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웅이순신 ▒

1596년 4월 선조 29년 병신년 (충무공 이순신 52세)

천하한량 2007. 5. 5. 18:32

 

 

 

 

 

4월1일[정유/4월27일] 큰비가 오다. 신 사과와 함께 이야기했다.
4월2일[무술/4월28일] 맑다. 경상수사가 부찰사를 마중하는 일로 나갔다. 신 사과는 같은 배로 갔다.
4월3일[기해/4월29일] 맑다. 어제 저녁에 견내량 복병이 달려와 "왜놈 네 명이 부산에서 장사하며 이익을 늘리러 나왔다가 바람에 표류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새벽에 녹도만호 송여종을 보내어 그렇게 된 까닭을 묻고 그 정상[情跡]을 살펴보니, 정탐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들의 목을 베었다.
4월4일[경자/4월30일] 흐리다. 아침에 오철이 나갔다. 우수사에게 가 보고는 취하여 이야기하고서 돌아왔다. 충청도의 군대에 울짱[木柵]을 쳤다.
4월5일[신축/5월1일] 맑다. 부찰사(한효순)가 들어왔다.
4월6일[임인/5월2일] 흐리다. 부찰사가 활쏘기를 시험했다.
4월7일[계묘/5월3일] 맑다. 부찰사가 나가 앉아 상을 나누어 주었다. 부산 사람이 들어왔는데, "명나라 사신(이종성)이 달아났다"고 하니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4월8일[갑진/5월4일] 종일 비오다. 저녁 나절에 부찰사와 같이 마주 앉아 마시니 몹시 취하였다. 초파일이라 등불을 켜 달고 헤어졌다.
4월9일[을사/5월5일] 맑다. 부찰사가 나가므로 포구로 나가 같이 배에서 이야기하고 헤어졌다.
4월10일[병오/5월6일] 맑다. 소문에 암행어사가 들어온다고 한다. 저녁 나절에 암행어사가 들어와서 같이 이야기했다. 촛불을 밝혀주고 헤어졌다.
4월11일[정미/5월7일] 맑다. 어사와 같이 마주하여 조용히 이야기했다. 장병들에게 음식을 먹였다. 활 열 순을 쏘았다.
4월12일[무신/5월8일] 맑다. 어사가 밥을 지어 군사들에게 먹이게 한 뒤에 활 열 순을 쏘고 종일 이야기했다.
4월13일[기유/5월9일] 맑다. 어사와 함께 마주해 있다가 저녁나절에 포구로 나갔더니 마파람이 세게 불어 출항하지 못했다. 선인암으로 가서 종일 이야기하고 어두워져서야 서로 헤어졌다.
4월14일[경술/5월10일] 궂은비가 종일 오다, 홍주판관(朴崙)·당진만호(趙孝悅)가 교서에 숙배한 뒤에 충청우후 원유남에게 곤장을 쳤다. 당진만호도 같은 벌을 받았다.
4월15일[신해/5월11일] 맑다. 단오절의 진상품을 봉해서 곽언수에게 주어 보냈다. 영의정(유성룡), 영부사 정탁1), 판서 김명원, 지사 윤자신, 조사척, 신식, 남이공 앞으로 편지를 썼다.
4월16일[임자/5월12일] 맑다. 우수사·경상수사 및 가리포첨사·방답첨사와 같이 이야기하다가 밤이 되어서야 헤어졌다. 이날밤 바다에는 달빛이 차게 비치고 잔 물결 한 점 일지 않았다. 다시 땀을 흘렸다.
4월17일[계축/5월13일] 맑다. 아우 여필 및 아들 면이 종을 데리고 돌아갔다.
4월18일[갑인/5월14일] 맑다. 각 고을과 포구에 공문을 써 보냈다. 저녁 나절에 충청우후·경상우후·방답첨사, 조방장 감완이 활 스무 순을 쏘았다. 마도의 군관이 복병한 곳에서 투항해 온 왜놈 한 명을 잡아 왔다.
4월19일[을묘/5월15일] 맑다. 습열(濕熱)로 침 20여 곳을 맞았다. 이 날 난에목(南汝文) 편에 "풍신수길이 죽었다"는 말을 들었으나 믿을 수는 없다.
4월20일[변진/5월16일] 맑다. 경상수사가 와서 내일 만나자고 청했다.
4월21일[정사/5월17일] 맑다. 경상수사의 진으로 가는 길에 우수사의 진에 들렀다가 경상수사를 맞이하여 종일 활을 쏘았다.
4월22일[무오/5월18일] 맑다. 부산 허내만이 보낸 편지[告目]에 명나라 사신(이종성)이 달아나고 부사(양방형)는 여전히 왜놈의 진영에 있는데, 4월초파일에 달아난 사유를 상부에 아뢰었다고 했다.
4월23일[기미/5월19일] 맑다. 첨지 김경록이 들어왔다. 일찍 아침밥을 먹고 나가 앉아 같이 술을 마셨다. 저녁 나절에 군사들 중에서 힘센 자들을 뽑아 씨름을 시켰더니, 성복이란 자가 판을 독차지하였다. 그래서 상을 주었다. 충청우후 원유남, 마량첨사, 당진만호, 홍주판관, 결성현감, 파지도권관, 옥포만호 등과 같이 활 열 순을 쏘았다.
4월24일[경신/5월20일] 맑다. 식사를 한 뒤에 목욕을 하고 나와 여러 장수들과 함께 이야기했다.
4월25일[신유/5월21일] 맑다. 우수사가 와서 이야기했다. 목욕탕에 들어가니 물이 너무 뜨거워 오래 있지 못하고 도로 나왔다.
4월26일[임술/5월22일] 맑다. 경상수사가 와서 봤다. 체찰사의 군관도 왔다. 목욕했다.
4월27일[계해/5월23일] 맑다. 체찰사의 공문 회답이 왔다. 목욕했다.
4월28일[갑자/5월24일] 맑다. 여러 장수들이 모두 와서 봤다. 두번 목욕했다.
4월29일[을축/5월25일] 맑다. 한번 목욕했다.
4월30일[병인/5월26일] 맑다. 한번 목욕했다. 부산의 허내만의 편지[告目]에 소서행장이 군사를 철수할 뜻이 있는 것같다고 했다. 감경록이 돌아갔다. 어머니께서 무사하다는 편지가 왔다.

1) 鄭琢(1526∼1605)은 1594년 의금부사, 1596년엔 지중추부사였으며, 1600년에 좌의정, 1603년에 영중추부사였으므로 知府使를 잘못 쓴 기록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