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일[병신/8월24일] | 맑다. 새벽에 망궐례를 행했다. 저녁 나절에 파지도권관 송세응이 돌아갔다. 오후에 활터로 가서 말을 달리다가 저물어서 돌아왔다. 부산에 갔던 곽언수가 돌아와서 통신사의 회답 편지를 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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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일[정유/8월25일] | 비가 몹시 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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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3일[무술/8월26일] | 맑다가 이따금 비가 뿌렸다. 조방장·우후·충청우후가 와서 보기에 그대로 나가 활을 쏘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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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4일[기해/8월27일] | 맑다. 샛바람이 세게 불었다. 아들 회·면, 조타 완 등이 나갔다. 정선도 나갔다. 정사립이 휴가를 받아서 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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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5일[경자/8월28일] | 맑다. 몸이 불편하여 공무를 보자 않았다. 가리포첨사가 와서 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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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6일[신축/8월29일] | 흐리되 비는 아니오다. 아침에 조방장 김완, 충청우후·경상우후 등이 문병을 왔다. 당포만호는 그 어머니의 병환이 심하다고 와서 알렸다. 경상수사 및 우수사가 와서 봤다. 조방장 배흥립이 들어왔다. 날이 저물어서 돌아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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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7일[임인/8월30일] | 비오다가 저녁 나절에 개었다. 몸이 불편하여 공무를 보지 않았다. 서울에 편지를 썼다. 이 날 밤 땀이 위 아래 두 옷을 적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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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8일[계묘/8월31일] | 흐리되 비는 아니오다. 강희로가 이곳에 와서 남해현령의 병이 차츰 나아진다고 했다. 그와 함께 밤이 되도록 이야기했다. 중 의능이 날삼[生麻] 백 스무 근을 가져와서 바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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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9일[갑진/9월1일] | 흐리다. 아침에 중 수인에게서 날삼[生麻] 삼백 서른 근을 받아들였다. 마량첨사 김응황이 직무평가에서 하등점[居下]을 맞고 나갔다. 저녁 나절에 나가 공무를 봤다. 활 열 순을 쏘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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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0일[을사/9월2일] | 맑다. 아침에 충청우후가 문병을 왔다가 그대로 조방장과 함께 아침식사를 했다. 몸이 몹시 볼편하여 한참 동안이나 베개를 베고 누워 있었다. 저녁 나절에 두 조방장 및 충청우후를 불러다가 상화떡을 같이 맛보았다. 어두워지니 달빛은 비단같고, 나그네 회포는 만 갈래여서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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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1일[병오/9월3일] | 맑으나 바람이 세게 불다. 조방장 배흥립과 함께 같이 아침식사를 하고 그와 같이 활터 정자에 가서 말달리는 것을 구경하고서 영으로 돌아왔다. 초저녁에 거제현령이 달려와서 보고하기를, “왜적선 한 척이 등산(登山 : 마산시 합포구 진동면)에서 송미포(거제군 장목면 송진포)로 들어온다”고 했다. 밤 열 시쯤에 또 보고하기를, “아자포(阿自逋)로 옮겨 대었다”고 했다. 배를 정하여 내어 보낼 즈음에 또 보고하기를, “견내량을 넘어갔다”고 했다. 그래서 복병장에게 잡으라고 명령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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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2일[정미/9월4일] | 맑다. 샛바람이 세게 불어 동쪽으로 가는 배는 도저히 오갈 수가 없었다. 오랫동안 어머니의 안부를 알지를 못했으니 몹시도 답답하다. 우수사가 와서 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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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3일[무신/9월5일] | 맑다가 흐리며 샛바람이 세게 불다. 충청우후와 함께 활을 쏘았다. 이 날 밤 땀이 흘러 등을 적시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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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4일[기유/9월6일] | 흐리다. 샛바람이 계속 불어 벼가 상했다고 한다. 주방장 배흥립과 충청우후와 같이 이야기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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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5일[경술/9월7일] | 새벽에 비오다. 저녁 나절에 우수사·경상수사 및 두 조방장과 충청우후, 경상우후, 가리포첨사, 평산포만호 등 열 아홉 명의 여러 장수들이 모여 이야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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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6일[신해/9월8일] | 맑다. 마파람이 세게 불었다. 강희로가 남해로 돌아갔다. 몸이 불편하여 종일 누워 신음했다. 저녁에 체찰사가 진주성에 왔다는 공문이 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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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7일[임자/9월9일] | 맑다. 경상수사, 충청우후, 거제현령이 와서 봤다. 체찰사 앞으로 사람을 찾으러 내 보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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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8일[계축/9월10일] | 비가 오락가락하다. 한밤 자정에 죄인에게 특사를 내리는 조칙문을 가지고 온 차사원 구례현감(이원춘)이 들어왔다. 땀을 흘리는게 예사 일이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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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9일[갑인/9월11일] | 흐렸다 맑았다 하다. 새벽에 여러 장수들과 함께 죄인에게 특사내리는 조칙문에 숙배하고 그대로 그들과 같이 아침사를 했다. 구례현감이 아뢰고 돌아갔다. 송의련이 본영에게 아들 울의 편지를 가지고 들어왔는데, “어머니께서 편안하시다”고 했다. 다행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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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0일[을묘/9월12일] | 샛바람이 세게 불다. 