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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序) 송 김동년 동양 유상국서(送金同年東陽遊上國序) -이곡(李穀) -

천하한량 2007. 2. 10. 18:25

서(序)
 
 
송 김동년 동양 유상국서(送金同年東陽遊上國序)
 

초왕(楚王)이 박옥(璞玉)을 의심한 것은 박옥이 아름답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요, 노(魯) 나라 사람이 원거(爰居)를 제사(祭祀)지낸 것은 원거가 덕이 있는 소치가 아니다. 예나 지금에 있어 사군자(士君子)의 진퇴도 대개 이와 같다. 동년 김수재(金秀才)는 군자로서 그 행실이나 문장이 모두 여유가 있으나, 다만 진퇴의 사이에 뜻에 합당하지 않음이 있는 것같다. 그러나 그 마음은, 노 나라에서 날뛸진대 차라리 초(楚) 나라에서 넘어진 것만 못하다는 생각이니, 그 진퇴가 어찌 여유가 작작하지 않다 하겠으며, 대개 위태롭게 처신하여 요행을 바라는 자와는 천지의 차이가 있지 않은가.
군이 배양 시를 짓고 술을 나누는 자리에서 개연히 탄식하여 말하기를, “지금 우리 원 나라가 높고 혁혁하여 처음엔 무력으로 천하를 평정하고, 지금은 문치(文治)로 해내를 흡족하게 하여, 강태공처럼 낚시질하고 부열처럼 토목공사의 일꾼으로서 담장 쌓다가 기용되어 균형(鈞衡)을 담당하며, 초야를 떠나서 도의를 담론하는 자가 그 얼마인지 알 수 없으니, 남아는 한 고을만 지키고 한 가지 일에만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나는 장차 북으로 중국에 가서 배우겠다.”하고, 인하여 〈소아(小雅)〉 벌목편(伐木篇)의, “깊숙한 골짝을 벗어나서 우뚝한 나무에 옮긴다.[出于幽谷 遷于喬木]”는 구절을 외며 세 번이나 되씹으니, 유식자가 듣고 군의 쓸개가 당연히 몸보다 큰 것을 알았다.
나는 병으로 행보를 끊은 지 며칠이었는데, 어제 누가 와서 군의 북행을 말해주므로, 그 말과 행동이 일치함을 장하게 여기고 곧장 글 20자를 얽어서 작별의 시를 지었는데, 조금도 시서(時序)나 경치에 미치지 아니한 것은, 감히 그 화려한 것을 싫어서가 아니라 실로 문사에 졸(拙)하고 넉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