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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언관청파취동녀 서(代言官請罷取童女書) -이곡(李穀) -

천하한량 2007. 2. 10. 17:21

서(書)
 
 
대언관청파취동녀 서(代言官請罷取童女書)

 

 


 이곡(李穀)

여러 가지의 말을 가만히 듣건대 옛날의 성왕이 그 천하를 다스림에는 모든 것을 평등하게 사랑했습니다. 비록 인력이 미치는 곳에는 문궤(文軌 문자와 수레자국의 폭)가 반드시 같고 그 풍토의 마땅한 바와 인정의 숭상하는 바는 반드시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방의 풍속이 각기 다른 것을 구차스레 중국과 같게 하려면 사정이 순조롭지 않고 형세가 행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사정이 순조롭지 않고 형세가 행해지지 않고도 그것을 잘 다스린다는 것은 비록 요ㆍ순이라도 할 수 없습니다. 옛날 우리 세조 황제는 천하에 임어(臨御)하여 인심을 얻기에 힘썼는데, 더욱이 먼 곳의 풍속이 다른 외국에 대해서는 그 풍습을 따라 순조롭게 다스렸기 때문에 넓은 하늘 온 천하가 기뻐하고 북을 치고 춤추며 왕에게 오되, 오직 혹 뒤질까 걱정했으니, 요ㆍ순의 다스림도 이에 더할 나위가 없었습니다. 고려는 본래 바다 밖에서 별도로 한 나라를 세웠으니, 진실로 중국에 성인이 있지 않았다면 아득히 더불어 상통하지 못했을 것이며, 당태종의 권위와 덕망으로써 재차 일을 일으켜 그것을 쳤으나 공 없이 돌아왔습니다. 국조를 비로소 일으킴에 제일 먼저 신하가 되어 섬기고 복종하여 왕실에 공적을 나타냈고 세조 황제께서 공주를 신하에게 시집보냈으며, 이어서 조서를 하사하여 장려하고 훈유하여 이르기를,

“의관과 전법(典法)ㆍ예의는 선조의 유풍을 떨어뜨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 풍속이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다.”
했습니다. 방금 천하에 군신이 있고 인민과 사직이 있는 것은 오직 삼한뿐이니 고려를 위한 계책으로는 마땅히 밝은 조서를 받들어 선조를 따라 행하며 정치와 종교를 밝게 닦고 중국과의 통교를 제때에 하여 동맹국이 다 편안해야만 옳을 것입니다. 이제 부인과 환시들이 중국에 뿌리박은 것이 실상 그 무리가 많아서 은총을 믿고 도리어 본국(本國)을 흔들어서, 심지어는 내지(內旨)를 꾸며서 다투어 달려와 해마다 동녀(童女)를 징발함이 길에 잇달렸으니, 대체 남의 딸을 취하여다가 윗사람에게 아첨하여 제 이익을 취함은 비록 고려가 자취(自取)한 것이었으나 이미 내지가 있었다 하니, 어찌 국조(國朝)의 수치가 되지 않겠습니까. 옛날 제왕이 한 번 호령을 발하고 한 번 명령을 베풀면 천하가 온건하고 깊이 삼가 그 덕택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조지(詔旨)를 일컬어 덕음(德音)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누차 특지(特旨)를 내려 남의 처녀를 빼앗음은 심히 옳지 않습니다. 대저 사람이 자식을 낳아 사랑하고 길러 장차 반포(反哺)를 바라는 것은 높고 낮은 차별과 중화와 오랑캐의 사이가 없이 그 천성은 같은 것입니다. 또 저들의 풍속이 차라리 남자로 하여금 따로 거하고 여자는 나가지 않기를, 저 진 나라 때의 최서(贅壻)와 같게 되었다 하더라도 무릇 부모에게 기름을 입은 자는 여자편이 주장을 합니다. 그런 까닭에, 그 딸을 낳아 귀여워하여 노고를 아끼지 않고 밤낮으로 그가 자라 능히 봉양이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일단 가슴에 안고 있는 아이를 빼앗아 4천 리 밖으로 보낼 경우 발이 한번 문을 나가면 죽을 때까지 돌아올 수가 없으니, 그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지금 고려의 부녀가 후비의 열에 있고 왕후의 존귀에 짝하여 공경ㆍ대신이 고려의 생질에서 많이 나온 것은 그 본국의 왕족 및 공적이 있고 세력을 가진 부자가 특별히 조지를 받은 것인데 혹 진심으로 바라서 스스로 오기도 했고, 또 중매의 예가 있기도 했으니 진실로 보통이 아닌 일이며 이(利)를 좋아하는 자를 끌어서 예로 삼은 것입니다. 무릇 지금 그 나라에 사신으로 오는 자는 모두 처첩을 얻으려고 하는 것은 다만 계집아이를 취할 뿐 아니라, 대저 사방에 부리어 장차 상은(上恩)을 널리 펴 알림으로써 백성이 악정에 시달리고 고통을 받는가를 들어 의논하려는 것입니다. 《시경》에 이르지 않았습니까? ‘외국으로 가는 사신은 자기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현인(賢人)을 두루 찾아 그들의 의견을 물어본다.’ 라고 말입니다. 지금 외국에 사신으로 와서 재물과 여색으로 더럽혀지고 있으니 금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옆에서 얻어 듣건대 고려의 사람으로 딸을 낳은 자는 곧 그를 숨기고 오직 은밀히 하지 않을까 걱정하므로 비록 가까운 이웃이라도 볼 수 없으며, 사신이 중국으로부터 올 때마다 놀라서 얼굴빛이 달라져 서로 돌아보고 말하기를,

