너랴거든
토끼 뿔 지팡이를 짚어야 하고,
生死의 바다를 건너려 하면
밑 빠진 배를 타야 하리라.
若人欲越四相山
也要須杖兎角杖
若人欲渡生死海
也要須駕無底船

토끼에게 무슨 뿔이 있으며, 설사 있다 한들 상아가 아닌 다음에야 어찌 지팡이로 만들 수 있으랴. 밑 빠진 배를 타고 건널 수 있는 바다는 어떤 바다인가? 읽을수록 알쏭달쏭하고 들을수록 해괴하다. 그렇다고 그 누구도 四相山과 生死海를 건널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니, 행간의 뜻은 찾을수록 첩첩산중이다.

그림자 없는 나무를 베어와서는
물 속의 거품에다 태워 버린다.
우습구나, 소를 타고 있는 이
소 타고서 다시금 소를 찾다니.
斫來無影樹
痡燼水中埖
可笑騎牛者
騎牛更覓牛

西山大師가 高弟 逍遙 太能禪師에게 내린 偈頌 가운데 한 수이다. 이번에는 그림자 없는 나무를 물 속에서 태워 버린다고 한다. 무슨 말인가? 그래도 3.4구는 좀 알아들을 법 하다. 소를 타고 있는 이가 소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니 말이다. 불가에서 '覓牛'는 求道와 같다. 道의 실체를 붙들고 있으면서도 迷妄에 사로잡혀 자꾸만 몸 밖에서 소를 찾는다는 말이다.

온갖 경전의 말 표지와 같아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봐야지.
달 지고 손가락 잊어 아무 일 없거니
배 고프면 밥 먹고 곤하면 자네.
百千經卷如標指
因指當觀月在天
月落指忘無一事
飢來喫飯困來眠

逍遙 太能의 시이다. 온갖 경전에 쓰여진 佛法의 말씀들은 모두 깨달음의 바다로 이끌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경전 탐구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손을 들어 달을 가리키는데, 달은 안 보고 손가락만 보고 있으니 이 아니 안타까운가. 그러나 따지고 보면 本來無一物이어늘 어디에서 티끌 생각이 일어난단 말인가. 달도 지고 손가락도 잊은 그곳, 분별하고 思量하는 마음조차 끊어진 그곳에서 하는 일이란 배 고프면 밥 먹고 피곤하면 잠 자는 것 뿐이다. 언어를 버려라. 생각을 버려라. 그 생각을 버려야겠다는 생각마저 버려라. 그때 깨달음의 세계가 통쾌하게 열리리라.

 

禪機와 詩趣

일본의 타쿠안(澤庵) 화상은 유명한 검술가였다. 그는 제자인 야규우에게 검술에 대한 충고의 말을 남겼다. 그 충고의 핵심은 항상 마음을 '흐르는' 상태로 유지하라는 것이었다. 진정한 검술은 의식적으로 얻어진 기술적 기교를 넘어서는 것이다. 높은 경지의 검술가는 적과 마주하여 서 있을 때, 적도 자신도 적의 검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모든 기교를 잊고 무의식의 명령에 몸을 맡기고 서 있다. 검을 휘두르는 것은 이제 그가 아니다. 실제 어떤 검술가들은 적을 쓰러뜨리고 나서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스즈끼 교수의 《禪과 精神分析》이란 책에 실려 있는 이야기이다. 항상 '흐르는' 상태로 마음을 유지하라. 흘러가는 상태에 자신의 정신을 얹으라.

開心寺에 가면 尋劒堂이란 건물이 있다. 또 五代의 시인 靈雲 志勤禪師의 悟道頌에도 求道의 추구를 劍客을 찾아 다님에 비유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삼십 년 세월 동안 검객 찾느라
그 몇 번 낙엽 지고 새 닢 났던가.
단 한번 복사꽃 보고 나서는
이 날에 이르도록 의심 없다네.
三十年來尋劍客
幾回落葉又抽枝
自從一見桃花後
直至如今更不疑

최고의 高手를 만나 상승의 검법을 익히려고 삼십 년의 세월을 방황했었다. 낙엽 지는 가을 산과 꽃망울 부프는 봄 뫼를 헤매기 그 얼마였던가. 그러나 정작 그가 그 방랑의 길에서 전신으로 만난 것은 그토록 찾아 헤매던 劍客이 아니라, 어느 산 모롱이에 무심히 피어나던 복사꽃 한떨기였다. 그 한번의 만남으로 그는 지금까지 지고 다니던 의심의 자락에서 완전히 놓여날 수 있었다. 劍客은 어디 있는가. 마음이 흘러가는 곳, 마음의 문이 열려 사물과 내가 하나 되는 자리에 있다. 함초롬 이슬 머금은 꽃잎 위에 칼끝 같은 깨달음이 있다.

