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웅이순신 ▒

1596년 3월 선조 29년 병신년 (충무공 이순신 52세)

천하한량 2007. 5. 5. 18:30

 

 

 

 

 

3월1일[무진/3월29일] 맑다. 새벽에 망궐례를 행했다. 아침에 경상수사가 와서 이야기하고 돌아갔다. 저녁 나절에 해남현감 유형(柳珩), 임치점사 홍견, 목포만호 방수경에게 기일을 어긴 죄로 처벌했다. 해남현감은 새로 부임해 왔으므로 곤장을 치지는 않았다.
3월2일[기사/3월30일] 맑다. 아침에 장계 초잡은 것을 수정했다. 보성군수가 들어왔다. 몸이 몹시 불편하여 공무를 보지 않았다.
3월3일[경오/3월31일] 맑다. 이원룡이 본영으로 돌아갔다. 저녁 나절에 반관해(潘觀海)가 왔다. 정사립 등을 시켜 장계를 썼다. 이 날은 명절(삼짇날)이라 방답첨사·여도만호·녹도만호 및 남도포만호 등을 불러 술과 떡을 먹였다. 송희립을 우수사에게 보내어 뉘우치는 뜻을 전하니, 은근하게 대답하더라고 했다.
3월4일[신미/4월1일] 맑다. 아침에 장계를 봉했다. 느지막이 보성군수 안흥국을 기일을 어긴 죄로 처벌했다. 오후에 출항하여 곧바로 소근포 끝으로 돌아 경상우수사가 있는 곳에 이르니, 좌수사 이운룡도 왔다. 조용히 이야기하고서 그대로 자리도(佐里島 : 진해시 웅천동) 바다 가운데서 같이 잤다.
3월5일[임신/4월2일] 맑다. 새벽 세 시에 출항하여 해가 뜰 무렵에 견내량의 수사가 복병한 곳에 이르니, 마침 아침먹을 때였다. 그래서 밥을 먹고 난 뒤에 서로 보고서 그대로 이정충의 장막으로 들어가 조용히 이야기했다. 비가 많이 쏟아지므로 먼저 배로 내려가니, 회·해·면·울 및 수원 등이 함께 와 있었다. 비를 맞으며 진안으로 돌아오니 김양(金洋)도 왔다. 같이 이야기하다가 자정이 되어잤다.
3월6일[계유/4월3일] 흐리다. 아침에 몸이 불편하다. 식사를한 뒤에 하동현감(신진)·고성현령(조응도)·함평현감(손경지)·해남현감(유형)이 아뢰고 돌아갔다. 남도포만호(강응표)도 돌아갔는데, 기일을 5월 10일로 정했다. 우우후와 강진현감(이극신)에게는 8일이 지난 뒤에 나가도록 했다. 함평현감(손경지)·남해현감(박대남)·다경포만호(윤승남) 등으로 하여금 칼을 시험하게 했다.
3월7일[갑술/4월4일] 맑다. 저녁 나절에 나가 공무를 봤다. 가리포첨사·여도만호가 와서 보고 돌아갔다.
3월8일[을해/4월5일] 맑다. 아침에 안골포만호(우수)·가리포첨사(이응표)가 각각 큰 사슴 한 마리씩을 보내 왔다. 식사를 한 뒤에 나가 공무를 봤다. 우수사·경상수사·죄수사·가리포첨사·방답첨사·평산포만호·여도만호·우우후·경상우후·강진현감 등이 와서 종일 이야기하였다. 몹시 취하여서 헤어졌다.
3월9일[병자/4월6일] 아침에 맑다가 저물 때에 비오다. 우우후 및 강진현감이 돌아가겠다고 하므로 술을 먹였더니 몹시 취했다. 우우후는 취하여 쓰러져 돌아가지 못했다. 저녁에 좌수사가 왔기에 작별의 술잔을 나누었더니 취하여 대청에서 엎어져 잤다.
3월10일[정축/4월7일] 비오다. 아침에 다시 좌수사를 청했더니 와서 작별의 술잔을 나누니, 온종일 무척 취하여 나가지 못했다.
3월11일[무인/4월8일] 흐리다. 해·회·완 및 수원이 나갔다. 이날 저녁에 방답첨사(장린)가 성낼 일도 아닌데 공연히 성을 내어 상선(上船)의 물긷는 군사[汲水軍]에게 곤장을 쳤다니 놀랄 일이다. 곧 군관과 이방을 불러 군관에게는 스무 대, 이방에게는 쉰 대를 매로 볼기쳤다. 저녁 나절에 구 천성보만호가 하직하고 돌아가고, 새 천성보만호는 체찰사의 공문으로 병사에게 잡혀갔다. 나주판관도 왔기에 술을 먹여서 보냈다.
3월12일[기묘/4월9일] 맑다. 아침밥을 먹은 뒤에 몸이 노곤하여 잠깐 잠을 잤다. 경상수사가 와서 같이 이야기했다. 여도만호·금갑도만호·나주판관도 왔다. 저녁에 소국진이 체찰사에게서 돌아왔는데, 그 회답에 우도의 수군을 합하여 본도로 보내라는 것은 본의가 아니라고 하였다.
