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웅이순신 ▒

1596년 5월 선조 29년 병신년 (충무공 이순신 52세)

천하한량 2007. 5. 5. 18:36

 

 

 

 

 

5월1일[정묘/5월27일] 흐리다. 경상수사가 와서 봤다. 한번 목욕했다.
5월2일[무진/5월28일] 맑다. 일찍 목욕하고 진으로 돌아왔다. 총통 두 자루를 부어 만들었다. 조방장 감완 및 조계종이 와서 봤다. 우수사가 김인복의 목을 베어 효시했다.
5월3일[기사/5월29일] 막다. 가뭄이 너무너무 심하다. 근심되고 괴로운 맘을 어찌 다 말하랴! 경상우후가 와서 활 열 다섯 순을 쏘았다.
5월4일[경오/5월30일] 맑다. 이 날은 어머니 생신인데 헌수하는 술 한 잔도 올려 드리지 못하여 마음이 편안하지 않다. 우후가 앞산마루에서 여귀(제사 못받은 귀신)에게 제사지냈다.
5월5일[신미/5월31일] 맑다. 회령포만호가 교서에 숙배한 뒤에 여러 장수들이 와서 모였다. 그대로 들어가 앉아서 위로하고 술을 네 순배를 돌렸다. 경상수사가 술이 거나하게 취했으므로 씨름을 시켰더니, 낙안군수 임계형이 으뜸이다. 밤이 깊도록 이들로 하여금 즐겁게 마시고 뛰놀게 한것은 억지로 즐겁게 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고생한 장병들의 노고를 풀어 주고자 한 것이었다.
5월6일[임신/6월1일] 저녁 나절에 큰비가 왔다. 농민의 소망을 흡족하게 채워주니 기쁘고 다행한 마음을 이루 말할 수 없다. 아들 울과 김대복이 같은 배로 나갔다. 어두울 무렵 총통 만들 때에 쓰는 숯을 쌓아두는 창고에 불이 일어나 홀랑 다 타버렸다. 이는 감독관[監官]들이 부지런하지 않은 탓이다. 한탄스럽다.
5월7일[계유/6월2일] 저녁 나절에 개었다. 이영남이 들어왔다. 불러 들여 조용히 지난 일을 이야기했다.
5월8일[갑술/6월3일] 맑다. 이영남과 함께 이야기했다. 저녁 나절에 나가 공무를 봤다. 경상수사가 와서 봤다. 활 열 순을 쏘았다. 몸이 몹시 불편하여 두번이나 구토했다. 저녁에 조카 완이 들어왔다. 김효성 및 비인현감(신경징)도 들어왔다.
5월9일[을해/6월4일] 맑다. 몸이 몹시 불편하다. 이영남과 함께 서관(진關 : 황해도·평안도)의 일을 이야기했다.
5월10일[병자/6월5일] 맑다. 나라 제사날(태종의 제사)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몸도 불편하여 종일 신음했다.
5월11일[정축/6월6일] 맑다. 식사를 한 뒤에 나가 공무를 봤다. 비인현감 신경징에게 기일을 어긴 죄를 처벌했다. 또 순천 격군을 감독하는 감관 조명의 죄를 곤장쳤다. 몸이 불편하여 일찍 들어와 신음했다. 거제현령·영등포만호와 이영남과 같이 잤다.
5월12일[무인/6월7일] 맑다. 이영남이 돌아갔다. 몸이 불편하여 종을 신음했다. 김해부사(백사림)의 긴급보고와 부산에서 왜놈에게 붙었던 김필동의 편지[告目]도 왔다. "풍신수길이 하는 일로써 비록 정사(正使)는 없을지라도 부사(副使)가 그대로 있으니, 곧 화친하고 군사를 철수하려고 한다"고 했다.
5월13일[기묘/6월8일] 맑다. 부산의 허내만의 편지[告目]에, "가등청정이란 놈이 벌써 초열흘에 그의 군사를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갔고, 각진의 왜놈들도 장차 철수해 갈 것이요, 부산의 왜놈은 명나라 사신을 모시고 바다를 건너가기 위하여 아직 그대로 머물고 있다"고 했다. 이 날 활 아홉 순을 쏘았다.
