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記)
고려국 강릉부 염양선사 중흥 기(高麗國江陵府艶陽禪寺重興記)
지원 경진년 가을에, 전 성균관 사예(司藝) 박군이 영해(寧海) 군수가 되어 나에게 와서 인사하며 말하기를, “전날 태정(泰定) 갑자년에, 내가 우리 어머니를 강릉성 북쪽에 장사지냈는데, 장사를 끝낸 뒤에 절을 창건하여 명복을 빌고자 하였더니, 바로 묘지 가까운 데에서 전에 없어진 절 자리를 얻었으니, 그 이름이 염양(艶陽)이라고 한다. 바로 경영하기 시작하여 이제야 겨우 완성하였는데, 부처님을 모시는 전각이 있고, 스님이 거처하는 당(堂)이 있고, 또 그 옆에 집을 지어서 성승(聖僧)이 거처하게 하였다. 위에는 마룻대와 아래에는 방이 있어 사치스럽지도 않지만 누추하지도 않다. 나는 자식이 없고 나이도 늙었으니, 마땅히 소유하고 있는 노비와 전토를 희사하여 그 상주하는 비용에 충당시켜 길이 마음을 닦고 복을 축원하는 곳으로 만들려 한다. 요즘 세상을 보면, 이익을 좋아하는 무리가 재산이 조금 있는 것만 보아도 어지럽게 다투어 남의 복전(福田)을 빼앗아 자기들의 이익이 되는 것으로 만들고, 심지어는 불상이 모두 먼지 투성이가 되고, 원(院)이 가시밭이 된 것도 많다. 나는 이와 같은 것을 안타깝게 여기니, 바라건대, 문사에게 부탁해서 그 본말(本末)을 갖추어 돌에 새겨서 후세 사람들에게 경계로 삼아 무궁토록 전하게 했으면 한다. 또 네 가지 이상한 일이 있으니 그대가 능히 그것을 기술하겠는가.” 하기에, 내가 “물론 그렇게 하지.”라고 말하고, 이어 그 이상하다고 이르는 바를 물으니, “처음 땅을 파니 구리 그릇과 향불 피우는 제구를 얻었는데 그 모양이 매우 오래된 것 같았다. 비록 기록한 문자는 없으나 이름이 있고 수(數)가 있으며, 가마솥에 넣고 뚜껑을 덮었는데, 모두가 새로 만든 것 같았으니, 이것이 첫째요, 예전에는 절에 우물이 없어서 멀리 가서 물을 길어 오는 데 고생하였다. 땅이 높고 또 건조해서 사람의 생각으로는 어찌 할 수 없었는데 하루는 우연히 부처님에게 조용히 빌고서 파기 시작하니 한 길도 못 되어서 차가운 물이 솟아 나왔으니, 이것이 둘째요, 계유년 봄에, 우리 선친이 돌아가셔서 구리로 지장 보살을 주조해서 부처님에게 은공이 되게 하려 하였는데, 녹일 때에 마침 큰 비가 오고 바람이 불더니 홀연히 다시 하늘이 개어서 쉽사리 성공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셋째요, 이듬해 을해년에 온 산에 불이 나서 산소 영역에까지 불이 번져 소나무와 가래나무가 거의 다 탈 지경이어서 끄고자 하여도 방법이 없어서 통곡하면서 부처님을 불렀더니, 하늘이 그때에야 바람을 돌려서 마침내 모조리 끄게 되었으니, 이것이 넷째이다. 모두 이 네 가지 일은 보는 자가 모두 이상하게 여겼으니 전생의 인연으로 된 것이고, 효성의 지극한 바가 아니라면 어찌 능히 이와 같겠느냐.” 하였다.
나는 생각하건대, 부처님은 자비로 마음을 삼고 구제하는 것으로 일을 삼으니, 사람이 능히 어질고 효도하는 데에 독실하면 그 감응하는 것도 그림자나 메아리와 같을 정도만이 아니다. 박군이 부모에 대해서 살아 계실 때 봉양하고 죽어서 장사지낼 때 이미 자기의 힘을 다하고 그 정성을 다하고서도 부족하다고 여겨지면 부처님에게 귀의하여 명명(冥冥)한 저 세상에 복을 빌어서 하지 않은 바가 없었으니, 그런 기이한 반응이 있는 것도 마땅한 일이다. 어찌 박군을 위하여 이것을 기술하지 않겠는가. 뒤에 이 절에 사는 자는 마땅히 박군의 뜻이 임금을 오래 살게 하고 나라를 복되게 하는 데에 오로지 하였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사람들에게 이익되게 하는 데에 급급하였으며, 그 쟁탈하는 것을 막고 그 절을 수축하는 것을 때맞추어 하였음을 알아야 할 것이니, 나의 기문을 보면 가할 것이다.
박군의 이름은 박징(朴澄)이니, 강릉 사람으로 처음에 재주가 있다는 명망으로 유사(有司)에게 천거되었고, 급제하여 벼슬하면서부터는 청렴하고 능하다는 명망이 있어서 오래 벼슬하여 3품에 이르렀다. 강릉은 신라 때에는 예국(蘂國), 혹은 철국(鐵國)이라 칭하였고, 또 도원경(桃源境)ㆍ북빈경(北濱京)이라 하였다가 본국에 들어와서는 명주(溟州)로 되었고, 지금은 부(府)로 승격되어 동쪽 지방의 으뜸이 되었다고 한다. 지원 6년 9월 16일에 기문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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