예전 선승들은 깨달음을 묻는 제자에게 棒이나 喝을 안겨주거나, 아니면 아예 주먹질을 하는 등의 방법을 썼다. 그도 저도 안될 때에는 示法偈를 남겼는데, 그 깨달음의 세계란 것이 워낙에 미묘하고 알기 어려운 것이어서 구체적인 설명 대신에 앞서 본 것과 같은 해괴한 상징과 비유를 동원하여 그들의 悟性을 열어주려 하였다. 그밖에 도를 깨닫는 순간의 느낌을 노래하는 悟道頌 같은 것도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길 없는 깨달음의 경지를 비유와 상징의 화법으로 전달하려 하였다. 禪의 사유와 詩의 방법은 이 지점에서 서로 만나게 된다. 고려 때 선승 景閑은 〈祖師禪〉이란 글에서 시와 선이 만나는 지점을 이렇게 설명한다.

"達摩가 동쪽으로 온 까닭은 무엇입니까?"하고 물으면, "아득히 강남 땅 2,3월을 생각자니, 자고새 우는 곳에 온갖 꽃 향기롭네. 遙憶江南三二月, 澝嘑啼處百花香"라고 대답한다. 또 스님이 "祖師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으면, 대답하기를, "뉘엿한 해에 강과 산은 곱기도 하고, 봄 바람에 꽃과 풀은 향기롭구나. 遲日江山麗, 春風花草香"라고 한다. 또 이르기를, "산 꽃이 활짝 피자 비단만 같고, 시내물은 쪽빛보다 더욱 푸르다. 山花開似錦, 澗水碧於藍"라고도 한다.

이것을 묻는데 저것을 대답한다. 도무지 요령부득의 東問西答이다. 그러면서도 聲東擊西, 指桑罵檜의 통쾌함이 있다. 다음 禪僧들의 몇 편 시는 禪機와 詩趣가 한데 넘나, 詩禪一如의 높은 경계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는 경우이다.

배 고파 밥 먹으니 밥맛이 좋고
일어나 차 마시니 차맛이 달다.
후진 곳 문 두드리는 사람도 없어
텅 빈 암자 부처님과 함께 함이 기쁘다.
飢來喫飯飯尤美
睡起畆茶茶更甘
地僻從無人垽戶
庵空喜有佛同龕

盓止의 〈閑中偶書〉란 작품이다. 배 고프면 밥 먹고, 잠깨어 목마르면 차를 마신다. 외진 곳에 자리한 빈 암자엔 아무도 찾는 이 없어 사립문은 늘 걸린 그대로이고, 그 속에 한 스님이 부처님과 함께 불당에 앉아 있다. 그는 '기쁘다'고 말한다.

흰 구름 쌓인 곳에 세 칸 초가집
앉아 눕고 쏘다녀도 제 절로 한가롭네.
시냇물은 졸졸졸 般若를 속삭이고
맑은 바람 달빛에 온 몸이 서늘하다.
白雲堆裡屋三間
坐臥經行得自閑
澗水巉巉談般若
淸風和月遍身寒

고려 말의 禪僧 慧勤의 〈山居〉란 작품이다. 배 고프면 밥 먹고, 곤하면 자는 생활이지만 무위도식과는 엄연이 다르다. 흰 구름 속 초가 삼간에서도 일말의 누추를 찾을 길 없다. 시냇물은 졸졸졸 흘러가며 般若의 설법을 들려주고, 맑은 바람과 흰 달빛은 내 정신을 쇄락케 한다.

구슬 발 걷어서 산 빛 들이고
대통 이어 시냇물 소릴 나누네.
아침내 아무도 오지를 않고
두견새 제 홀로 이름 부른다.
卷箔引山色
連筒分澗聲
終朝少人到
杜宇自呼名

盓止의 〈閑中雜詠〉 가운데 한 수이다. 발을 걷어 산빛을 방안으로 끌어 들이고, 대통을 이어서 시냇물 소리를 뜰 안에서 듣는다. 산빛과 시냇물 소리를 함께 하는 아침, 아무도 이 興趣를 깨는 이 없다. 이따금 적막을 견디다 못한 두견새가 제 이름을 부르며 울 뿐이다. 다시 그의 〈居山詩〉 한 수를 보자.