새벽에 전선(戰船)을 만들 재목을 끌어내리는 일로 우도 군사 삼백 명, 경상도 군사 백 명, 충청도 군사 삼백 명, 전라좌도 군사 삼백 아흔 명을 송희립이 거느리고 갔다. 늦은 아침에 조카 봉.해와 아들 회.면, 조카 완과 최대성, 윤덕종, 정선 등이 들어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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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1일[병진/9월13일] | 맑다. 식사를 한 뒤에 활터 정자에 앉아 아들들에게 화살 쏘는 연습과 말달리며 활을 쏘는 것을 시켰다. 조방장 배흥립, 조방장 김완과 충청우후가 아울러 왔다. 같이 점심을 먹고 저물어서 돌어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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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2일[정사/9월14일] | 맑다. 경상수사가 와서 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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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3일[무오/9월15일] | 맑다. 활터에 가 보았다. 경상수사도 와서 같이 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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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4일[기미/9월16일] | 맑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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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5일[경신/9월17일] | 맑다. 우수사·경상수사가 와서 보고 돌아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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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6일[신유/9월18일] | 맑다. 새벽에 출항하여 사천항에 이르러 머물러 잤다. 충청우후와 함께 종일 이야기하고 헤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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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7일[임술/9월19일] | 맑다. 일찍 출항하여 사천현에 이르렀다. 오후에 그대로 진주성으로 가서 체찰사(이원익)를 뵙고 종일 의논했다. 김응서도 왔다가 곧 돌아갔다. 저물 무렵에 진주목사(나정언)의 처소로 돌아와서 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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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8일[계해/9월20일] | 맑다. 이른 아침에 체찰사 앞으로 가서 종일 여쭙고 의논하여 결정하고, 초저녁이 지나서 진주목사의 처소로 돌아왔다. 진주목사와 함께 밤들도록 이야기하고 헤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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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9일[갑자/9월21일] | 맑다. 일찍 떠나 사천에 이르러 아침밥을 먹은 뒤에 그대로 가서 선소리(사천군 용현면 선진리)에 이르렀다. 고성현령(조응도)도 왔다. 삼천포권관과 이곤변이 뒤따라 도착했다. 밤들도록 이야기하고, 구라량(仇羅梁)에서 잤다. |
윤8월1일[을축/9월22일] | 맑다. 일식(日飾)을 했다. 이른 아침에 비망(飛望) 나루에 이르러 이곤변 등과 함께 같이 아침식사를 하고 서로 헤어졌다. 저물어서 진중에 이르니, 우수사·경상수사가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수사와는 서로 만나서 이야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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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8월2일[병인/9월23일] | 맑다. 여러 장수들이 와서 봤다. 저녁나절에 경상수사·우수사가 와서 이야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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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8월3일[정묘/9월24일] | 맑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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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8월4일[무진/9월25일] | 비오다. 이 날 밤 열 시쯤에 땀을 흘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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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8월5일[기사/9월26일] | 맑다. 활터 마루에 가서 아이들(아들들을 말함)이 말달리고 활쏘는 것을 구경했다. 하천수가 체찰사 앞으로 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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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8월6일[경오/9월27일] | 맑다. 식사를 한 뒤에 경상수사 및 우수사와 함께 활터 마루로 가서 말달리고 활쏘는 것을 구경하고 저물어서 돌아왔다 방답첨사가 진에 이르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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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8월7일[신미/9월28일] | 맑다. 아산의 종놈 상시(尙是)가 들어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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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8월8일[임신/9월29일] | 맑다. 식사를 한 뒤에 활터 마루로 가서 말달리고 활쏘는 것을 구경했다. 광양현감, 고성현령이 시험관으로서 들어왔다. 하천수가 진주에서 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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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8월9일[계유/9월30일] | 맑다. 아침에 광양현감이 교서에 숙배했다. 조카 봉, 아들 회 및 김대복이 교서에 숙배하고서 그대로 이들과 함께 이야기했다. 이 날 밤에 우수사·경상수사가 와서 이야기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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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8월10일[갑술/10월1일] | 맑다. 우수사·경상수사, 조방장 배흥립이 같이 와서 밤 열 시쯤에 헤어져 돌아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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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8월11일[을해/10월2일] | 맑다. 체찰사를 기다릴 일로 출항하여 당포에 이르니, 초저녁에 체찰사에게 문안갔던 사람이 돌아와서 “14일에 떠난다”고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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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8월12일[병자/10월3일] | 맑다. 