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 사례들
중국 돼지 집단폐사 → 중국물가 급등 → 중국산 제품 수출가 상승 → 미·일·EU 등 물가 상승 및 금리 인상 → 세계경제 침체 가능성
원자바오 총리 국민에 우유 소비 권장 → 중국내 우유소비 급증 → 국제 원유(原乳) 가격 고공행진
중국경제 초고속 성장 지속 → 중국내 석유수요 급증 → 수급 불균형 및 투기세력 가세
중국발 인플레이션 우려가 지구촌을 강타하고 있다. 세계 물가안정의 1등공신이던 중국이 이제는 물가불안의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중국은 전 세계에 값싼 상품을 공급하는 ‘세계의 공장’이었다. 이것은 중국의 국민소득이 1000달러에도 못미치는 낮은 수준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러나 최근 상황이 급변하면서 이 표현은 옛날 이야기가 돼 가고 있다. 중국이 지속적으로 10% 안팎의 고도성장을 이어가면서 국민소득이 급격히 향상돼 저임금의 메리트가 사라지고 있는 데다 급격한 물가상승으로 더 이상 저가품을 공급할 수 없는 상황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중국의 1인당 GDP(국내총생산)는 2042달러로 전년 1703달러에 비해 약 20% 증가했다. 중국이 1000달러에서 2000달러를 돌파하는 데 걸린 시간은 3년에 불과했다.
중국의 소비자물가는 2005년 1.8%, 2006년 1.6% 등 연간 1%대 중반의 안정적인 상승세를 보여왔으나 올해 급등세로 돌아섰다. 올해 1~9월 중 물가는 작년 동월 대비 4.2% 상승해 작년 같은 기간보다 2배 이상 올랐다.
중국산 제품 가격이 오르는 것은 물가가 오른 것 외에 중국 기업의 생산비용이 최근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기업의 생산비용은 최근 ▲임금 상승 ▲중국 정부의 환경규제 강화 ▲위안화 가치 상승 ▲가격통제 완화 ▲수출기업에 대한 혜택 축소 등으로 인해 크게 늘었다. 이에 따라 수출제품의 가격도 높아질 수밖에 없어 각국의 물가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모건스탠리의 이코노미스트인 앤디 시에는 “중국의 임금이 지금 추세로 올라가면 섬유와 같은 노동집약적 제품의 가격도 최고 30% 정도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며 “이는 미국의 물가를 0.5% 끌어올리고 전 세계적으로는 0.7%의 물가상승 효과를 가져온다”고 진단했다.
중국의 인플레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장시(江西)성 돼지’ 파동이다. 지난해 여름 중국 양쯔강 유역 장시성에 ‘청이병(靑耳病)’이라는 전염병이 발생한 게 파동의 계기가 됐다. 이 병에 걸린 돼지는 고열증세를 보이면서 피부에 붉은 반점이 생기고 죽을 때는 귀가 푸른색으로 변하는 게 특징이다. 청이병은 올 들어 중국 전역으로 확산됐다. 집단폐사가 잇따랐고 돼지고기 가격은 폭등하기 시작했다. 현재 중국 전역에서 사육 중인 돼지고기는 약 5억마리. 세계 양돈의 절반을 넘는 수준이다. 중국 정부는 약 17만마리가 폐사했다고 밝혔으나 보도가 통제되는 중국 현실을 감안,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은 “최소한 40만마리가 폐사했을 것”이라고 보도했고 100만마리가 넘을 것이라는 추측도 무성하다.
중국에서 돼지고기의 위상은 특별하다. 중국인은 돼지고기 없이는 못사는 민족이기 때문이다. 핵심 생필품인 돼지고기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기 시작했고 지난 9월의 경우 1년 전에 비해 85%나 뛰었다. 설령 100만마리가 폐사했다고 해도 5억마리 중 100만마리면 0.2%에 불과한 미미한 비중인데 가격이 이렇게까지 급등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돌발사고로 수급이 깨졌고 언제까지 사고가 지속될지 불확실한 상황은 소비자의 심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이는 훌륭한 투기 대상이 된다. 중국 돼지고기 파동이 여기에 부합하는 사례다. 돼지고기값 폭등은 다른 품목의 물가 인상으로 연결됐고 인플레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실제로 중국은 지난 8월 소비자 물가가 6.5% 올라 10년 만의 최고 수준으로 폭등한 데 이어 지난 9월에도 6.2%를 기록해 지난해 평균인 1.5%의 4배를 웃돌고 있다.
중국의 인플레가 문제가 되는 것은 중국의 경제력이 세계 4위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독일을 제치고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3위로 올라설 전망이다. 세계경제에 미치는 체감 영향력은 미국에 이어 2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교역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8%나 된다. 2007년 세계경제 성장에 대한 중국의 기여율(17.3%)은 미국(14.3%)을 웃돌 것으로 전망된다.
요즘 중국의 세계적 위상을 실감케 하는 데 자주 등장하는 용어가 있다. ‘나비효과’와 ‘차이나 프리’가 바로 그것.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는 원래 기상학 용어다. 중국 베이징(北京)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다음달 미국 뉴욕에서 폭풍을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게 골자다.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E. Lorentz)가 1961년 기상관측을 하다가 생각해낸 이 원리는 훗날 물리학에서 말하는 카오스 이론(Chaos Theory)의 토대가 되었다. 변화무쌍한 날씨의 예측이 힘든 이유를, 지구상 어디에서인가 일어난 조그만 변화로 인해 예측할 수 없는 날씨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으로 설명한 것이다.
