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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序) 송 정참군서(送鄭參軍序) -이곡(李穀) -

천하한량 2007. 2. 10. 18:26

서(序)
 
 
송 정참군서(送鄭參軍序)
 

한양 참군(漢陽參軍) 정영세(鄭永世)가 장차 부(府)로 가게 되자, 가까운 친구 10명이 동녘 들에 모여서 송별연을 베풀었다. 술이 이미 오고가자 정군이 일어나 읍하고 말하기를, “친구는 말로써 떠나는 자에게 선물하는 것이니, 어찌 술을 대접하는 데만 그칠 따름이랴.” 하므로, 나는 선뜻 대답하기를, “한양은 왕성 밖의 거진(巨鎭)으로 옛날부터 남경(南京)이라 칭하여, 동경ㆍ서경과 더불어 솥발처럼 우뚝하였다. 대개 선대의 도읍한 곳이 되어, 산하의 장려(壯麗)함과 인물의 번화함이 왕경과 어깨를 겨누게 되므로 그 땅의 장이 된 자는 반드시 굉장한 인격과 훌륭한 물망으로 사람들이 신복할 만해야 능히 하게 되며, 그 빈료(賓僚)ㆍ참좌(參佐)에 있어서도 또한 동일하였다. 국가가 난이 많은 뒤부터 일이 옛날과 달라져서 염치의 도는 없어지고 위아래가 서로 이익만을 일삼으니, 세력하는 자연히 겸병을 하게 되고, 혹독한 아전은 따라서 박탈을 자행하여 땅이라곤 송곳 하나 꽂을 곳이 없고, 집안은 텅 비어 현경(懸磬)의 한탄이 있다. 그러나 수령된 자는 앉아서 보고 감히 말도 하지 아니하며, 백성을 호령하여 자기 배를 부르게 할 따름이니, 백성의 피곤하고 무료함이 이보다 더 심한 적은 없었다. 경기도 수백 리가 더욱 그 해를 입었으니, 이른바 남경이란 곳은 쇠잔하고 피폐함이 갈수록 더하여 소조(蕭條)한 가시덤불 사이에 유민의 집이 8, 9호쯤 남은 정도이니, 그 나머지 군현은 족히 상상할 수 있다. 그 사이에는 어찌 백성에게 뜻을 두는 한두 사람이 없으랴마는, 역시 모두 인습적이요, 고식적으로 그렇게 지낼 뿐이다. 지금 정군은 재주가 높고 나이도 젊으며, 또 어질고 착한 부윤을 만나서, 계획하고 유락(唯諾)하게 되었으니 그 본뜻을 행하여 이익을 일으키고, 해독을 제거하여 노래[絃歌] 소리와 유과(?袴)의 칭덕(稱德)이 한 지경에 울리어 사방으로 뻗치게 하는 것이 이번 걸음에 있지 않은가. 혹자는 말하기를, ‘참군(參軍)은 하찮은 벼슬이니, 깊은 폐단을 갑자기 제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므로, 이는 그렇지 않다. 한 집이 인(仁)을 하면 한 나라가 인에 흉기하는 것이니, 군자는 자기 일에 극진할 따름이다. 진실로 능히 자기 일에 극진하여 백성의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삼으면 비록 적중하지 못할지라도 역시 멀지는 않을 것이니, 어찌 반드시 계급의 높고 낮음과 풍속의 흐리고 순박함을 따지리오.” 하니, 참군이 내 말을 불가하게 여기지 않고, 제군도 역시 그렇게 여기므로, 인하여 써서 여러 시(詩)의 머리에 관(冠)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