“무엇하러 왔는가? 계집아이를 취하는 것이 아닌가, 처첩을 취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윽고 군리(軍吏)가 사방으로 나와 집집을 탐색하여 혹 숨겼으면 누(累)가 그 이웃 마을에까지 매이며 그 친족을 속박하고 채찍으로 고달프고 괴롭도록 때려 나타난 뒤라야 그만 두니, 한 번 사신을 만나면 나라 안이 떠들썩하여 비록 개와 닭이라 할지라도 편안할 수 없습니다. 그 모아서 가림에 이르러서는 곱고 추함이 같지 않으며 혹은 그 사신에게 뇌물을 먹여서 그 욕심에 만족 시켰으니, 비록 아름다워도 버리며 버리고는 다른 것을 구하니 한 여인을 취할 때마다 수백 집을 살펴 다만 사신에게 맡기고는 감히 위반하지 못하였음은 다름이 아니라 내지(內旨)가 있다고 일컬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것이 한 해에 두 번도 되고 혹 한 번도 되며 한 해를 거르기도 하며 그 수는 많으면 사오십 명에 이릅니다. 이미 뽑히면 부모와 종족이 서로 모여 소리 내어 슬피 통곡을 하고 흐느낌으로 밤낮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으며, 국경의 문에 보낼 때에 이르러서는 옷을 당기고 엎어져 길을 막고 부르짖으며, 몹시 애통하고 화가 치밀어 우물에 투신하여 죽는 자도 있고 스스로 목매는 자도 있으며, 걱정과 근심에 기절하여 넘어지는 자도 있고 피나게 울어 실명하는 자도 있으니 이와 같은 따위는 다 기록할 수 없습니다. 그 처첩을 취하는 것은 비록 이와 같지 않다 해도 그 정을 거스리고 그 원한을 취함은 같습니다. 《서경》에 이르기를, ‘필부(匹夫)와 필부(匹婦)가 자기의 생업에 힘을 다할 수 없게 되면 백성의 주인인 임금도 더불어 그 공을 이룰 수 없다.’ 고 했습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국조의 덕화(德化)가 미치는 곳은 만물이 다 뜻대로 하는데 고려의 사람들은 유독 무슨 죄가 있어 이 고통을 받아야 합니까. 옛날 동해에는 원부(?婦)가 있어 삼 년이 크게 가물었는데, 지금 고려에는 몇 사람의 원부가 있겠습니까. 근년 그 나라는 홍수와 가뭄이 서로 거듭되어 백성이 주려 죽은 자가 매우 많으니, 어찌 그 원한과 한탄이 화기(和氣)를 상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당당한 천조(天朝)로써 어찌 후궁이 부족하여 반드시 외국에서 취한단 말입니까. 비록 조석으로 은혜를 받아 부모 향당의 품속에 있는 것 같음은 사람의 지극한 정이라 하겠으나, 그들을 궁성에 두어 기일을 어겨 아무 것도 해놓은 일 없이 헛되이 몸만 늙고 때로 혹 내 보내도 임금 곁에서 섬기는 소신(小臣)으로 돌아가 마침내 후사(後嗣)가 없는 자가 열에 다섯 여섯은 되니 원망하는 기운이 화기(和氣)를 손상시킴을 또 어떻게 하겠습니까. 일에 폐가 적고 나라에 이가 되는 것은 혹시 그럴 수도 있다지만, 그러나 폐단이 없는 것이 더 좋은 것만은 못한데 하물며 국가에 유익함이 없고 먼 곳의 사람에게 원한을 취하여 그 폐됨이 작지 않은 것에 있어서이겠습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덕음(德音)을 반포하소서. 감히 임금의 내지(內旨)를 범함이 있다면 이는 위로는 성청(聖聽)을 더럽히고 아래로는 자기의 이익을 위하는 것입니다. 계집아이를 취하는 자 및 그 나라에 사신으로 와서 처첩을 취하는 자는 법으로 금함을 명시하여 그 뒤의 원망을 끊고, 성조께서 친소의 차별 없이 널리 평등하게 사랑하는 교화를 밝히시어 외국의 정도(正道)를 사모하는 마음을 위로해서 원한이 사라지고 화기가 이르게 하여 만물이 자라나게 하신다면 못내 다행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