날마다 산을 봐도 또 보고 싶고
물 소리 늘 들어도 싫증나잖네.
저절로 귀와 눈 맑게 트이니
소리와 빛깔 속에 마음 기른다.
日日看山看不足
時時聽水聽無厭
自然耳目皆淸快
聲色中間好養恬

산은 언제나 거기 그렇게 서 있고, 나는 언제나 여기 이렇게 산을 바라본다. 물은 쉬임 없이 흘러가며 無上의 설법을 들려준다. 산 빛을 채워 해맑고, 물소리로 씻어 깨끗해진 눈과 귀를 안으로 돌려 고요 속에 마음을 기른다.

높은 누대 홀로 앉아 잠 못 이루니
쓸쓸히 외론 등불 벽 위에 걸려있네.
창 밖으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뜰 앞에서 들리는 솔방울 지는 소리.
高臺獨坐不成眠
寂寂孤燈壁裏懸
時有好風吹戶外
却聞松子落庭前

조선조 靜觀禪師가 金剛臺에 올라 지었다는 시다. 사바의 세계는 구름 아래 펼쳐져 있고, 그 위의 스님은 잠 못 이룬다. 속세에 두고 온 까닭 모를 근심이 있는 것도 아닐진대, 가물거리는 외로운 등불은 모두 잠들어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菩提의 불빛이 아닐 것인가. 꺼지지 않는 등불과 오롯이 깨어있는 나는 등가의 심상으로 교감한다. 바로 그때 바람은 그 마음을 헤아렸다는 듯이 문풍지를 흔들고, 또 솔방울은 소리를 내며 뜨락으로 떨어진다.

더듬어 지나온 길 예순 일곱 해
오늘 아침 이르러 모든 일 끝나도다.
고향 돌아가는 길 평탄도 한데
갈 길이 뚜렷하여 길 잃지 않겠구나.
수중엔 겨우 지팡이 하나지만
도중에 다리 품 덜어줌 기뻐하노라.
閱過行年六十七
及到今朝萬事畢
故鄕歸路坦然平
路頭分明曾未失
手中瀮有一枝嚂
且喜途中脚不倦

盓止 스님의 〈臨終偈〉이다. 어떤 삶 끝에서 이렇듯 투명한 정신의 자락이 펼쳐지는가. 스님은 이 게송을 남기고 옷을 갈아 입은 뒤 그대로 입적하였다. 生死의 바다를 훌쩍 건너 저승 길을 마치 소풍가듯 떠나가고 있다. 普愚 스님의 〈辭世頌〉 또한 生死의 바다를 단숨에 뛰어넘는 장엄함이 있다.

인생은 물거품 부질 없는 것
여든 몇 해 생애가 봄 꿈 속이라.
죽음 임해 가죽 자루 벗어던지니
한덩이 붉은 해 서산에 지네.
人生命若水泡空
八十餘年春夢中
臨終如今放皮孱
一輪紅日下西峯

인생은 물거품이요 한 바탕 봄 꿈이다. 육신을 버리는 것은 가죽 부대를 벗어던지는 것이다. 무엇이 남는가. 붉은 해가 서산에 진다. 내 육신은 가도 지는 해는 내일 아침이면 다시 붉은 불덩이로 되살아난다. 무엇이 슬프고 안타까울 일이 있는가. 그렇다면 이런 시는 어떨까?

새벽에 일어나 큰 산에 절하고
저녁 자리에 들기 전에
다시 산에 머리 숙인다.
말없이 이렇게 하며 산다.
이러는 것은 아무 다른 뜻이 없다.
산 곁에서 오래 산을 바라보다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된 것.
무슨 소리를 들었다 할 수도 없다.
산에게 무엇 하나 묻지도 않는다.
고요히 산을 향해 있다가 홀연
자신에게 돌아서는 일
이것이 산과 나의 유일한 문답법이다.

이성선의 시 〈山問答〉이다. 앞선 선승들의 旨趣와 방불치 아니한가. 말 없는 가운데 마음을 흐르게 하는 일, 禪은 詩人에게 이러한 心法을 일깨워 준다.

