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패닉의 중심 마드리드
인천공항을 12시 30분에 출발하여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공항을 경유하다보니
무려 18시간이나 걸렸다.(시차, -7시간)
게다가 선물 보따리 2개까지 행방이 모연하여 공항에서 1시간 이상을 더 지체하게 되었다.
여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진이 다 빠져
출발이 개운치 않게 시작된 샘이었다.
가물거리는 조명에다 인기척이 없어 적막하기까지 한 대합실로 들어서는데,
“부에노스 디아스" - (Buenos dias-아침인사)
“자정이 훨씬 지났으니 아침인사를 드려야 하는 것이 맞겠는데요?"
하는 소리가 들렸다. 현지 안내를 맡아 줄 손용진씨였다.
키는 작은 편이었으나 굵은 목소리에 호감이 가는 인상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스페인을 돈키호테, 투우, 피카소 그리고 플라멩코의 나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인구가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인구보다
많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또한, 스페인이 히스패닉(Hispanic-스페인어를 쓰는 라틴 아메리카계 주민) 문화의 중심으로서
예술적 영광과 다채로운 문화의 보고(寶庫)임을 이해하는 사람도 적은 것이 사실이다.
하물며, 19세기 초 이베리아 반도를 침략했던 나폴레옹도 스페인이
이슬람교를 믿던 무어인(Moor인-8세기경 이베리아 반도를 정복한 아랍계 이슬람교도의 호칭)에게
수백 년간 지배를 받았고,
아랍인의 피까지 섞였다는 이유로 끝내 유럽국가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하니,
스페인에 대한 이해와 인식에 모두가 옹색했음을 짐작할 수 있겠다.
마드리드(Madrid, ‘깨끗한 물’이라는 뜻)는 유럽의 도시 중 가장 높은 해발 646m에 위치해있다.
1557년 마드리드 남서쪽으로 70km 떨어진 톨레도(Toledo)에서 천도(遷都)해 온 이후
스페인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도시는 일반적으로 구시가와 신시가 그리고 외곽지역으로 구분되며,
구시가는 왕궁을 비롯하여 미술관, 박물관 등 주로 스페인의 혼을 담고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마드리드의 새벽이 밝아오기 시작하였다.
동쪽에서 온 이방인은 호기심과 설렘으로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거리다
아예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거리로 나와 버렸다.
서서히 윤곽이 짖어지는 3월의 마지막 아침은 정렬의 나라답지 않게 조용하게 밝아오고.
공원의 나무들은 잠시 전 지나간 봄비로 상큼함이 더했다.
아침 식사를 마친 다음 구시가로 향했지만 러시아워로 차량 정체가 있었다.
하지만 다닐 수 없는 도시의 면면을 찬찬히 관찰하기에는 그만이었으므로 고맙기까지 하였다.
수백 년이 된 도심의 건물과 조각들은 고색창연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고,
내가 방문한 한 기관도 문화재로 보호되어야 할 건물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
이들의 유구(悠久)한 석조물을 보면서 우리 목조문화의 소실(燒失)을 아쉽게 생각하였다.
‘시벨레스 광장(Plaza de Cibeles)’을 지나 마드리드의 심장인 ‘태양의 문(Puerta del Sol)’에 도착하였다.
마드리드 관광의 거점이기도한 푸에르타 델 솔은 16세기까지 만해도
태양의 모습이 새겨진 성문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생각과는 달리 아주 좁은 도로였다.
그러나 스페인 곳곳으로 통하는 9개의 도로가 시작되는 상징적인 곳인 만큼 여행객들로 북적거렸다.
에스파냐의 여행은 이 곳 부터 시작되었다.
성 아우쿠스티누스는 이렇게 말했다.
"세계는 한 권의 책이다.
여행하지 않는 자는 그 책의 단지 한 페이지만을 읽을 뿐이다."
그렇다.
나는 어디를 가든지 한 권의 책속 주인이고 싶었다.
그 곳이 어디든 일부가 되려고 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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