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웅이순신 ▒

1596년 1월 선조 29년 병신년 (충무공 이순신 52세)

천하한량 2007. 5. 5. 18:21

 

 

 

 

 

1월1일[무진/1월29일] 맑다. 밤 한 시쯤에 어머니 앞에 들어가뵈었다. 저녁 나절에 남양 아저씨와 신 사과가 와서 이야기했다. 저녁에 어머니께 하직하고 본영으로 돌아왔다. 마음이 몹시도 어지러워 밤새도록 잠을 자지 못했다.
1월2일[기사/1월30일] 나라 제사날(명종 인순왕후 심씨의 제사)이라 일찍 나가서 병기들을 검열했다. 부장(部將) 이계(李繼)가 비변사의 공문을 가지고 왔다.
1월3일[경오/1월31일] 맑다. 새벽에 바다로 내려가니 아우 여필과 여러 조카들이 모두 배 위에 타 있었다. 날이 밝을 무렵에 출항하여 서로 작별하였다. 오정에 곡포(남해군 이동면 화계리) 바다 가운데에 이르니 샛바람이 약간 불었다. 상주포(남해군 상주면 상주리)앞바다에 이르니 바람이 잤다. 노를 재촉하였더니 자정에 사량에 이르러 잤다.
1월4일[신미/2월1일] 먼동이 틀 때에 출항하는데 이여념이 와서 봤다. 진중의 소식을 물으니 "모두 예나 다름없다"고 했다. 걸망포(통영시 용남면)에 이르니 경상수사가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나와 기다렸다. 우후는 먼저 배 위로 왔으나, 몹시 취하여 인사불성이어서 곧 그 배로 갔다고 했다.
1월5일[임신/2월2일] 종일 비오다. 먼동이 틀 때에 우후와 방답첨사ㆍ사도첨사가 와서 문안했다. 첨사 성윤문, 우후 이정충, 웅천현감 이운룡, 거제현령 안위, 안골포만호 우수, 옥포만호 이담이 왔다. 이몽상도 경상수사 권준의 심부름으로 와서 문안하고 돌아갔다.
1월6일[계유/2월3일] 비오다. 사도첨사가 술을 가지고 왔다. "군량 오백 여 섬을 마련해 놓았다"고 했다.
1월7일[갑술/2월4일] 저녁 나절에 경상수사 권준, 우후, 사도첨사, 방답첨사가 오고 권숙도 왔다. 낮 두 시쯤에 견내량의 복병장과 삼천포권관이 달려와서 "투항한 왜놈 다섯 명이 부산에서 왔다"고 하므로 안골포만호 우수 및 공태원을 시켜 데려오게 했다.
1월8일[을해/2월5일] 투항한 왜놈 다섯 명이 들어왔다. 그래서 그 온 까닭을 물으니, 저희네 장수가 성질이 모질고 일을 또 많이 시키므로 도망하여 와서 투항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실은 부산에 있던 왜놈이 아니고, 가덕도의 심안돈(沈安頓 : 島津義弘)의 부하라는 것이다.
1월9일[병자/2월6일] 흐리다. 각처에 공문을 써 보냈다. 저물 무렵에 경상수사가 와서 방어대책을 논의했다. 하늬바람이 불어 종일 배가 바다로 나가지 못했다.
1월10일[정축/2월7일] 맑다. 식사를 한 뒤에 대청으로 나가 공무를 봤다. 우우후가 어란포에서 와서 봤다. 사도첨사ㆍ웅천현감ㆍ곡포권관ㆍ삼천포권관ㆍ적량만호도 와서 봤다.
1월11일[무인/2월8일] 맑다. 하늬바람이 밤새도록 세게 불어 한겨울보다 갑절이나 더 춥다. 몸이 몹시 불편하다. 저녁 나절에 거제현령이 오고, 광양현감도 들어왔다.
1월12일[기묘/2월9일] 맑다. 웅천현감이 달려와서 보고하는데, "왜적선 열 네 척이 와서 거제 금이포(金伊浦)에 정박해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경상수사에게 삼도의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가 보게했다.
1월13일[경진/2월10일] 맑다. 저녁 나절에 경상수사가 와서 보고하고 배를 타고 견내량으로 갔다. 이 날 저녁에 달빛은 낮과 같고, 바람 한 점 없다. 홀로 앉아 있으니 마음이 어지러워 잠을 이룰수가 없다. 신홍수를 불러 퉁소를 불게 했다.
1월14일[신사/2월11일] 맑으나 바람이 세게 불다가 저녁 나절에야 바람이 자며 날씨는 따뜻한 것 같다. 흥양현감이 들어왔다. 정사립ㆍ김대복이 들어왔다. 조기ㆍ김숙도 같이 왔다.
