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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記) 중흥 대화엄 보광사 기(重興大華嚴普光寺記) -이곡(李穀) -

천하한량 2007. 2. 10. 17:47

기(記)
 
 
중흥 대화엄 보광사 기(重興大華嚴普光寺記)
 

후백제의 견훤(甄萱)이 도읍한 곳이 지금의 전주(全州)인데, 전주 남쪽 만덕산(萬德山)에 절이 있으니, 보광사(普光寺)라 한다. 실로 백제 때부터 대가람(大伽籃)으로 화엄경을 강연하는 장소였다.
비구 중향(中向)이 어려서 이 산에서 자랐는데, 이런 보배로운 사찰이 황폐화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서 중흥시킬 뜻을 가졌다. 전주 사람 지금 자정사(資政使) 고공(高公) 용봉(龍鳳)이 황제의 지우(知遇)를 받고 성품도 선을 즐겼는데 원통(元統) 갑술년에 배로 바다를 건너 서쪽을 유람하다가 연경에서 보고 말하기를, “공은 몸이 변방에서 출생하여 대국에서 뜻을 얻은 것이 이와 같으니, 어찌 인과가 아니겠느냐. 대개 전생의 한 일을 금생에서 증명할 수 있으니, 이생에서 수립한 것이 반드시 후생에 보답이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하고, 또, “공이 경연에서 임금님을 가까이 모시면서 밤낮으로 좌우에 있으면서 조금도 떠나지 못하니, 그 은총과 영광의 두터움과 수레나 의복의 아름다운 것을 고향에 사는 친척이나 친구들이 모르니 이른바 비단옷 입고 밤길을 걷는 것이다. 진실로 교향에 사당이나 절을 지어서 위로는 임금의 장수를 빌고 아래로는 여러 백성들과 복을 같이하여 우뚝히 한 지방의 귀의하는 바가 되어서 가령 보고 듣는 자들이 모두 아무개가 한 일이라고 한다면 그 낮에 비단옷 입는 것이 되어 대단하게 여기지 않겠는가.” 하였다.
공이 기뻐서 그러하겠다고 대답하고 저폐 몇 천 냥을 내어 본 절을 새롭게 하도록 하고 삼장(三藏)을 비치하게 하였는데 얼마 뒤에 재상의 시기를 받아 남쪽 변방으로 나가게 되고, 중향도 산을 돌아가서 불전을 수축하고 공이 빨리 돌아올 것을 축원하는 것으로 일을 삼았다. 지정(至正)으로 원년을 고치던 두 달 전에 권세 있는 간신을 쫓아 내고 정치와 교화를 경장(更張)할 때 바람과 천둥 같이 호령하고 우레와 비 같이 풀어 주어 공도 풀려나게 되었는데 사랑하고 돌봄이 더욱 새로워졌다. 중향도 서울에 들어가니, 공이 전번에 뜻대로 마치지 못한 것을 서운하게 여겨 그 비용을 더하여 독촉해서 완성시키고, 이어 많은 자본을 주어서 본전은 그대로 두고 이자만을 쓰게 하되 세시(歲時)에 돌리고 저장하게 하니, 전후에 시주한 것이 천으로 계산할 수 있던 것이 2만 5천 냥이고, 황금을 녹여서 그 색상(色相)을 새롭게 한 것이 15근이고, 백금으로 그 기명(器皿)을 장식한 것이 39근이고, 집 지은 것이 1백여 칸이니, 불전ㆍ승당ㆍ손님 방ㆍ장실(丈室)ㆍ해장(海藏)과 향적(香積)들이 위광(威光)스럽고 조음(潮音) 같으며, 복도와 행랑을 좌우에 만들고 담장을 둘렀으며 문과 뜰 섬돌의 오르고 내리고 도는 데에 있어서는 예전 규모보다 더하고 감한 것이 모두 다 알맞게 되었다. 정축년 봄에 시작하여 계미년 겨울에 준공되어 그 달에 산인(山人) 참숙(?淑) 등과 함께 단월(檀越)과 인연 있는 이들을 널리 청하여 화엄법회를 크게 열어 낙성식을 하였으니, 모인 대중이 3천 명이고, 날 수로는 50일이었다. 분주히 다니는 남녀들과 공양하고 찬탄하는 이가 골짜기를 메우고 산등성이에 넘쳐서 셀 수가 없었다. 중향이 마땅히 본말(本末)을 기술하여 후세에 전하리라 생각하고 고공(高公)의 명으로 내게 와서 글을 청하였다. 삼가 살펴보니, 견훤이 본국으로 들어온 지가 4백 년이 넘었고, 절은 비록 백제 때에 창건되었으나 여러 번 전쟁에 불타서 비기(碑記)가 남아있지 않아 지난 세월을 상고할 수는 없으나, 혹은 중흥되고 혹은 폐사되어 지금까지 오다가, 고공(高公)을 만나서야 그 옛 모습을 회복하였다. 공은 삼한 땅에서 태어났으니, 경사(京師)와의 거리가 5천 리인데 연분을 인연으로 만나서 이제 능히 일월(日月) 같은 광채에 의지하고, 우로(雨露) 같은 은택을 받아 그 나머지를 고향에도 많이 미쳤고, 또 불사(佛事)를 크게 확장하여 복을 축원하고 근본에 보답하여 끝없는 데에까지 전해지게 하였으니, 어찌 우연한 일이겠는가. 봄에 밭을 가는 자는 가을에 반드시 수확이 있는 것이니, 사람들이 보는 바로서 의심하지 않는데 불교의 인과설에 이르러서만 어찌 유독 믿지 않겠는가. 드디어 이 말로 기문을 쓴다.


[주D-001]해장(海藏) : 장(藏)은 장경(藏經), 즉 불경을 말하는 것이고, 해(海)라 함은 바다처럼 크고 넓은 것이라는 의미로, 즉 크고 넓은 불경이라는 말이었으나 여기서는 장(藏)이란 것을 감춘다는 의미로 써서 창고를 형용한 말이다.
[주D-002]위광(威光) : 원래 범어(梵語)로는 마리지천(摩利支天)이란 말인데, 한자(漢字)로 위광이라고 번역하였다. 원래는 신장(神將)인데, 여기에서는 모든 건물 시설을 형용하는 데 빌려 썼다.
[주D-003]조음(潮音) : 이 역시 부처의 설법하는 것이 조수 소리처럼 크고 장엄한 것을 표현한 말이나, 여기에서는 절의 종(鍾)이나 북소리의 큰 것을 형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