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정선생글 ▒ 204

기(記) 중흥 대화엄 보광사 기(重興大華嚴普光寺記) -이곡(李穀) -

기(記) 중흥 대화엄 보광사 기(重興大華嚴普光寺記) 후백제의 견훤(甄萱)이 도읍한 곳이 지금의 전주(全州)인데, 전주 남쪽 만덕산(萬德山)에 절이 있으니, 보광사(普光寺)라 한다. 실로 백제 때부터 대가람(大伽籃)으로 화엄경을 강연하는 장소였다. 비구 중향(中向)이 어려서 이 산에서 자랐는데, 이런..

기(記) 창치 금강 도산사 기(?置金剛都山寺記)-이곡(李穀) -

기(記) 창치 금강 도산사 기(?置金剛都山寺記) 해동의 산수는 천하에 이름났는데 금강산의 기이한 절경은 또 해동의 산수에서도 으뜸이 된다. 또 불경에 담무갈보살(曇無竭菩薩)이 거주했다는 설이 있어 세상에서는 드디어 인간 정토(淨土)라고 한다. 향과 폐백을 가져오는 천자의 사신이 길에 연이었..

기(記) 고려국 천태 불은사 중흥 기(高麗國天台佛恩寺重興記) -이곡(李穀) -

기(記) 고려국 천태 불은사 중흥 기(高麗國天台佛恩寺重興記) 특별히 정혜 원통 지견무애 삼장법사(定慧圓通知見無?三藏法師)의 호를 하사한 대천원 연성사 대보은광교사 겸 고려 영원사 주지(大天源延聖寺大報恩光敎寺兼高麗塋原寺住持)이고, 복국 우세 정명 보조 현오대선사(福國祐世靜明普照玄..

기(記) 고려국 강릉부 염양선사 중흥 기(高麗國江陵府艶陽禪寺重興記) -이곡(李穀) -

기(記) 고려국 강릉부 염양선사 중흥 기(高麗國江陵府艶陽禪寺重興記) 지원 경진년 가을에, 전 성균관 사예(司藝) 박군이 영해(寧海) 군수가 되어 나에게 와서 인사하며 말하기를, “전날 태정(泰定) 갑자년에, 내가 우리 어머니를 강릉성 북쪽에 장사지냈는데, 장사를 끝낸 뒤에 절을 창건하여 명복을 ..

기(記) 금강산 보현암 법회 기(金剛山普賢菴法會記) -이곡(李穀) -

기(記) 금강산 보현암 법회 기(金剛山普賢菴法會記) 지원(至元) 4년 무인년 가을 8월 초하루에, 한 사문(沙門 중)이 문앞에 와서 고하기를, “석씨로 보현암 주지인 지견(智堅)인데, 원나라 조정 규장공(奎章公)이 태정(泰定) 연간에 일이 있어서 왕경(王京)에 와서 드디어 풍악산(楓嶽山)을 유람하면서 ..

기(記) 흥왕사 중수 흥교원 낙성회 기(興王寺重脩興敎院落成會記) -이곡(李穀) -

기(記) 흥왕사 중수 흥교원 낙성회 기(興王寺重脩興敎院落成會記) 요즘 온 천하의 사당에서 제사를 받는 분으로는 석씨(釋氏)ㆍ노씨(老氏)ㆍ공씨(孔氏)가 가장 성하다. 공씨의 사당에 제사지내는 일은 그 맡은 관원이 있어서 사사로이 감히 간섭하지 못하나니, 이는 근본을 갚기 위해서이다. 석씨와 노..

기(記) 경사 금손 미타사 기(京師金孫彌陀寺記) -이곡(李穀) -

기(記) 경사 금손 미타사 기(京師金孫彌陀寺記) 불교가 중국에 선포되어 사람을 교화한 지가 오래 되었다. 그런데 그 인과(因果)와 죄복(罪福)의 설이 능히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지라. 왕공(王公)으로부터 사서(士庶)에 이르기까지 분주하게 모여들어 받들고 섬기지 않는 이가 없었던 것이다. 중봉대..

경사 보은 광교사 기(京師報恩光敎寺記) -이곡(李穀) -

경사 보은 광교사 기(京師報恩光敎寺記) 이곡(李穀) 연우(延祐) 정사년에 고려국 왕 모(某)가 이미 자리에서 물러나 경사(京師)의 저택에 머물러 있을 때에, 옛 성 창의문(彰義門) 밖에 땅을 사서 범찰(梵刹)을 창건하였는데, 3년이 지난 기미년에 공사가 준공되었다. 부처님을 모시고 승려가 거처할 곳..

기(記) 김해부 향교 수헌 기(金海府鄕校水軒記) -이곡(李穀) -

기(記) 김해부 향교 수헌 기(金海府鄕校水軒記) 이곡(李穀) 경원(慶源) 이국향(李國香) 군이 도관 정랑(都官正郞)으로 양주 군수(梁州郡守)가 되었는데 청렴하고 재능이 있다는 명성이 있었다. 국가에서는 여러 도의 수령이 오랫동안 바뀌어 가지 않음으로 매우 백성에게 해가 되기 때문에 시비곡직을 ..

