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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記) 신작 심원루 기(新作心遠樓記) -이곡(李穀) -

천하한량 2007. 2. 10. 17:48

기(記)
 
 
신작 심원루 기(新作心遠樓記)
 

중향 대사가 보광사를 중흥한 것은 내가 이미 기문을 지었는데 다시 그 동북 모퉁이에 누를 짓고 나에게 이름을 묻길래, “이름은 실상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으로, 물건에 이름을 짓는 것도 그 닮은 것을 따르는 것이다. 나의 귀와 눈으로 듣고 보지도 못하였는데 억지로 이름을 지으라고 하는 것은 귀머거리에게 듣기를 부탁하고 소경에게 길을 묻는 것이다.” 하였더니, 중향이 말하기를, “사람은 하늘과 땅의 기운을 받고 태어나 오행(五行)이 번갈아가며 소용되나 사시로 쓰이는 것은 같지 않아서 겨울에는 따뜻한 것을 요구하고 여름에는 서늘한 것을 요구하며, 깊이 들어 앉아서 생각을 가지런히 하고 높은 데에 올라서 마음과 정신을 펴니, 이것은 일반적인 인정으로 이치가 그런 것이다. 지금 내 절은 사방으로 산이 둘러 있어서 지대가 얕고 또 좁은지라 경내로 들어오면 담장 속으로 들어온 것 같으므로 이 누를 지은 것이니, 보기에 아름다움을 위해서가 아니라, 여기에 살고 여기에 손님으로 있는 자들이 그 무더운 것이 찌는 듯하고 풀과 나무가 빽빽하게 울창하여서 땀이 흘러 몸뚱이에 덮고, 숨이 실낱 같은 때라든가 혹은 봄에 꽃이 산에 덮여 있고, 가을에 달빛이 골짜기에 가득할 때 차를 끓여 마시면서 올라 앉아 있으면 가슴속의 번민이 사라지고 막힌 것이 없어지게 하고자 해서이다. 그대는 어찌 강경히 거절하는가.” 하였다. 내가 들으니, 불법을 배우는 무리들은 그 형상을 마른 나무같이 하고 그 마음을 싸늘한 재같이 하나, 산이 깊지 않고 사는 곳이 궁벽하지 않아서 외물의 영향을 받게 될까 염려한다. 그러므로 벽에 얼굴을 대고 돌아 보지 않는 자도 있고, 새 둥지처럼 만들고 사는 자도 있으며, 바위 굴속에 집을 만드는 자도 있다. 만약 사는 곳이 궁벽한 것을 싫어하여서, 큰 집을 시원하게 지어 사치하며, 깊은 산을 싫어하여 대 마루를 높게 하여 누르고서 좋은 때에 오르내리면서 스스로를 쾌적하고 편케 하는 것은 비록 우리 유림의 검소한 자도 하지 않는데 승려가 그것을 하겠는가. 그러나 누가 이미 준공되었고 그 청하는 것이 또 간절한지라 우선 지벽심원(地僻心遠)이라는 뜻을 취하여 붙이라고 하였다. 비록 그러나 마음이란 물건은 원래 멀고 가깝고 피차간의 다름이 없다. 유교는 바른 것으로 몸을 닦고 집안을 다스리고, 나라를 다스리며 천하를 태평하게 하는 것이고, 불교는 관(觀)으로써 행(行)을 닦고 본성(本性)을 보며 부처가 되어 자신과 남들을 이롭게 하나니, 이것을 요약하면, 진실로 마음으로써 마음을 보고 마음으로써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보존하고 마음을 기르는 것이 어떠하냐를 돌아볼 뿐이다. 그러므로 예전 선비에게 비관심론(非觀心論)이라는 것이 있었으니 말하기를, “마음은 하나 뿐인데 어떤 마음을 가지고 이 마음을 보느냐.”고 하였다. 이미 그 청하는 것에 대신하고, 이어 이 말을 써서 이 누에 오르는 자로 하여금 지경과 마음이 서로 융합되어 그 이름으로 인해서 그 의미를 찾게 하고 또 우리 유림의 말이 고의로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밝히려고 하는 것임을 알게 하였다. 그 면세(面勢)나 관람하는 흥치는 마땅히 쓸 것이 아니므로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