종일 노를 바삐 저어 밤 열 시쯤에 어머니 앞에 이르니, 흰 머리카락이 에부수수하신데 나를 보고 놀라 일어나시어 눈물을 머금고 서로 붙들고 밤새도록 위로하며 기쁘게 해 드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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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8월13일[정축/10월4일] | 맑다. 아침식사를 곁에서 모시고 드시게 하니 대단히 기뻐하시는 빛이다. 저녁 나절에 하직인사를 여쭙고 본영으로 왔다. 오후 여섯 시쯤 작은 배를 타고 밤새도록 노를바삐 저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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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8월14일[무인/10월5일] | 맑다. 새벽에 두치(하동읍 두곡리)에 이르니, 체찰사와 부찰사가 어제 벌써 도착하여 잤다고 했다. 뒤미처 점검하는 곳으로 가서 소촌찰방을 만나고 일찍 광양현에 이르렀다. 지나온 지역이 하나같이 쑥대밭이 다 되어 그 참상을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었다. 임시로나마 전선 정비하는 것을 면제해 주어 군사와 백성들의 피로를 풀어 주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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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8월15일[기묘/10월6일] | 맑다. 일찍 떠나 순천에 이르니 “체찰사 일행이 순천부 청사에 들어갔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정사준의 집에서 묵었다. 순찰사도 와서 같이 이야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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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8월16일[경진/10월7일] | 맑다. 이 날은 그대로 머물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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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8월17일[신사/10월8일] | 맑다. 저녁 나절에 낙안군으로 가는데, “이호문·이지남 등이 와서 보고 고치기 어려운 폐단이 오로지 수군에 있다”고 진술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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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8월18일[임오/10월9일] | 맑다. 종사관 김용(金涌)이 서울로 갔다.1) 일찍 떠나 양강역(陽江驛)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나서 산성으로 올라가 멀리 바라보며 각 포구와 여러 섬들을 손가락으로 짚어 주었다. 그 길로 홍양(고흥읍)으로 향했다. 저물 무렵에 홍양현에 이르러 향소청(鄕所廳)에서 잤다. 어두워서 이지화가 와서 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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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8월19일[계미/10월10일] | 맑다. 떠나서 녹도(고흥군 도양면 녹두)로 향하여 가는 길에 도양(도덕면 도덕리)의 둔전을 살펴 보았다. 체찰사는 매우 기뻐하는 빛이 많았다. 녹도에 이르러 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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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8월20일[갑신/10월11일] | 일찍 떠나 배를 타고 체찰사와 부찰사와 함께 같이 앉아 종일 군사일을 이야기했다. 저녁 나절에 백사정에 이르러 점심을 먹은 뒤에 그 길로 장흥부에 이르렀다. 나는 관청의 동헌에서 잤다. 김응남이 와서 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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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8월21일[을유/10월12일] | 맑다. 그대로 머물러 자는데 정경달이 와서 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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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8월22일[병술/10월13일] | 맑다. 저녁 나절에 병영(해남군 고군면 병영)에 이르렀다. 병사와 서로 만나 보았다. 병사(兵馬節度使)는 원균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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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8월23일[정해/10월14일] | 맑다. 그대로 병영에 머물렀다.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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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8월24일[무자/10월15일] | 나는 부찰사(한효순)와 같이 가리포(완도군 와도읍 군내리)로 갔더니 우우후 이정충도 먼저 와 있었다. 남쪽 망대로 같이 올라가니 좌우의 적들이 다니는 길과 여러 섬들을 역력히 헤아릴 수 있었다. 참으로 한 도[一道]의 요충지이다. 그러나 형세가 외롭고 위태롭기 때문에 하는수없이 이진(해남군 북평면 이진리)으로 옮겨 합치기로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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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8월25일[기축/10월16일] | 일찍 떠나 이진에 이르러 점심을 먹은 뒤에 곧 해남으로 갔다. 도중에 김경록이 술을 차고 와서 봤다. 어느 결에 날이 저물어 횃불을 밝히고 가니, 밤 열 시께에야 해남현에 이르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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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8월26일[경인/10월17일] | 맑다. 일찍 떠나 우수영(해남군 문내면]에 이르렀다. 나는 곧 태평정(太平亭)에서 자고서 우후와 함께 이야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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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8월27일[신묘/10월18일] | 맑다. 체찰사가 진도에서 영(우수영)으로 들어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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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8월28일[임진/10월19일] | 비가 조금 내렸다. 우수영에서 머물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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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8월29일[계사/10월20일] | 비가 조금 내렸다. 이른 아침에 남리역(해남군 황산면 남이리)에 이르렀다. 오후에 해남현에 이르렀다. 소국진을 본영으로 보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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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내용은 초서본 『난중일기』에는 없음. 2) 초서본 『난중일기』의 이 날짜에는 날씨 '晴(맑다)'만 적혀있고, '仍留兵營' 즉 이순신 장군이 "원균의 병영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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