최근에 나타난 중국발 나비효과의 대표적 사례가 우유 파동이다. 중국인이 우유를 마시기 시작하면서 세계적으로 우유값이 고공행진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최근 “13억 중국인이 일인당 하루에 500㎖씩 우유를 소비해야 한다”며 우유 소비를 적극 장려한 게 세계적 우유값 폭등의 계기가 됐다. 블룸버그통신은 “중국의 급속한 경제성장과 중국인의 선진국형 삶을 향한 강한 열망이 우유 소비를 부추겼다”고 분석했다. BBC뉴스 온라인판은 “중국에서 우유 소비가 늘어나면서 세계낙농제품 가격이 동반 상승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중국발 나비효과는 비단 우유에 국한되지 않는다. 재계 관계자들은 “앞으로 중국의 국민소득이 향상되면서 중국인이 소비를 늘리는 품목은 모두 우유와 비슷한 파동을 낳을 공산이 크다”고 내다보고 있다.
최근 세계경제를 뒤흔들고 있는 유가 폭등도 중국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중국은 모든 원료를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은 존재가 된 지 오래인데 100달러에 육박한 원유(原油)도 예외가 아니다. 10월 30일 현재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전날 중동산 두바이유 현물가격은 전 주말보다 배럴당 0.81달러 오른 83.41달러에 거래되며 또다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의 서부텍사스유(WTI) 선물가격도 93.53달러로 끝나 역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제 유가가 3일째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것은 우선 멕시코의 원유 생산이 폭풍 위협으로 차질을 빚고, 미 달러화 가치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는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근본 원인으로는 중국과 인도 등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성장으로 석유 수요가 급증하고 있고 이를 노려 투기적 가수요까지 가세한 것이 지적된다. 석유 외에 철강, 구리 등 각종 원자재와 곡물도 중국의 수요 급증으로 최근 수년간 국제 시세가 고공행진을 벌이고 있다.
‘차이나 프리(China free)’는 일반인들이 중국의 위력을 피부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용어다. 최근 ‘메이드 인 차이나 없이 살아보기’란 책을 펴낸 미국의 저널리스트 사라 본지오르니는 생활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중국의 그림자가 너무 짙은 것을 알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는 2005년 1월부터 1년간 ‘중국산 보이콧(중국산 제품을 쓰지 않고 살아보기)’ 실험을 시도했다. 그는 미국의 일간지 ‘타임스 데일리’와 인터뷰를 갖고 “중국산 보이콧을 다시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며 “2005년도에 이 프로젝트를 감행했기에 망정이지 지금이나 5년 후쯤 시작했다면 정말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TV들도 최근 잇달아 ‘차이나 프리’ 시도 방송을 내보냈는데 결론은 역시 중국산 제품 없이 생활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중국의 인플레는 세계경제에 새로운 고민거리를 안겨주고 있다. 당장 미국은 금리인하와 인플레 사이에서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 미국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 담보대출) 부실 파문을 수습하기 위해 최근 공세적 금리인하에 나섰다. 미국이 금리인하를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중국이 미국에 값싼 물건을 대량으로 공급한 덕분에 물가가 안정됐다는 것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인플레가 심해지면 이런 구도가 깨지게 되고 미국은 금리인하 여력이 줄어들게 된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여파가 자국으로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부심 중인 EU와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의 중앙은행들도 미국과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이미 선진국들은 물가가 오르는 추세다. 미국의 소비자물가는 9월 들어 전년 동월 대비 2.8% 올랐다. 8월의 물가는 2.0%였다. EU의 소비자물가도 2007년 1~8월 1.8% 안팎의 안정세에서 9월 중에는 전년 동월 대비 2.1% 상승했다. 그렇지 않아도 세계경제는 고유가와 과잉유동성 등의 요인으로 인플레 압력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인데 중국발 인플레는 기존의 글로벌 인플레 압력을 더욱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발 인플레 확산은 궁극적으로 선진국의 금리 인상을 유발하고 미국 및 EU 경제는 둔화될 공산이 크다. 중국의 주요 수출국인 이들 선진국 경제의 둔화는 중국의 수출을 위축시켜 중국 및 아시아 지역의 경제성장을 제약한다. 지난해 기준으로 중국의 대미국·EU 수출은 전체 수출의 43.2%를 차지한다. 중국 경제의 부진은 한국, 일본, 동남아 등 아시아 지역의 대중국 수출 둔화와 경제성장률 하락을 초래한다.
곡물, 원유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의 상승세가 지속되는 한 중국의 인플레 압력은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중국이 미국 등 선진국과의 통상마찰을 완화하기 위해 위안화의 점진적 강세를 유도할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도 중국발 인플레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장재철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집값 안정과 공공요금 인상 자제 등으로 물가 상승압력을 최소화해야 한다”며 “품질, 디자인 등 비(非)가격 경쟁력을 높이고 환율 리스크에 따른 손실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 박영철 차장대우 ycpar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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