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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記) 흥왕사 중수 흥교원 낙성회 기(興王寺重脩興敎院落成會記) -이곡(李穀) -

천하한량 2007. 2. 10. 17:38

기(記)
 
 
흥왕사 중수 흥교원 낙성회 기(興王寺重脩興敎院落成會記)
 

요즘 온 천하의 사당에서 제사를 받는 분으로는 석씨(釋氏)ㆍ노씨(老氏)ㆍ공씨(孔氏)가 가장 성하다. 공씨의 사당에 제사지내는 일은 그 맡은 관원이 있어서 사사로이 감히 간섭하지 못하나니, 이는 근본을 갚기 위해서이다. 석씨와 노씨 같은 분은 그 사당과 상(像)을 만드는 것이 일정한 법제도 없고 일정한 장소도 없어서 섬기는 사람도 공(公)ㆍ사(私)나 귀천이 없이 모두 섬길 수 있으니 역시 그 복을 구하는 자가 그러하였기 때문이다. 본국은 땅이 비록 극동(極東)에 있으나, 서방에서 교리가 행해진 것이 더 오래되었다. 왕성(王城) 남쪽 20리에 절이 있는데 흥왕사(興王寺)라 하고, 그 안에 원(院)이 있는데, 흥교원(興敎院)이라 한다. 실상은 문왕(文王) 이 창건한 것으로 동방의 거찰(巨刹)이었다. 천도할 때에 절에 불이 나서 여러 번 중수했으나, 여러 번 훼손되어 완전히 복구되지는 못하였는데, 지순(至順) 경오년에 화엄종의 여러 대사들이 서로 말하기를, “문왕이 이 절을 창건할 때 지극히 크고 웅장하고 사치스럽고 화려하게 지었고, 또 그 토지를 넓히고 그 자재와 저축을 넉넉하게 하여 여러 절 중에서 제일 좋도록 힘썼으니, 이는 우리의 법을 중하게 여겨서이다. 우리들이 세상에서 하는 일도 없이 세상 사람들에게 옷과 밥을 얻어서 그럭저럭 세월을 보내면서 원문(院門)이 폐지되어 가는 것을 앉아서 보기만 하고 이것을 중수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허물을 가중시키는 것이다.” 하고, 이어 바랑 속에 저축한 것을 기부할 것을 약속해서 재목을 사고 장인들을 모아서 본원(本院)을 새로 짓고, 또 정조(晶照)와 달환(達幻) 두 대사를 시켜서 서울에 가서 낙성식 법회를 주간하게 하였다. 그 후 9년 만에 원이 낙성되었다. 그 전당(殿堂)과 낭무(廊?)에는 옛것을 뜯고 새롭게 하였는데 칸수를 세면 1백 60칸이었다. 그 해 여름에 달환 대사가 법회에 소용되는 의복과 그릇과 복색 등의 물건을 가지고 서울에서 돌아왔고, 또 전서사(典瑞使) 신당주(申當住) 등이 태황 태후의 명령으로 향과 폐백을 하사하여 불사(佛事)를 빛나게 하였다. 가을 8월 병술일에 비로소 광학회(廣學會)를 시작하였다. 날짜로 따지면 보름 동안이며, 모인 사람이 2백 명에 일 맡은 사람이 모두 2백 명으로 왕성(王成) 내외의 사녀(士女)들이 분주하게 공양하는 자들이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었다. 향화(香華)와 공양하는 제구가 정결하지 않음이 없고, 외우고 읽고 강론하는 것이 반드시 그 극치에 이르러 몸소 구회(九會)에 참여하여 구담(瞿曇 석가여래)의 설법을 듣는 것 같이 성대하였다. 법회가 끝나자 달환 대사가 자초지종을 갖추어 나에게 보이며 말하기를, “처음 내가 정조와 같이 경사에 간 것은 장차 이 법회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는데 정조가 불행히도 일찍 세상을 떠났으나 내가 그것을 성취시켰고, 또 여러 대사의 뜻도 후세에 전하지 않을 수 없으니, 청하건대, 이것으로 기문을 쓰라.” 하였다. 내가 일찍이 석씨의 글을 읽지 못하여 무엇이라고 말할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우선 유교로 말한다면 모든 사람이 추우면 옷을 입고, 배가 고프면 먹으며, 이익을 좇아가고, 해로운 것은 피한다는지, 또 삼강오륜(三綱五倫)의 아름다운 것과 예의의 바른 것을 알아서 금수의 길로 들어가지 않는 것은 누가 가르치고 누가 전수하여 그렇게 되는 것인가. 어찌 그 근본을 생각하여 갚으려 하지 않겠는가. 유교는 공씨를 배우는 것이나, 그 사당과 학교가 폐기되는 것을 보고 서운하게 여겨 마음과 눈에 동하는 자는 거의 적은데, 석씨의 교도들은 능히 부지런히 교화하고 권유하여 그 궁(宮)을 새롭게 하고 그 업무를 넓히기를 달환 대사와 같이 하는 무리들이 많으니, 그 교도들이 그들의 스승을 저버리지 않았다고 말하지 않으면, 나는 믿지 않겠노라. 그 교도들이 마땅히 그 스승의 말씀에 힘쓰고 처음부터 그 도가 어떠한지를 계교하지 않으니 의당 석씨의 교가 성행할 것이고, 복을 구하는 자가 날로 증가할 것이다. 그 한 번 모였던 모임 가운데의 교도와 시주한 단나(檀那 시주한 사람)의 씨명은 아랫편에 갖추어 열거하노라. 무인 10월 어느 날에 기록한다.


[주D-001]문왕(文王) : 고려의 문종(文宗)을 말함이니, 종(宗)이라고 하는 시호는 제후국에서는 붙이지 못하는 것을 우리 나라에서 붙였으므로, 원나라에 대해 숨기는 의미에서 문종이라 하지 않고 문왕이라고 한 것이다.
[주D-002]구회(九會) : 불교에서 큰 법회를 하는 것이 9가지로, 성신회(成身會)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