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記)
경사 곡적산 영암사 석탑 기(京師穀積山靈巖寺石塔記)
영암사의 동쪽 봉우리 석탑은 전 동지민장총관부사 박쇄노올대(前同知民匠摠管府事朴?魯兀大)가 사리(舍利)를 보관한 곳이다. 사리가 있는 곳에 탑이 있는 것은 불서에 기재되어 있으니, 석가여래께서 살아 있을 때에 칠보(七寶)로 된 것이 땅에서 솟아나서 불멸(佛滅)한 뒤에 아육왕(阿育王)이 지은 것이 서역에 널려 있고 천하에 퍼져서 지금까지 몇 천백 년이 지났지만 이따금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 있다. 박군은 삼한 사람인데 들어가서 내시가 되어 은택을 입은 것이 이미 오래되자 임금께 보답하고 사람들에게 이롭게 할 만한 것을 생각하다가, 진실로 좁쌀만한 부처의 사리 하나라도 얻어서 공경스럽게 공양하면 그 이른바 한량없이 복받는다는 것이 반드시 있으리라 하여 마음으로 구하기를 그치지 않더니, 몇 알을 얻어서 받들어 갖기를 여러 해 되었다. 얼마 후에 말하기를, “사리가 없어졌다 나타났다 하여 일정하지 않은 것은 사람의 부지런하고 게으른 것을 따르나니, 이제 나는 늙었다. 명산복지(名山福地)에 감추지 않았다가 뒤에 공경하고 믿는 사람이 혹 나와 같지 못하다면 어찌 내 집의 소유가 될 수 있으랴.” 하고, 마침내 장인을 불러서 감실을 부도(浮屠)의 법과 같이 만들고 가운데에 이것을 감추고 바깥으로는 그 면을 팔각으로 하여 여러 불상을 새기고 나에게 그 일을 글로 쓸 것을 청하여 그대로 새기려 한다 하였다. 나는 듣건대, 불자들이 말하는 사리라는 것은 범어(梵語)로서 이것을 번역하면 견고(堅固)하다는 뜻이다. 혹 믿지 않는 이가 있어서 쇠나 돌로 쳐서 부수려 하고 숯불로 태워 없애려 하나 쇠ㆍ돌ㆍ숯불은 부숴지고 없어져도 사리는 그대로 있었으니, 이것은 그 부처의 성질을 표현한 것이다. 박군이 능히 이것을 얻어서 가졌고, 또 능히 이 사리를 보관하는 장소를 마련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참례하여 그 복을 같이 하게 하니, 이 돌은 거꾸러져도 임금께 보답하고 사람들을 이롭게 하려는 마음은 견고하여 부서지거나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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