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記)
의재 기(義財記)
이곡(李穀)
우봉(牛峯) 이경부(李敬父)가 나에게 묻기를, “친구와 형제 중에 누가 더 친한가.” 하기에, “형제가 더 친하다.” 하였더니, “그렇다면, 세상 사람들이 모두 친구의 일에는 서두르면서 형제의 일에는 천천히 하는 것은 어째서이냐.” 하기에, “그것은 욕심을 따르는 해(害)이고 이익을 좋아하는 폐단이니, 그대를 위하여 그 이유를 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대개 어린 아이들도 부모를 사랑하고 자라서는 형을 공경하나니, 그것을 넓히고 크게 하여서 가까운 데로부터 먼 데 사람에게 미쳐 가는 것은 천성(天性)의 참된 것이고, 인도(人道)의 영원한 것이다. 또 조ㆍ쌀ㆍ생선ㆍ고기ㆍ삼베ㆍ실ㆍ솜 같은 것은 입고 먹는 데 항상 필요한 것이지만, 혹시라도 욕심대로 이상한 것을 좋아한다면 반드시 얻기 어려운 물건과 아주 맛난 것만을 구하여 구복(口腹)에만 맞게 하려 하고 신체에만 편하게 하려 할 것이니, 그것은 맛난 것도 아니고 편한 것도 아닐 뿐 아니라, 장차 그 해로움을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사람이 형과 아우에게는 항상 함부로 하는 데에 치우쳐 사랑하고 공경하는 데에 힘쓰지 않고, 심한 자는 시기하고 의심하고 성내고 싸워 나쁜 짓이라도 하지 못하는 것이 없으나, 타인에게는 혹 세력과 이익으로 서로 유인하고, 재물로 서로 통하고, 술과 음식으로 서로 좋아해서 친하고 사랑함이 독실하고 결탁함이 견고해서 이 역시 지극히 하지 않는 바가 없다. 비록 그렇기는 하나, 이미 ‘세력과 이익이라.’고 하였으니 세력과 이익이 없어진다면 서로 따르던 것이 다만 서로 해칠 뿐이니, 재물과 술ㆍ음식 같은 세세한 것은 말할 것이 무엇 있으랴. 이것이 욕심을 따르는 해이고, 이익을 좋아하는 폐단인 것이다. 인륜(人倫)에 다섯 가지가 있어서 옛 성인이 순서를 정하였으니, 그 항목은 임금과 신하요, 아버지와 아들이요, 남편과 아내요, 형과 아우이다. 친구는 그 끝에 있으므로 네 가지에 비해서 그 형편이 뒤진 것 같으나 그 소용되는 것은 실상 앞서는 것이니, 이는 선으로 권면하고 인(仁)으로 도와서 인륜의 아름다운 데로 도달하게 하는 것은 모두가 붕우의 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본말(本末)이 진실로 질서 정연하여 바꾸지 못할 것이 있으니, 이것이 〈 상체시(常?詩) 〉를 짓게 된 연유이다. 그 첫장에 이르기를, ‘상체의 꽃이여! 보기에 어찌 환하지 않으랴. 모든 이 세상 사람들은 형제만한 이가 없으니라.’ 하였고, 셋째 장에 이르러서는, ‘할미새가 언덕에 있으니, 형제가 어려움을 구원하도다. 매양 좋은 벗이 있으나 길게 탄식만 한다.’ 하였고, 다섯째 장에는, ‘환란이 이미 평정되어 편안해지면 비록 형제가 있으나 친구만 못하게 여기도다.’ 하였으니, 예로부터 형제와 붕우의 사이에는 그 이치가 이와 같다. 이 시를 자세히 음미하면 성인의 뜻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대는 삼가고 신중하고 학문을 좋아하여 그 인륜의 경중과 친소(親疎)의 구분에 대해서 강구하여 익숙하였을 것이니, 지금 말하는 것은 까닭이 있어서 말한 것이리라.” 하였다. 이군이 탄식하며 말하기를, “그렇다. 내가 친형제와 먼 형제 20여 명과 같이 노는데 친절하고 화합하였었다. 이제 또 각기 돈 얼마씩을 내어서 이름을 의재(義財)라 하고, 해마다 두 사람씩 번갈아가며 주관하여 매월 그 이자를 받아서 경축하고 조상하고 영접하고 전송하는 비용에 대비하게 하고, 조금이라도 쓰고 남는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장차 구휼(救恤)하고 도와주는 밑천으로 삼아서 자손들에게 이 법을 지켜서 잃지 않게 하려 한다. 이것은 범 문정공(范文正公)의 의전(義田) 의 옛 뜻을 사모함이니, 세상 사람들이 길가는 사람을 잡고서 형제라고 하거나 동기간 보기를 원수처럼 여기는 자들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자네는 나를 위하여 기문을 지어 줘라.” 하였다.
나는 그 말이 이치에 합당하여 세상 풍속을 격려시키고, 나의 마음을 감동시킴이 있음을 좋아하여 마침내 〈의재기〉를 지었으니 그 형제들의 나이와 이름은 아래에 자세히 기록한다.
[주D-001]상체시(常?詩) : 《시경》 〈소아(小雅)〉에 있는 시로, 형제간의 즐거움을 노래한 시이다.
[주D-002]범 문정공(范文正公)의 의전(義田) : 옛날 송(宋)나라의 범중엄(范仲淹)이 가난한 친척을 구휼하기 위하여 토지를 내놓고서 그 수입으로 친척을 구휼하게 하였는데, 그 토지를 의전이라고 이름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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