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序)
송 홍밀직 출진 합포서(送洪密直出鎭合浦序)
원 나라가 천하를 차지하여 만방을 신하로 삼았는데, 유독 왜인이 굴복하지 않으므로, 세조(世祖) 황제는 장수에게 명하여 남북으로 군사를 내보내어 동해에서 회합하는데, 전함(戰艦)이 공지를 메우고 깃발이 햇볕을 가리니, 왜인이 기(氣)가 질리고 담(膽)이 떨어져 도서(島嶼)에 잠복하고, 감히 나와 대적하지 못하였다. 이때에 원수[元戎]가 군사를 몰고 돌아와서 아뢰기를, “조그마한 섬 오랑캐는 족히 천주(天誅)를 가할 것까지는 없고, 오직 고려가 그 지역과 서로 바라보게 되어 배 하나로 건널 만하니, 마땅히 군사를 요새에 배치하여 위엄을 빛냄으로써 변방을 편안하게 하소서.” 하니, 황제는 그 청을 허락하였다. 이에 군사를 합포(合浦)에 두고 그 부수(府帥)ㆍ장좌(將佐)는 모두 신표를 주어서 우리 나라 사람들이 맡도록 하였으니 오직 편의를 따른 것이다.
경상ㆍ전라도를 이미 변방의 방어지로 삼았고, 또 재정의 염출이 한 나라의 부고(府庫)가 되므로, 이곳에 출진(出鎭)하는 자는 으레 순무사를 겸대(兼帶)하되, 반드시 중국 조정의 명을 받아서 능한 자를 뽑는 것은 아니다. 그 두 도를 안렴하고, 모든 주(州)를 다스리는 자는 소속되어 명을 받게 되니, 진실로 재주가 문무를 겸하고 지위와 물망이 뭇 사람을 복종시킨 자가 아니면 누가 능히 감당하랴.
지원(至元) 무인년 가을에, 판밀직(判密直) 홍공이 의정(議政)을 중지하고 방어에 나가게 되니, 송도(松都) 경대부가 노래와 시를 지어 아름다음을 찬양한다. 내가 진작 천자의 조서를 받들고 합포라는 곳으로 가보니, 모두(?頭) 의 굳센 군사가 그 병위(兵衛)를 맡았으니, 군용(軍容)의 강성함을 볼 수 있고, 총융(總戎)의 권세를 전임하여 상벌을 시행하기를 오직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되니, 또 주수(主帥)의 존엄을 볼 수 있다. 그 태평 시절을 당해서는 봉수(烽燧)에 주의하고 민병(民兵)을 무마하여, 고요하게 지키기를 이와 같이 할 따름이니, 이 군(軍)을 관장한 자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 수를 셀 수 있다. 한 마음의 의(義)냐, 이(利)냐 하는 데 서민의 즐거움과 슬픔이 매었으니, 삼가지 아니할 수 있으랴.
만약 혹시 그 일 없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어 치고 찌르고 하는 것을 익히지 않고, 그 농사짓고 땅을 지키는 것을 힘쓰지 않으며, 기름을 짜내고 뼈를 긁어내어 자기 사욕을 경영하는 짓은 공(公)이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두 도내 사람으로 하여금 호세(豪勢)의 침탈을 면하고, 유리의 근심을 놓으며 간위(姦僞)는 소멸되고 순박한 풍속이 회복되게 하는 것은 역시 지금으론 불가능한 것을 안다. 그러나 바람이 지나는 데는 풀이 쓰러지고, 가까운 데로부터 먼 데로 오르는 것이니, 만약 안렴(按廉)과 수령들로 하여금 모두 공(公)의 하지 않는 것을 본받고, 그 불가능한 바를 힘써 나가게 한다면 이는 우리들의 공에게 바라는 바요, 공 스스로의 기대하는 바일 것이다. 이를테면 다스리는 여가에 고운대(孤雲臺)에 올라서 고적을 찾아 구경하며 수창(酬唱)을 실컷하는 것은 비록 공이 우리들에게 구하는 바이지만, 우리들로서는 불가능한 것이니 한스러울 따름이다. 공의 행차에 이 글을 써서 별장(別狀)으로 삼는다.
[주D-001]모두(?頭) : 기사(騎士)의 별칭(別稱)임. 한관의(漢官儀)에, “옛날에는 우림군(羽林軍)을 뽑아서 모두(?頭)를 삼아 머리를 틀고 앞서 몰이하였다.” 했다.
'▒ 가정선생글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序) 기 박지평시서(寄朴持平詩序) -이곡(李穀) - (0) | 2007.02.10 |
---|---|
서(序) 송 신시승 입조서(送辛寺丞入朝序) -이곡(李穀) - (0) | 2007.02.10 |
서(序) 송 안수찬서(送安修撰序) -이곡(李穀) - (0) | 2007.02.10 |
서(序) 송 정참군서(送鄭參軍序) -이곡(李穀) - (0) | 2007.02.10 |
서(序) 송 김동년 동양 유상국서(送金同年東陽遊上國序) -이곡(李穀) - (0) | 2007.0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