3월13일[경진/4월10일] 종일 비오다. 저녁에 견내량 복병이 달려와 보고하기를, "왜적선이 연이어 나오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여도만호·금갑도만호 등을 뽑아 보냈다. 몸이 노곤하여 누워서 앓았다.
3월14일[신사/4월11일] 궂은비가 걷히지 않는다. 새벽에 삼도에서 급한 보고가 왔는데, "견내량 근처의 거제땅 세포(사등면 성포리)에 왜적선 다섯 척과 고성땅에 다섯 척이 정박하고 뭍에 내렸다"고 한다. 그래서 삼도의 여러 장수들에게 배 다섯 척을 더 뽑아 보내도록 전령했다. 방답첨사·녹도만호가 와서 봤다. 밤새도록 땀이 흘렀다.
3월15일[임오/4월12일] 맑다. 새벽에 망궐례를 향했다. 경상수사가 와서 이야기했다. 밤새도록 식은땀이 흘렀다.
3월16일[계미/4월13일] 비가 퍼붓듯이 내리며, 종일 그치지 않았다. 오전 여덟 시쯤에 시마바람이 세게 불어 지붕이 뒤집힌 곳이 많고, 문과 창이 깨지고 창호지도 찢어져 비가 방 안으로 새어 들어와서 사람이 괴로워 견딜 수가 없었다. 오정 때에야 바람이 잤다. 저녁에 군관을 불러 와서 술을 먹였다. 밤 한 시 쯤에 비가 잠깐 그쳤다. 땀이 어제와 마찬가지로 흘렀다.
3월17일[갑신/4월14일] 종일 가랑비가 내리더니 밤새도록 그치지 않았다. 저녁 나절에 나주판관이 와서 보므로 취하게 하여 보냈다. 어두울 무렵에 박자방이 들어왔다. 이날 밤에 식은땀이 등에까지 흘러 두 겹 옷이 흠뻑 다 젖었다. 몸이 불편하다.
3월18일[을류/4월15일] 맑다. 방답첨사·금갑도만호·회령포만호·옥포만호 등이 와서 봤다. 활 열 순을 쏘았다.
3월19일[병술/4월16일] 맑다. 보성군수가 부침하는 것을 살펴볼 일로 휴가를 받았다. 감양(金洋)이 같은 배로 나갔다.
3월20일[정해/4월17일] 종일 바람불고 비오다. 몸이 몹시 불편하고 땀이 옷과 이불을 적셨다.
3월21일[무자/4월18일] 종일 큰비가 오다. 초저녁에 도와리를 만나 구토를 한 시간이나 했는데, 자정이 되니 조금 가라앉았다. 이날 군관 송희립·김대복·오철 등을 불러 종정도(從政圖)를 내기했다.
3월22일[기축/4월19일] 맑다. 우수사·경상수사가 와서 봤다. 그래서 술을 먹여 보냈다. 소문에 작은 고래가 섬 위로 떠밀려 와서 죽었다고 하므로 박자방을 보냈다. 땀흐르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3월23일[경인/4월20일] 맑다. 조방장 김완 및 충청 수군의 배여덟 척이 들어오고 우후도 왔다. 종 금이 편지를 가져 왔는데, 어머니께서 편안하시다고 했다. 땀이 흘러 옷일 적셨다.
3월24일[신묘/4월21일] 맑다. 아침식사를 한 뒤에 나가 공무를 봤다. 마량첨사 김응황, 파지도권관 송세웅, 결성현감 손안국 등을 처벌했다. 나주판관 어성급에게는 4월15일로 기한하여 휴가를 주어내어 보냈다.
3월25일[임진/4월22일] 비가 종일 내렸다. 땀이 흘러 옷을 적셨다.
3월26일[계사/4월23일] 맑다. 경상수사가 와서 이야기했다. 체찰사의 전령이 왔는데, "전일(12일)에 우도의 수군을 돌려 보내라고 한 것은 회계(回啓)를 잘못 본 탓이다"고 하였다. 우습다.
3월27일[갑오/4월24일] 저녁 나절에 나가 활을 쏘았다. 우후·방답첨사·충청우후·마령첨사·임치첨사·결성현감·파지도권관이 함께 왔다. 술을 먹여서 보냈다. 저녁에 신 사과와 아우 여필이 들어왔다. 그 편에 어머니께서 편안하시는 말을 들으니 기쁘고 다행이다.
3월28일[을미/4월25일] 궂은비가 몹시 오고 종일 개이지 않았다.
3월29일[병신/4월26일] 궂은비가 걷히지 않았다. 부찰사(한효순)가 성주에서 진으로 온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