說禪作詩, 本無差別

杜甫는 "시 짓고 用事함은 마땅히 禪家의 말과 같아야 한다. 물 속에 소금이 녹아 있어도 물을 마셔 보아야 소금의 짠 맛을 알 수가 있듯이."라고 말했다. 물 속에 소금을 넣으면 소금은 물에 녹아 보이질 않는다. 입을 대고 마셔 보면 그제서야 짠 맛이 드러난다. 시의 언어는 물 속에 녹아든 소금의 맛과 같아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있는 맛, 직접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뜻, 禪家의 언어가 또한 그렇다. 《西淸詩話》에 보인다. 당나라 때 詩僧 齊己는 그의 〈喩詩〉에서,

날마다 힘 쓰는 일 무엇이던가
읊조리다 지치면 坐禪을 하지.
日用是何專
吟疲卽坐禪

라 하였다. 하루 종일 시에 골몰하다가 지칠대로 지친 몸을 坐禪三怡에 들어 누인다. 그 밖에 여나믄 일이야 상관할 것이 없다. 그에게 있어 詩와 禪은 따로 노는 별개의 물건이 아니다. 또 그는 〈寄鄭谷郞中〉에서,

詩心을 어떻게 전한단 말인가
증명함이 절로 禪과 같구나.
詩心何以傳
所證自同禪

이라 하였다. 詩心을 설명하기나 禪을 설명하기나 '不立文字, 敎外別傳'의 전수임에는 한 치의 차이가 없다. 禪을 말로 설명할 수 없듯이, 詩의 깨달음 또한 언어의 영역 밖에 있다. 수많은 이론가들이 詩論을 집필하였어도, 그 글을 읽어 시인이 되는 법이 없다.

蘇軾도 〈跋李端敍詩卷後〉에서,

좋은 시 잠시 빌려 긴 밤 새우다
좋은 곳을 만나면 문득 參禪하네.
暫借好詩銷永夜
每逢佳處輒參禪

라 하였다. 깊은 밤 고요히 앉아 시를 읽다가 得意會心의 구절과 만나면 시집을 놓고 고요히 三怡의 禪定에 빠져든다는 것이다. 이럴 때 그에게 있어 詩를 읽는 것은 禪의 話頭를 參究함과 다름이 없다.

宋나라 때 李之儀는 〈與李去言〉에서 "禪을 말하는 것과 詩를 짓는 것은 본시 차별이 없다. 說禪作詩, 本無差別"고 하였고, 嚴羽는 ≪滄浪詩話≫에서 "시를 논함은 禪을 논함과 같다. 대저 禪道는 오직 妙悟에 달려 있고, 詩道 또한 妙悟에 달려 있다."고 하였다. 또 范溫은 ≪潛溪詩眼≫에서 柳子厚의 시를 논하면서, "문장을 앎은 마치 禪家에 頓悟의 門이 있는 것 같이 해야 한다. 대저 法門은 천차만별이니 모름지기 한번 말을 돌려 깨달음에 들어감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楊時가 "시를 배움은 언어문자에 있지 아니하니, 마땅히 그 氣味를 생각해야만 시의 뜻을 얻는다."고 한 것도 다 한 뜻이다. 元好問은 더 나아가

시는 禪客에게 비단 위 꽃이 되고
禪은 詩家의 玉을 끊는 칼이라네.
詩爲禪客添錦花
禪是詩家切玉刀

라 하였다. 禪客이 參禪의 길에서 깨달은 奧義를 詩의 형식을 빌어 쓰니 錦上添花가 아닐 수 없다. 詩人은 또 禪의 방식을 빌어 자신의 意象을 표현하니 切玉刀를 지닌 셈이라는 것이다.

禪學이 발흥한 宋나라 이래로 詩와 禪을 나란히 보는 이러한 '詩禪一如'의 인식은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다. 詩禪一如의 인식이 보편화 됨에 따라, 시를 배우는 과정을 禪에 비유한 以禪喩詩의 생각도 활발하게 제출되었다.

시 배움은 흡사 參禪 배움 같거니
대 걸상 부들 자리에 해를 따지지 않네.
스스로 깨쳐 얻음을 얻게 되면
멋대로 읊조려도 문득 초연하리라.
學詩渾似學參禪
竹榻蒲團不計年
直待自家都了得
等閑拈出便超然

北宋의 시인 吳可의 〈學詩詩〉이다. 대나무 걸상 위에 부들 자리를 깔고 坐禪을 오래 했다 해서 禪의 話頭를 투득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自家의 '了得'이다. 證心하는 깨달음이 있고 보면 그저 심상히 읊조리는 말도 超然한 上乘의 경계가 된다. 吳可의 위 시가 널리 알려지자, 많은 시인들의 그 첫구를 貫珠하여 비슷한 작품들을 여럿 남겼다. 명나라 때 都穆의 〈論詩詩〉 3수 같은 것이 그 좋은 예이다.