기(記) 금내청사 중흥 기(禁內廳事重興記) -이곡(李穀) -

기(記) 금내청사 중흥 기(禁內廳事重興記) 이곡(李穀) 국초(國初)에 관직을 설치할 때 6국(局)을 대궐에 두어 문한(文翰)을 맡게 하고, 한림(翰林)ㆍ사관(史館)ㆍ비서(秘書)ㆍ보문(寶文)ㆍ동문(同文)ㆍ유원(留院)이라 하였는데, 사관과 한림이 으뜸이 되었다. 서울이 옮겨감으로부터 왕궁(王宮)과 관청이 ..

서(書) 우본국재상 서(寓本國宰相書) -이곡(李穀) -

서(書) 우본국재상 서(寓本國宰相書) 이곡(李穀) 곡은 돈수재배하고 여러 상공 합하에게 글을 부칩니다. 나는 병이 나서 좌우에 나아가 마음에 생각하는 일을 면전에서 진술할 수 없사오나, 만약 끝내 말하지 않으면 다만 나의 마음이 늘 만족하지 않아 불평스러울 뿐 아니라, 답답한 것을 다 말하지 않..

대언관청파취동녀 서(代言官請罷取童女書) -이곡(李穀) -

서(書) 대언관청파취동녀 서(代言官請罷取童女書) 이곡(李穀) 여러 가지의 말을 가만히 듣건대 옛날의 성왕이 그 천하를 다스림에는 모든 것을 평등하게 사랑했습니다. 비록 인력이 미치는 곳에는 문궤(文軌 문자와 수레자국의 폭)가 반드시 같고 그 풍토의 마땅한 바와 인정의 숭상하는 바는 반드시 ..

서(書) 여 동년조중서최헌납 서(與同年趙中書崔獻納書) -이곡(李穀) -

서(書) 여 동년조중서최헌납 서(與同年趙中書崔獻納書) 이곡(李穀) 가난하고 문벌 없는 집안과 궁벽한 시골의 선비는 원래 스스로 출세할 수 없고 반드시 청운의 지기가 있어 그를 끌어서 써야만 이에 그 굽은 것을 펴고 그 움츠린 것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나는 본래 노둔하고 비겁해서 진퇴를 부끄..

문(文) 조 당고 문 병서 (吊黨錮文 幷序 ) -이곡(李穀) -

문(文) 조 당고 문 병서 (吊黨錮文 幷序 ) 이곡(李穀) 문을 닫아 걸고 글을 읽어도 오히려 옛사람을 논하나니 이는 시절을 못 만난 사람이 하는 것이라. 선유(先儒)들이 말하기를, “옛날의 일을 조상하며 옛날의 역사를 위해 우노라.”하였으니, 나는 〈당고전(黨錮傳)〉에 대해 느낀 바 있어 글을 지어 ..

찬(贊) 후한 삼현 찬 병서 (後漢三賢贊 幷序 ) -이곡(李穀) -

찬(贊) 후한 삼현 찬 병서 (後漢三賢贊 幷序 ) 이곡(李穀) 내가 역사를 읽다가 후한 영제(後漢靈帝)의 기사에서 천하에 이른 바 명현(名賢)이란 사람들을 모두 당고(黨鉤)로 얽어서 남김없이 죽여버렸다. 아. 화란(禍亂)이 어쩌면 이렇게 심하였는가. 그 사이에 몸을 깨끗이 하며 말을 삼가하여 그 화에 ..

명(銘) 영암사 신정 명(靈岩寺新井銘) -이곡(李穀) --

명(銘) 영암사 신정 명(靈岩寺新井銘) 이곡(李穀) 누가 여기다 집을 지었던고, 부처님이 아니면 신선이다. 산은 푸른 옥이 둘렀고 땅에는 푸른 연꽃이 솟았다. 물이라는 것은 땅 가운데 있는 것이나 통하기도 하고 통하지 못하는 것은 하늘에 매인 것이다. 우물이 마르게 되는 것은 가뭄의 까닭이다. 산 ..

명(銘) 연복사 신주종 명 병서(演福寺新鑄鍾銘幷序) -이곡(李穀) -

명(銘) 연복사 신주종 명 병서(演福寺新鑄鍾銘幷序) 이곡(李穀) 지정(至正) 6년 봄에 자정원사(資政院使) 강공(姜公) 금강(金剛)과 좌장고부사(左藏庫副使) 신후(辛侯) 예(裔)가 천자(天子)의 명령을 받들어 금폐(金幣)를 가지고 와서 종을 금강산(金剛山)에다 만드는데 그 때에 산 근방에 있는 여러 고을..

표전(表箋) 태후상동전 표(太后上同前表) -이곡(李穀) -

표전(表箋) 태후상동전 표(太后上同前表) 이곡(李穀) 모의(母儀)가 크게 동조(東朝)에 나타나시어 일찍 휘호(徽號)를 높이셨고, 부덕(婦德)이 진작 내치(內治)에 드러나 새로 덕음(德音)을 반포하시어 화려한 예식을 모두 거행하니 인자하신 풍화(風化)가 멀리 퍼지옵나이다. 운운. 고요하고 깊으심으로 ..

표전(表箋) 상책후 하표(上冊後賀表)-이곡(李穀) -

표전(表箋) 상책후 하표(上冊後賀表) 이곡(李穀) 혁혁(赫赫)한 황도(皇圖)는 울연(蔚然)히 건원(乾元)의 운(運)을 열으시고, 새로 마련된 곤제(?制)로 성대(盛大)하게 하늘이 내리신 상서를 밝히시오니, 종사(宗社)가 안영(安榮)하고 신민(臣民)이 모두 기뻐하옵나이다. 운운. 숙(肅)하고 예(乂)하며 무(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