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記)
김해부 향교 수헌 기(金海府鄕校水軒記)
이곡(李穀)
경원(慶源) 이국향(李國香) 군이 도관 정랑(都官正郞)으로 양주 군수(梁州郡守)가 되었는데 청렴하고 재능이 있다는 명성이 있었다. 국가에서는 여러 도의 수령이 오랫동안 바뀌어 가지 않음으로 매우 백성에게 해가 되기 때문에 시비곡직을 가림이 뛰어난 자에게는 가까운 고을까지도 겸하여 다스리게 하였다. 이 때문에 이군이 고을을 임시로 맡게 되었다. 부임한 후, 문묘(文廟)에서 선성(先聖)을 배알하고 물러나와 제생(諸生)들에게 말하기를, “모든 임금을 섬기고 부모를 섬기고 자신을 닦고 남을 다스리는 것은 모두 배우는 데에서 얻는 것인데, 배우는 것은 농사꾼의 일과 같은 것이니, 진실로 그 일을 게을리 하여 그 때를 놓치면 후회하여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제생들은 힘써야 할 것이다. 또 이 학교가 좁고 누추하니 마땅히 넓게 만드리라.” 하였다. 예전에 시내를 건너서 학교 동쪽에 작은 정자가 있었는데, 매년 여름 공부할 때면 손님들이 와서, 제생들을 그 아래에 앉히고 초에 금을 그어서 그 금이 타기 전에 시를 짓게 하였는데, 날씨가 덥다든지 비가 올 때면 사람들이 모두 곤란하게 여겼다. 이군이 그 까닭을 묻고는 고을 아전들에게 명하여 농한기에 부역을 하게 하여 재목을 충분히 장만하고 터를 넓게 잡고 새로 지으니, 예전에는 겨우 무릎을 들여놓을 수 있었던 것이 이제는 함장(函丈 스승과 제자의 자리를 일장(一丈)의 간격으로 떼어 놓는 것)을 두어 손님의 자리와 스승과 제자의 위치가 널찍하여 여유가 있게 되었다. 여름 달밤이면 북쪽 산에 기대고 앉아 남쪽 강을 굽어보면, 물은 앉아 있는 자리 밑으로 흐르고 바람은 처마 사이에서 일어나 거문고 타고 글읽는 여가에 붓을 잡고 시를 지으면 풍경과 운치가 초연하게 되니,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그렇게 되어 버린다. 공사가 비로소 끝나자 내가 마침 오게 되었는데, 이군이 제생들을 인솔하고 그 사실을 갖추어서 나에게 기문을 부탁하였다. 내가 생각하건대, 성스러운 원나라의 문화 정치가 크게 보급되어 이제 천하에 조칙을 내려 새로 학교를 짓게 하였다. 내가 외람되게 천자의 조정 진신(搢紳)의 대열에 참여하여서 그 조서를 받들고 동방에 와서 선포하게 되어 여러 고을을 두루 시찰하였는데 문묘와 학교가 허물어지고 무너졌으며 생도들도 학업을 게을리하여 가는 곳마다 모두 그러하니, 누가 성스러운 원나라의 유교를 숭상하는 아름다운 뜻을 알았다고 하겠는가. 그런데 지금 이 부(府)에서만이 어진 수령을 만나 문화의 풍조를 진흥시키고 있으니 내가 비록 학문이 없으나 감히 그 실상을 기술하여 뒷사람에게 보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런 말을 이군에게 하고, 또 제생들을 앞으로 나오게 하여 말하기를, “예전 사람 중에는 깨진 항아리로 창(窓)을 하고 네모지게 구멍을 내어 가난하게 산 자가 있었으니, 배우는 데 부지런하고 게으른 것이 어찌 거처하는 데 관계되겠는가. 그러나 문묘와 학교의 제도는 강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 이군은 할 일을 알았다고 할 만하다. 앞의 수헌(水軒 물다락)이라고 한 것도 뜻이 있는 것이다. 중니(仲尼)가, ‘물이여, 물이여.’라고 한 것은 장차 배우는 자가 아침저녁으로 그것을 보고 근원 있는 물이 줄줄 흐르면서 주야로 쉬지 않는 뜻을 취한 것이리라.” 하였다.
'▒ 가정선생글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記) 경사 금손 미타사 기(京師金孫彌陀寺記) -이곡(李穀) - (0) | 2007.02.10 |
---|---|
경사 보은 광교사 기(京師報恩光敎寺記) -이곡(李穀) - (0) | 2007.02.10 |
기(記) 금내청사 중흥 기(禁內廳事重興記) -이곡(李穀) - (0) | 2007.02.10 |
기(記) 의재 기(義財記) -이곡(李穀) - (0) | 2007.02.10 |
서(書) 우본국재상 서(寓本國宰相書) -이곡(李穀) - (0) | 2007.0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