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記)
신효사 신치 상주 기(神孝寺新置常住記)
지정 기축년 봄에 신효법사(神孝法師) 수공(修公)이 나에게 청하기를, “내가 어려서부터 종적을 여기에 의탁하였는데 이제는 이미 늙었다. 예날 우리 충렬왕(忠烈王)께서 이 절을 중흥(中興)시켰는데, 그 때에는 전세(田稅)로 해마다 들어오는 수입이 적지 않고, 단가(檀家 절에서 시주하는 집안)에서 날마다 시주하는 것이 끊기지 않아 창고의 저축이 가득하고, 부엌의 공궤가 풍족하고 깨끗하며 지내고 남은 것을 밀어 주어 날마다 곤궁한 사람을 살린 것이 얼마나 되는지도 몰랐다. 전하께서 별세하신 뒤로 10년 동안은 그래도 여전하였는데, 그 뒤 10여 년 동안에는 전지의 수입도 해마다 줄어들고 시주도 날마다 감소되어 거주하는 승려들이 그 부족함을 근심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 십 년간은 창고지기는 쌀이 다 떨어졌다고 알리고 요리사는 죽이 떨어졌다고 고하여, 절에 사는 중들이 이리저리 분주하게 걸식하는데 날마다 댈 수가 없어, 흩어져 다른 곳으로 가는 자가 열에 너덧은 되었다. 내가 차마 그대로 앉아서 보지 못하고 바랑의 저축을 회사하여 오승(五升) 베 1백 50필을 마련하고, 여러 단가(檀家)에서 시주한 베 3백여 필과 쌀 몇 십 석을 합하여 새로 사는 상주(常住)의 자본으로 만들고, 본전은 살리고 이자만 써서 영구한 이익을 도모하고, 모자라는 수요(需要)를 보충하려고 주창하는 자에게 말하기를, ‘많은 물줄기가 바다를 이루고, 여러 가벼운 물건이 수레의 굴대를 꺾나니, 어찌 이 물건들이 달마다 더하고 해마다 보태어 무진장(無盡藏)을 이루지 못하리라고 장담하랴’ 하고, 이어 약속하기를, ‘이 밑천을 마련한 것은 장차 급한 것을 도와 주자는 것이니, 진실로 급한 일이 있으면 임시로 빌리는 것은 어쩔 수 없으나, 그때그때 바로 반환하여 결손이 나지 않게 하고, 점점 축적됨을 기다려 베가 5천 필에 이르고 쌀이 천 석에 이른 연후에야 비로소 꺼내 쓸 수 있다고 하는 약속이 이미 이루어졌으니, 바라건대, 벽에 기록하여 뒷사람에게 보여 내 말을 잊지 말게 하라.’ 나는 법사와 친구이니, 감히 사양을 할까마는 앞사람이 지으면 뒷사람이 잇고, 앞사람이 이루면 뒷사람이 지키는 것은 앞사람과 뒷사람이 반드시 몸은 둘이나 마음은 하나요, 때는 다르나 힘을 같이 한 뒤에야 되는 것이다. 짓고 이룬 것은 이미 우리 법사가 했지만, 잇고 지키는 것은 누가 할 지 모르겠다. 적임자를 얻지 못한다면, 비록 간곡하게 되풀이하여 말하더라도 쓸데없는 문구만 될 뿐이니, 차라리 이 기(記)를 짓지 않는 것이 옳다.” 하였다. 법사가 말하기를, “난들 뒷사람에 대해서 어찌 보장하겠는가.”하길래, “그러면 어떻게 하겠는가.”하니, 말하기를, “부처님이 위에 계시니 마땅히 맹세하여 증거로 삼아야 한다. 뒷사람이 혹시라도 어기는 자가 있다면 남모르게 죽임이 있을 것이다.” 하였다. 내가 웃으며 허락하고 이에 쓴다. 이 해 청명절(淸明節)에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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