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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記) 고려국 증 광정대부 밀직사 상호군 박공 사당 기-이곡(李穀) -

천하한량 2007. 2. 10. 18:00

기(記)
 
 
고려국 증 광정대부 밀직사 상호군 박공 사당 기(高麗國贈匡靖大夫密直使上護軍朴公祠堂記)
 

유원(有元) 조열대부 동지대도로 제색민장 도총관부사(朝烈大夫同知大都路諸色民匠都摠管府事) 박군(朴君) 쇄노올대(?魯兀大)가 이미 그 선인(先人)을 위하여 신복사(神福寺) 중흥비(重興碑)를 세우고, 또 그 부모의 초상을 그리고 집을 짓고 제사하여 먼 조상을 추모하는 정성을 드렸으나 집에서 하지 않고 구태여 이 절에서 한 것은 대개 명복을 영원히 힘입으려는 것이다. 군이 내게 말하기를, “일찍이 유자(儒者)의 말을 들으니, ‘살아서 예(禮)로 섬기고 죽어서 예로 장사하고, 예로 제사하면 효라 할 수 있다.’하였는데, 내가 어려서부터 부모를 떠나 멀리 중국에 벼슬하여, 혼정신성(昏定晨省)을 알지 못하고, 달고 맛있는 것을 여쭙지 못하였으니, 살아계실 때 섬기는 예에 뒤졌다고 하겠고, 내가 궁궐에서 가까이 모시느라고 부모의 초상에 힘을 다하지 못하였으니, 돌아가셔서 장사하는 예에 부족하다 할 수 있다. 이제 가묘(家廟)의 제도가 폐지되고 복을 구한다는 말이 있으니 제사의 예에서도 다하지 못하였다 하겠다. 생각이 여기에 이를 때마다 마음 아프고 슬퍼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내가 비록 스스로 다하고자 하나 또 후사(後嗣)가 없으니, 진실로 선인의 제사가 오래가지 못할까 염려가 된다. 이 때문에 이 집을 짓고 또 시골에 있는 12결(結)이 넘는 밭을 희사하여 해마다 그 수입을 거두어 영구히 시사(時事) 지내는 자본으로 삼고, 우리 형제 자손들로 하여금 잊음이 없게 하노니, 그대는 나를 위하여 글을 지으라.” 하였다. 내가 박군의 일에 대하여 이미 신복사의 돌에 자세히 썼으니, 여기에서는 다시 말하지 않고 다만 그 말을 기록하고 아울러 그 밭의 네 경계를 비의 후면에 기재하고 또 박군을 위하여 그 형제 자손에게 고하기를, “형제는 동기(同氣)이다. 형제의 아들을 자식처럼 여기니, 박군 보기를 아비같이 하여야 할 것이다. 아비의 말을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하였다. 모든 자식이 부모를 섬김에 박군같이 하는 자는 또한 효도가 된다 하겠다. 너의 자식과 손자를 훈계하여 그 말을 잊지 않고 그 공적을 떨어뜨림이 없게 한다면 이 집이 헛되이 베푼 것이 되지 않고, 자자손손의 효도하고 공경하는 마음이 성하게 일어날 것이다. 지정 6년 세차(歲次) 병술년 정원 보름날에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