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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오일 쇼크’ 휘청

천하한량 2007. 10. 31. 04:27

서울 강서구에 있는 플라스틱 용기 제조업체인 A사는 한 달 전부터 생산량을 20% 가량 줄였다. 고(高)유가로 원료 구입 부담이 올 초보다 금액 기준으로 절반 가까이 늘었기 때문이다. A사는 신규 납품은 자제하고 기존 고객에 한해 물건을 공급하고 있다. 올 중반기만 해도 ‘팔아봐야 가까스로 흑자’ 수준에서 이제는 ‘팔수록 손해’인 상황까지 치달은 탓이다. 회사 관계자 B상무는 “유가가 얼마나 더 오를지 몰라 내년 사업계획조차 세우지 못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기업들이 고유가 직격탄에 휘청거리고 있다. 석유화학·항공 등 석유 의존도가 높은 기업들은 비상경영에 돌입했으며, 불어나는 원가 부담을 감당 못해 공장 가동률을 낮추는 기업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충격완화 장치가 없는 개인은 ‘고유가 충격’을 고스란히 맞고 있다. 11월부터 도시가스 가격이 2.6%, 난방요금이 7.96%씩 오르며, 전기 요금도 들썩이고 있다. 서민들은 불어난 겨울철 난방비 부담이 우선 걱정이다.


◆배럴당 100달러 고지 넘을까=국제유가는 30일에도 사상최고치 행진을 이어갔다. 미국 뉴욕상품거래소의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WTI)는 12월 인도분이 배럴당 93.53달러를 기록했으며, 브렌트유 역시 90.22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중동산 두바이유도 83.41달러로 최고치 기록을 갈아치웠다.

문제는 앞으로다. 유가 전문가들은 ‘배럴당 100달러 시대’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중국·인도 등 개발도상국의 경제성장, 달러 약세, 중동지역 긴장 고조, OPEC의 추가 증산 거부, 미국 석유재고 감소 등 유가를 끌어올리는 악재들만 수두룩하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이문배 연구위원은 “석유 수급에 여유가 없기 때문에 달러 약세를 틈탄 투기자본이 석유시장에 가격거품을 조장하고 있다”며 “OPEC의 원유 증산 결정만이 투기자본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 국제 유가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가운데 30일 서울 시내의 한 주유소에서 직원이 ℓ당 가격 표시를 바꾸고 있다. 30일 이 주유소에는 ℓ당 휘발유 가격을 1785원으로 표기했다.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기업들, ‘적자로 반전 위기’ 불안감=고유가 때문에 이미 석유화학 산업은 물건을 팔수록 손해라고 아우성이다. 산업연구원은 두바이유 기준으로 작년 평균 유가(배럴당 61.63달러)보다 30% 오른 배럴당 80.12달러에 이를 경우 석유화학산업의 매출액 영업이익률이 16.92% 떨어질 것으로 봤다. 두바이유는 이미 80달러를 훨씬 웃돌고 있다. 산업연구원은 “석유화학산업의 2004년 영업이익률이 8.5%이기 때문에 두바이유 기준으로 유가가 80달러가 넘으면 영업손실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유화업계는 “주요 원재료인 나프타 가격이 유가에 연동돼 올 초 ℓ당 560달러에서 지금은 800달러까지 육박하고 있어 도저히 수지타산을 맞출 수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유화업계 가동률이 떨어지면 섬유업계가 ‘원재료 부족난’을 겪을 수밖에 없다.

대기업들도 비상경영에 나서고 있다. 대한항공은 배럴당 1달러가 오르면, 연간 3000만 달러(약 270억원)의 손실을 볼 것으로 예상한다. 아시아나항공 역시 배럴당 85달러를 넘으면 1500억원의 비용이 더 들어갈 것으로 예상한다. 현대상선은 가장 싼 기름값을 제시하는 항만에 들러 주유하는 역경매 시스템을 채택했으며 효성은 기름 대신 전기나 폐열을 활용해 만든 스팀을 에너지로 활용하는 등 돌파구를 찾아 나서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서민들은 한숨만=인천시 부평구의 가정주부 이미옥(43)씨는 요즘 가계부를 적을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올 겨울 난방비도 오를 것이고, 남편 역시 회사가 너무 멀어 할 수 없이 출퇴근 때 자가용을 이용하지만 이에 따른 부담도 크게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라는 설명. 이씨는 “올겨울에는 좀 춥더라도 실내 온도를 2~3도 내려 지낼 작정”이라고 말했다.

등유의 경우 현재, 1999년의 ℓ당 445.17원보다 거의 배가 오른 974.96원에 거래되고 있다. 매월 불어나는 차량 유지비도 문제다. 월 40만원을 기름값에 쓰고 있는 자가운전자의 경우 작년보다 평균 월 5만원 정도 부담이 늘었다. 삼성경제연구소 이지훈 수석연구원은 “국내 석유시장의 경우 석유 제품 가격이 올라도 소비는 거의 줄어들지 않고 있다”며 “결국 돈 없는 서민들만 고유가 피해를 보는 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