시 배움은 흡사 參禪 배움 같거니
眞諦를 깨닫잖콘 백년이 부질없다.
심장 토하고 폐부 도려냄도 더할 나위 없겠지만
妙悟는 天然에서 나옴을 알아야지.
學詩渾似學參禪
不悟眞乘枉百年
切莫嘔心幷剔肺
須知妙悟出天然

깨달음 없는 參禪은 공연히 제 몸을 들볶는 것이나 같다. 살아 숨쉬는 깨달음이 없는 시는 말장난일 뿐이다. 禪僧 神贊은 일찍이 깨달음 없이 습관이 되어버린 參禪을 일러, "열린 문으로는 나가려 하지 않고, 창문을 두드리는 어리석음이여. 문종이를 백년을 두드려 본들, 언제나 나가볼 기약있을꼬. 空門不肯出, 投窓也大痴. 百年鑽古紙, 何日出頭期."라 노래한 바 있다. 방 안으로 날아든 벌은 환히 열린 문은 마다하고 굳이 닫힌 창문만 두드린다. 자유의 문은 저기 저렇게 활짝 열려 있는데 집착을 놓지 못해 그걸 보지 못한다. 시인이 시의 묘리를 깨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다. 심장을 토해내고 폐부를 도려내는 고심참담도 좋지만, 진정한 깨달음이란 원래 없는 것을 쥐어 짜내는 조탁과는 관계가 없다.

시 배움은 흡사 參禪 배움 같거니
앞 사람을 흉내내면 그 누가 알아주리.
좋은 시귀 눈 앞에서 끝없이 읊조려도
어리석은 이들은 우물안 개구리라.
學詩渾似學參禪
筆下隨人世豈傳
好句眼前吟不盡
痴人猶自管窺天

예전 佛法의 大義를 묻는 제자의 물음에 臨濟는 喝로, 德山은 몽둥이로 대답하였다. 禪家의 話頭도 宋代 이후로 오면 아포리즘의 어조를 띄게 되어 靈動하는 活法으로서가 아닌 어정쩡한 흉내가 되고 만다. 自家의 體認 없는 흉내만으로는 無門의 관문도 소용이 없다. 詩의 법도 이와 같다. 눈 앞에 놓인 좋은 시귀들을 백날 읊조려 본들, 미묘한 깨달음과 만나지 못하면 종내 한소식은 얻을 수가 없는 것이다. 좋은 시를 읽으면서는 그 안에 녹아 있는 生機를 느낄 일이지, 어투를 흉내 내어서는 안된다. 대롱을 통해 하늘을 보니 그 하늘이 온전히 보일 턱이 없다.

예전 사명당이 금강산 유점사로 서산대사를 찾아갔다. "어디서 왔는고?" "어디서 왔습니다." "몇 걸음에 왔는고?" 이 대목이 중요하다. 만보계를 달고 온 것도 아니니 그걸 어찌 안단 말인가. 그래도 대개 오늘 내가 걸은 시간이 몇 시간이니 한 시간에 몇 걸음을 걸을까. 뭐 이런 궁리를 하고 앉았다가는 喝이나 몽둥이 밖에는 기다릴 것이 없다. 사명당은 즉시 벌떡 일어난다. 양 팔을 활짝 펴들고 한 바퀴 빙 돈다. "이렇게 왔습니다." 이걸로 끝이 아니다. "어느 길로 왔는고?" "옛 길을 따라 왔습니다." 스승은 벌컥 소리 지른다. "옛 길을 따르지 말라." 제법 근사한 대답을 했다고 득의하던 사명당이 이번엔 한방 제대로 맞았다. 이른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는 心法의 전수이다.