1월15일[임오/2월12일] 맑다. 새벽에 망궐례를 행했다. 대청으로 나가 공문을 써 보냈다. 이어서 투항해온 왜놈에게 술과 음식을 먹였다. 낙안과 홍양의 전선ㆍ병기ㆍ부속물 및 사부와 격군들을 점고하니 낙안의 것이 몹시 엉성했다고 한다. 이날 저녁에 달빛이 몹시 맑으니 풍년이 듦직하다.
1월16일[계미/2월13일] 맑다. 서리가 눈처럼 내렸다. 저녁 나절에 나가 공무를 봤다. 경상수사ㆍ우우후 등이 와서 봤다. 웅천현감도 와서 취하여 돌아갔다.
1월17일[갑신/2월14일] 맑다. 방답첨사가 휴가를 받고서 변존서, 조카 분, 김숙 등과 같은 배로 나갔다. 마음이 편안하지 않다. 오정에 나가 공무를 봤다. 우후를 불러 활을 쏠 적에 성윤문과 변익성이 와서 보고 같이 활을 쏘고서 돌아갔다. 어두울 무렵 강대수 등이 편지를 가지고 들어왔는데, "종 금이 16일에 본영에 이르렀다"고 했다. 종 경은 돌아와서 말하기를 "아들 회가 오늘 은진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1월18일[을유/2월15일] 맑다. 아침부터 종일 군복을 마름질했다. 곤양군수(이수일)ㆍ사천현감(기직남)이 왔다. 동래현감(정광좌)이 달려와서 보고하기를, "왜놈들이 많이 반역하는 눈치가 보이고, 유격 심유경이 행장(小西行長)과 함께 1월16일에 먼저 일본으로 갔다"고 했다.
1월19일[병술/2월16일] 맑다. 저녁 나절에 나가 공무를 봤다. 경상수사가 왔다. 곤양군수도 와서 술을 내므로 조용히 이야기했다. 부산에 들여 넣은 사람 네 명이 와서 전하기를, "심유경과 소서행장ㆍ현소ㆍ정성(寺澤正成)ㆍ소서비(小西飛: 內藤如安)가 함께 1월16일 새벽에 바다를 건너갔다"고 했다. 오늘 메주를 쑤었다.
1월20일[정해/2월17일] 몸이 몹시 피곤하여 낮잠을 반 시간 잤다. 낙안군수가 와서, "둔전에서 거둔 벼를 실어왔다"고 보고했다.
1월21일[무자/2월18일] 맑다. 아침에 나가 공무를 봤다. 미조항첨사 및 흥양현감이 와서 보기에 술을 먹여 보냈다. 미조항첨사는 휴가를 신청했다. 저녁 나절에 대청으로 나가니 사도첨사ㆍ여도만호ㆍ사천현감ㆍ광양현감ㆍ곡포권관이 와서 보고 돌아갔다. 곤양군수도 왔다. 활 열 순을 쏘았다.
1월22일[기축/2월19일] 몹시 춥고 바람도 차가워 종일 나가지 않았다. 저녁 나절에 경상우후가 와서 그의 수사(권준)의 경솔한 짓을 전했다. 이 날 밤은 바람이 차고도 매우니, 아이들이 들어오기가 고생스러울까봐 걱정된다.
1월23일[경인/2월20일] 맑다. 아침에 헐벗은 군사 열 일곱 명에게 옷을 주었다. 저녁에 가덕에서 나온 김인복이 와서 현신하므로 적의 정세를 물어 보았다. 밤 열 시쯤에 아들 면, 조카 완, 최대성, 신여윤, 박자방이 본영에서 와서 "어머니께서 평안하시다"는 편지를 받아보니 기쁘기 그지없다. 눈이 두 치나 내렸다. 근래에 없던 일이라고 한다. 이 날 밤 몸이 몹시 불편하다.
1월24일[신묘/2월21일] 맑다. 된바람이 세게 불어 눈보라를 치며 모래까지 휘날리니 사람이 감히 걸을 수가 없고, 배도 운항할 수가 없다. 새벽에 견내량 복병장이 달려와 보고하기를 "어제 왜놈 한명이 복병한 곳에 와서 투항하며 들어오기를 빌었다"고 하므로, 보내라고 회답했다. 저녁 나절에 우우후 및 사도첨사가 와서 봤다.
1월25일[임진/2월22일] 맑다.
1월26일[계사/2월23일] 맑다. 나가 공무를 보고 활을 쏘았다.
1월27일[갑오/2월24일] 경상우도순찰사(서성)가 들어왔기에 우수사의 진으로 가서 보았다.
1월28일[을미/2월25일] 맑다. 오정 때에 순찰사가 왔다. 활을 쏘고 같이 이야기했다. 순찰사가 나와 활쏘기를 맞서서 겨루다가 일곱 푼을 졌는데, 무안스러운 빛이 없지 않았다.
1월29일[병신/2월26일] 종일 비오다. 일찍 식사를 한 뒤에 경상도 진으로 가서 순찰사와 같이 조용히 이야기했다. 오후에 활을 쏘았는데, 순찰사가 아홉 푼을 졌다. 피리소리를 듣다가 한밤 자정에야 진으로 돌아왔다.
1월30일[정유/2월27일] 비오다가 저녁 나절에야 개었다. 군관이 활을 쏘았다. 천성보만호(윤흥년)·여도만호(김인영)·적량만호(고여우)가 와서 봤다. 저녁에 청주의 이희남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