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記)
창치 금강 도산사 기(?置金剛都山寺記)
해동의 산수는 천하에 이름났는데 금강산의 기이한 절경은 또 해동의 산수에서도 으뜸이 된다. 또 불경에 담무갈보살(曇無竭菩薩)이 거주했다는 설이 있어 세상에서는 드디어 인간 정토(淨土)라고 한다. 향과 폐백을 가져오는 천자의 사신이 길에 연이었고 사방의 남녀들이 천리 길을 멀다 하지 않고 소에게 싣고 말에게 싣고 등에 지고 머리에 이고 와서 부처님과 스님에게 공양하는 자들의 발길이 서로 이어졌다.
산의 서북쪽에 고개가 있는데 가로지른 듯하고 높고 험하여 하늘에 오르는 것 같으므로 사람들이 이곳에 이르면 반드시 지나가기 어려워 서성거리며 휴식하였다. 이곳은 너무 궁벽하므로 사는 백성도 매우 적어서 혹 풍우라도 만나면 노숙하기에 곤란하였는데, 지원 기묘년에 쌍성총관(雙城摠官) 조후(趙侯)가 산에 사는 스님 계청(戒淸)과 의논하고 그 요충지인 임도현(臨道縣)에 여러 경(頃)의 땅을 사서 불사(佛寺)를 창건하여 임금의 장수를 축수하는 도량으로 만들고, 봄가을로 좁쌀을 배로 실어다가 드나드는 자들을 먹이고 그 나머지는 산중의 여러 절에 나누어 주어서 겨울과 여름의 먹을 것으로 하도록 해마다 주기로 정하였다. 그러므로 이름 붙이기를 도산(都山)이라 하였다.
조후가 이 절을 경영할 적에 그 경내의 승려들에게 명령하기를 “승려들은 내가 다 안다. 위로는 네 가지 은혜를 갚고 아래로는 삼도(三塗)를 제도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배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마시면서 배우는 것도 끊어버리고 하는 일이 없는 자는 상등이 되고, 부지런히 강경(講經)하고 설법하며 힘써 교화하고 권유하는 자는 다음이 되고, 머리 깎고 집에 살면서 부역과 세금을 피하고 재산을 모으는 자는 하등이 되는 것이다. 승려로서 하등이 되는 것은 불교의 죄인이 될 뿐만이 아니라 또한 국가의 놀고 먹는 백성이니 너희들이 이미 관가에 부역하지도 않고 나도 돕지 않는 자는 처벌하리라.” 하였다.
이에 여러 스님들이 부끄러워 하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며 다투어 재주 있는 대로 가지고 와서 도끼질하는 자는 도끼질하고 톱질하는 자는 톱질하고 다듬고 깎고 바르고 미니, 조후는 집의 곡식을 날라 그들을 먹이고 집의 기와를 걷어다가 이어서 백성의 힘을 빌지 않고 며칠도 되지 않아 완성하였다. 공사가 끝나자, 사람을 보내 와서 그 일을 기술하기를 청했다. 내가 비록 조후를 알지는 못하나 어질다는 명성은 들은 지가 오래 되었다. 모든 일을 하는 데에는 마땅히 물건에 이롭고 사람에게 편하게 할 따름이지 자기를 위하여 복을 구하는 자는 끝이다. 임도(臨道)는 한 산(山)의 요충지이다. 그러므로 이 절을 지어서 드나드는 자를 편리하게 하였다. 쌍성도 역시 한 지방의 요충지이니, 이런 생각을 미루어서 정치를 행한다면 그 백성에게 편리한 것이 반드시 많으리라.
근래에 동남쪽 변방 백성들이 그의 경내로 흘러 들어오는 경우가 있었는데, 조후는 그 까닭을 힐책하고 거절하면서 말하기를, “너희들은 항산(恒産)이 없어서 항심(恒心)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떠돌아다닌다. 사람으로서 항심이 없으면 어디를 간들 용납되겠는가.” 하였다. 내가 이래서 더욱 조후의 사람됨을 알았으니, 어찌 기문을 짓지 않겠는가. 조후의 이름은 조림(趙琳)으로, 일찍이 본국으로 들어와 벼슬하였고 선왕을 딸서 연경에 있은 지가 5년이다. 공(功)으로써 세 번 옮겨 대호군(大護軍)이 되고 검교첨의 평리(檢校僉議評理)에 승진하였고, 이제 가업을 계승하여 쌍성등처 군민총관(雙城等處軍民摠管)이 되었다. 성품이 유교와 불교를 좋아하고 놀고 사냥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시서(詩書)에 통달하고 예의를 숭상하였다. 사람들이 이로써 장하게 여겼다.
[주D-001]네 가지 은혜 : 불교에서 하는 말로, 어머니의 은혜[母恩], 아버지의 은혜[父恩], 여래의 은혜[如來恩], 설법해 준 법사의 은혜[說法法師恩]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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