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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35만 스페인 소도시가 세계적 문화명소로

천하한량 2007. 11. 23. 00:06
  • 인구 35만 스페인 소도시가 세계적 문화명소로
  • [세계는 新 문화개발주의 시대]
    [2] ‘구겐하임의 기적 10주년’ 맞은 빌바오

    10년간 관광객 1000만명… 2조원 수입
    인프라·환경 투자 늘어나며 ‘도시 개조’
  • 빌바오(스페인)=남승우 기자 futurist@chosun.com
    입력 : 2007.11.08 00:41 / 수정 : 2007.11.08 02:15
    • “저기에 대규모 도서관들과 40층짜리 고층 오피스 빌딩이 들어섭니다.” 지난달 21일 스페인 바스크 지역에 있는 빌바오(Bilbao)시의 가이드 디에조 아보이고(Aboigor)씨는 구겐하임(Guggenheim) 미술관이 있는 아반도이바라 지역을 에워싼 타워 크레인들을 가리키며 “문화와 비즈니스, 교육이 함께하는 공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19일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 개관(開館) 10주년을 맞은 빌바오가 ‘앞으로 10년의 기적’을 준비하고 있다.

      인구 35만명의 빌바오는 1980년대만 해도, 철광·조선(造船)·철강업 등 전통산업이 붕괴되면서 실업률이 25%까지 치솟는 ‘쇠락의 도시’였다. 그러던 것이 1997년 건축가 프랭크 게리(Gehry)가 설계한, 최첨단 디자인의 구겐하임 미술관(미국 뉴욕시 소재) 분관(分館)을 열고 도시 전체를 문화의 도시로 완전 개조하면서 국제적인 문화 명소(名所)가 됐다. 지난 10년간 986만여명이 이 미술관을 다녀갔고, 이들 관광객은 16억 유로(약 2조1000억원)를 이 도시에서 썼다.

      그 결과 스타 건축가가 지은 빼어난 외양의 건물이 도시 전체를 발전시킨다는 ‘빌바오 효과’ ‘구겐하임 효과’란 신조어가 생겨났다. 전 세계 도시들이 빌바오 모방에 나섰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수도 아부다비도 빌바오에서 영감(靈感)을 얻어 초대형 문화개발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현재 200여개 도시가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 분관을 유치하려는 경쟁에 뛰어들었다.

    • 이런 빌바오의 앞으로 10년 계획에 대해, 시의 개발을 주도하는 공사(公社) ‘빌바오 리아2000’의 대외담당관 이나키 두케(Duque)는 “구겐하임이 일으킨 거대한 ‘파급 효과(ripple effect)’를 시 전체로 확산시켜, 뉴욕·파리·런던 같은 세계적 도시로 성장하는 것을 꿈꾼다”고 말했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시작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빌바오는 도시 하부구조(infrastructure) 확충 사업에 주력한다. 미술관 옆 네르비욘 강을 계속 정화하고 대중교통시설을 확장하는 데 연간 6000만 유로(약 788억원)를 투입할 계획이다. 문화 도시의 위상을 공고히 할 수 있게 새로운 콘서트홀과 미술관, 박물관도 지었다.

      지난달 21일, ‘미국의 예술: 300년의 혁신’이란 주제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 입구엔 전 세계에서 온 관람객들이 오전부터 100m가 넘게 줄을 섰다. 이들은 햇살 속에 반짝거리는 미술관 건물의 티타늄 곡선을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싱가포르에서 온 셀리나 서(Seah· 여·38)씨는 “이곳이 절로 ‘와’ 하는 탄성이 나올 만큼 대단한 건축물(wow-factor architecture)로 불리는 이유를 실감하겠다”며 “보면 볼수록 더 보고 싶은 중독성이 있다”고 말했다.