옛 사람의 길을 따르지 말라. 너는 너의 길로, 나는 나의 길로 禪에 도달하고 詩를 깨달을 뿐이다. 남의 흉내로는 안된다. 秋史는 한 사람만으로 족하다. 秋史와 방불한 趙熙龍은 오히려 그로 인해 손가락질을 받는다. 그러나 안목 없는 세상은 자꾸만 옛 길을 따라 오라고 요구한다. 이렇게 쓰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요한다. 그렇다면 좋은 시는 끊임 없는 반란의 산물이어야 한다. 친숙한 관습과의 결별, 익숙해진 접점에서 벗어나기를 쉼 없이 추구해야 한다. 曾幾가 "시를 배움은 參禪함과 같나니, 삼가하여 죽은 시귀일랑은 거들떠 보지 말라. 學詩如參禪, 愼勿參死句"라 한 것이 바로 이 뜻이다. 다시 이어지는 셋째 수이다.

시 배움은 흡사 참선 배움 같거니
말이 사람 놀라게 해야지 꾸밈만으론 안되지.
단지 眞情과 實境만을 그려낼 뿐
묻히고 전함은 내 맡겨 둘 일이다.
學詩渾似學參禪
語要驚人不在聯
但寫眞情幷實境
任他埋沒與流傳

말이 사람을 놀래키려면 어떠해야 할까? 낡고 정체된 인식을 깨부수는,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전환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것은 자구를 탁련하는 기교로 성취될 수 없다. 절묘기발한 수사도 능사가 아니다. 시인은 거짓없는 眞情을 꾸밈없는 實境에 담아 그려낼 뿐이다. 내 시가 뒷 세상에 잊혀질까, 길이 기억될까 하는 것은 내 간여할 바 아니다.

 

거문고의 소리는 어디서 나는가

《莊子》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숲 속에 천년 묵은 나무는 옹이가 많이 져서 재목으로 쓸 수가 없는 까닭에 나무꾼의 도끼를 피할 수 있었고, 여관 집의 거위는 잘 울지 않아 쓸모 없다 하여 목숨을 잃었다. 둘 다 쓸모 없기는 매 일반인데 하나는 그로 인해 수명을 연장하였고, 하나는 그 때문에 명을 재촉하였다. 자! 그대는 어디에 처하겠는가? 장자는 망설임 없이 그 중간에 처하겠다고 한다. 그곳은 어디인가? 연암 박지원은 〈崄丸集序〉에서, 익숙한 황희 정승의 이야기를 패로디 하여 이런 이야기로 들려준다.

황희 정승이 퇴근하여 집에 오니, 딸이 맞이하며 말하기를, "아버지! 이가 어디서 생겨요? 옷에서 생기죠?" "그렇지." 그러자 딸이 좋아 하며 "내가 이겼다!"한다. 이번엔 며느리가 나서며, "아버님! 이는 살에서 생기지요?" "맞았다." "봐요. 아가씨! 아버님은 내가 맞다시는걸." 옆에 있던 부인이 화를 내며 말한다. "도대체 누가 영감더러 지혜롭다고 하는지 모르겠구려. 어떻게 둘 다 옳아요?" 정승은 빙그레 웃으며 말한다. "얘들아! 이리온. 내가 설명해 주마. 이란 놈은 살이 아니면 알을 까지 못하고, 옷이 아니면 붙어 있을 수가 없단다. 그래서 두 사람의 말이 다 옳다고 한 것이야. 그렇지만 옷을 장농 속에 두더라도 이는 있을 것이고, 벌거벗고 섰더라도 또한 가려울 테지. 땀이 무럭무럭 나서 온몸이 끈적끈적할 때 옷도 아니고 살도 아니고, 옷과 살의 그 사이에서 이는 생겨난단다."

이것과 저것의 사이, 그 중간의 텅빈 공간에서 이는 생겨난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니 그 중간쯤에서 타협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允執厥中, 그 중간을 잡아라. 이 이야기를 蘇東坡는 그의 〈琴詩〉에서 다시 이렇게 읊조린다.

거문고에 소리가 있다 하면은
갑 속에 두었을 젠 왜 안 울리나.
그 소리 손가락 끝에 있다 하면은
그대 손 끝에선 왜 안들리나.
若言琴上有琴聲
放在匣中何不鳴
若言聲在指頭上
何不於君指上聽

거문고의 소리는 어디서 나는가. 거문고와 손가락의 사이에서다. 거문고에 손가락이 닿아 소리로 울리는 이 미묘한 이치를 아는가? 소리는 그렇다면 어디에 숨어 있었더란 말인가? 깨달음은 어디에 있는가?

陶淵明 〈飮酒〉시의 뒤 네 구절을 보면,

산 기운 저녁이라 더욱 고운데
나는 새 짝을 지어 돌아가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