5월14일[경진/6월9일] 맑다. 김해부사 백사림의 긴급 보고도 허내만의 편지[告目]와 같다. 그래서 순천부사에게 통보하여 그로 하여금 차례로 통보하게 했다. 활 열 순을 쏘았다. 결성현감 손안국이 나갔다.
5월15일[신사/6월10일] 맑다. 새벽에 망궐례를 행했다. 식사를 한 뒤에 홀로 말을 타고 한산도 뒷산 마루로 달려 올라가 다섯 섬과 대마도를 바라보았다. 저녁 나절에 작은 개울가로 돌아왔다. 조방장·거제현령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저물어서야 진으로 돌아왔다.
5월16일[임오/6월11일] 맑다. 충청우후(원유남)·홍주판관(박륜)·비인현감(신경징)·파지도권관(송세응) 및 우수사(이억기)가 와서 봤다.
5월17일[계미/6월12일] 종일 비오다. 농사에 아주 흡족하다. 점쳐 보니 풍년이 들 것같다.
5월18일[갑신/6월13일] 비가 잠깐 개긴 했으나, 바다의 안개는 걷히지 않았다. 저녁 나절에 나가 공무를 보고 활을 쏘았다. 저녁에 탐후선이 들어와서 "어머니께서 편안하시다"고 했다.
5월19일[을유/6월14일] 맑다. "방답첨사(장린)가 모친상을 입었다"는 말을 듣고 우후를 가장(假將)으로 정하여 보냈다. 활을 쏘았다. 땀이 온몸을 적셨다.
5월20일[병술/6월15일] 맑다. 웅천현감 김충민이 와서 봤다. 사도첨사가 돌아왔다.
5월21일[정해/6월16일] 맑다. 우후 등과 함께 활을 쏘았다.
5월22일[무자/6월17일] 맑다. 충청우후 원유남, 좌우후 이몽구, 홍주판관 박륜 등과 함께 활을 쏘았다. 홍우(洪祐)가 장계를 가지고 순찰사 영으로 갔다.
5월23일[기축/6월18일] 흐리다. 충청우후 등과 함께 활 열 다섯 순을 쏘았다. 아침에 미조항첨사 장의현이 교서에 숙배한 뒤에 장흥으로 부임했다.
5월24일[경인/6월19일] 흐리다. 나라 제사날(문종의 제사)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부산 허내만의 편지[告目]가 들어왔다. 좌도의 각진의 왜놈들이 몽땅 철수하고 다만 부산에만 머물러 있다고 했다.
5월25일[신묘/6월20일] 종일 비오다. 홀로 다락 위에 앉아 있으니, 온갖 생각이 다 일어난다. 우리나라 역사를 읽어 보니 개탄스런 생각이 많이 난다.
5월26일[임진/6월21일] 음침한 안개가 걷히지 않고 마파람이 세게 불다. 저녁 나절에 나가 공무를 봤다. 충청우후 및 우후 등과 함께 활을 쏠 적에 경상수사도 와서 같이 활 열 순을 쏘았다.
5월27일[계사/6월22일] 종일 가랑비 오다. 충청우후·좌우후가 이곳에 와서 종정도를 내기했다.
5월28일[갑오/6월23일] 궂은비가 갇히지 않았다. 소문에 "전라감사(홍세공)가 파면되어 갈렸다"고 한다. "가등청정이 부산으로 도로 왔다"고 했다. 모두 믿을 수 없다.
5월29일[을미/6월24일] 궂은비가 저녁 때까지 오다. 고성현령·거제현령이 와서 보고는 돌아갔다.
5월30일[병신/6월25일] 흐리다. 곽언수가 들어왔다. 영의정(유성룡) 맟 영부사 정탁1), 지사 윤자신2), 조사척, 신식, 남이공의 편지가 왔다. 저녁 나절에 우수사에게 가서 보고 종일 무척 즐기다가 돌아왔다.

1) ① 앞의 병신년 4월 15일자 일기 주석 참조. 지중추부사의 잘못된 기록임. 초서본 『난중일기』의 판부사는 윤두수였고, 영부사는 이산해였음, ② 『선조실록』권84, "선조 30년 1월 27일(무오)지중추부사 정탁"이라 했음.
2) 尹自新(1526∼1601)은 호조참판, 자헌, 정헌을 거쳐 이때는 지돈녕부사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