      미술관 일반회원 1만6000명 독특한 테마 건물 건설 한창 

      빌바오에 가보니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의 페트라 주스(Joos·여) 전시담당 디렉터는 “세계 문화지도에서 존재하지도 않았던 이곳이 문화명소가 되기까지의 성공을 이어가기 위해, 독특한 테마의 전시를 끊임없이 발굴하고 일반인 참여도 확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는 미술관만의 생각이 아니다. 인구 35만 명의 빌바오 시는 시 곳곳으로 전시회·음악 콘서트 공간을 계속 만들어 나가, 시민이나 관광객이 ‘어디서든 기분이 좋은’ 문화 도시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구겐하임이 전부일 순 없다”

      한기(寒氣)가 채 가시지 않은 지난달 21일 오전7시쯤, 시민들은 스비스리(Zubizuri·‘하얀 다리’란 뜻의 바스크어) 다리 너머로 얇은 성냥갑 모양의 쌍둥이 빌딩을 보며 네르비욘 강변을 조깅하고 있었다. 일본인 건축가 이소자키 아라타(磯崎新)가 디자인한, 25층짜리 주거형 빌딩이었다.

    • 구겐하임 미술관이 속한 아반도이바라 지역에선 건축가 케사르 펠리(Pelli)가 디자인한 40층짜리 빌딩과 데우스토(Deusto) 대학 캠퍼스의 도서관과 건물을 짓는 타워 크레인들이 바삐 움직였다. 강변을 따라 달리는 궤도열차 ‘유스코트란’의 확장 공사, 건축의 명장(名匠) 노먼 포스터(Foster)가 전체 디자인을 맡았다는 지하철 ‘빌바오 메트로’ 2호선 공사도 한창이었다. 시의 발전 전략을 짜는 싱크탱크 ‘빌바오 메트로폴리 30’의 이도이아 포스티고(Postigo·여)씨는 “유명한 미술관과 편리한 대중교통 수단은 뗄 수 없다”고 말했다.

      ◆강물 정화에만 1조원 투입

      구겐하임 미술관에 인접한 네르비욘 강 정화작업도 한창이다. ‘빌바오 리아 2000’은 “지난 15년간 7억 유로(약9200억 원)를 투입했다”며 “강의 상태가 충분히 회복될 때까지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강은 전에 ‘시궁창’ 이었다고 한다. 호주인 관광객 마농 맥키치(McKeachi·여)씨는 “악취가 전혀 없고, 물고기도 있다”고 말했지만, 가이드 아보이고(Aboigor)씨는 “아직은 먹을 수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구겐하임 일반회원수, 유럽 3위”

      빌바오 시는 2003년 해양박물관과 ‘빌바오 아르떼’ 문화재단 겸 미술관을 개관했다. 구겐하임 미술관 방문객들을 이들 미술관·박물관과 9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빌바오 미술관(Museo de Bellas Artes de Bilbao)’ 등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것이다. 과거 지저분한 낙서로 뒤덮였던 구(舊)도심 ‘카스코 비에호(Casco Viejo)’에서도 콘서트와 미술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구겐하임 미술관에 등록된 일반 회원은 1만6000명. 미술관 측은 “파리 루브르미술관과 런던 테이트미술관에 이어 유럽에서 세 번째 규모”라고 했다. 미술관 측은 ‘모터사이클의 예술(관람객 87만 명)’ ‘리처드 세라’(68만 명), ‘러시아!’(62만 명) 같이 대박을 터뜨린 전시 경험을 이어가, 건축의 역사를 뒤흔든 미술관 ‘외형’만큼이나 ‘내실’도 다진다는 목표다.


      ◆구겐하임(Guggenheim) 미술관
      1900년대 초반 미국의 광산재벌에서 미술품 수집가로 변신한 솔로몬 R 구겐하임(1861~1949)이 1937년 뉴욕에 설립한 세계적 현대 미술관. 빌바오·베니스·베를린·라스베이거스 등 4곳에 분관이 있다.

    • 10주년 맞은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 옆으로 흐르는 것은 1970~80년대까지 산업시대 동맥의 역할을 했던 '네르비욘 강'이다. /남승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