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자료실 ▒

사료값 폭등으로 신음하는 축산가

천하한량 2007. 10. 30. 05:41
“얼마 전에는 마누라더러 사용하던 신용카드 내놓으라고 했어요. 남자가 참 치사하지요. 그래도 돼지 밥값을 줄일 수 없으니 사람이 쓰는 돈이라도 줄여야 할 것 아닙니까. 짐승들 밥값 오르는 바람에 사람이 굶어 죽게 생겼어요.”

이상훈씨는 경기도 안성시 당왕동에서 돼지 1700마리를 사육하고 있다. 그는 사료값을 조금이라도 줄여볼 요량으로 어린 돼지에게 비싼 사료를 주는 기간을 줄여 보기도 했지만 큰 효과는 보지 못했다. 이씨는 “사육 두수가 적었던 옛날엔 식당에서 나오는 음식 찌꺼기로도 돼지를 키웠다지만 지금은 불가능하다”면서 “이런 식으로 가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하늘 모르고 치솟는 사료값 때문에 축산농가들의 시름이 이만저만 아니다. 지난해 10월 이후 농가에 공급되는 배합사료값이 무려 30% 올랐다. 사료 가격은 지난해 10월, 올해 2월, 5월, 9월에 사료업체에 따라 4~6%씩 계속 올랐다. 돼지 3000~4000마리 정도를 기르는 농가에서 사료값이 10% 가량 오르면 연간 1억원 정도를 더 부담해야 한다. 매출액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사료값 등락은 축산농가에 직격탄이다. 문제는 내년 초 사료값이 또 오를 수밖에 없다는 것. 사료협회 기획팀 홍성수 과장은 “가격이 한창 오른 지금 수입 원료로 내년 초에 판매할 사료를 만들기 때문에 내년 1~2월 사료값 인상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 이만우씨가 운영하고 있는 양계장에서 병아리들이 사료를 먹고 있다. 지난 1년 사이 사료값이 급등하면서 축산 농가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이석우 기자
양계농가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29일 오전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 적가리의 한 양계농장. 농장에 들어 온 지 14일 된 병아리 5만여 마리가 사료통에 머리를 처박고 정신 없이 사료를 쪼아대고 있다. 주먹만한 이 녀석들이 먹어 치우는 사료가 하루 2.7t이다. 돈으로 따지면 하루 100만원어치를 먹는 셈이다. 농장주 이만우(57)씨는 “사료값이 오르는 바람에 작년 이맘때에 비해 하루 30만원씩 더 까먹고 있다”면서 “사료 말고는 별다른 수가 없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사료값이 급등하고 있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곡물가격과 해상 운임이 오르고 있기 때문. 사료 원료 65%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옥수수(50%)와 대두박(15%·콩에서 기름을 짜고 난 찌꺼기)의 기름이 고유가 시대에 석유를 대신하는 연료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해상 운임도 덩달아 오르고 있다. 사료 원료는 국내항 도착 기준 가격(C&F)으로 구입하고 있어 해상 운임 인상은 사료값에 곧바로 반영된다. 사료협회 홍성수 과장은 “현재 옥수수 1t을 270달러에 수입하는데, 여기서 해상 운임이 110달러 정도를 차지한다”며 “내년 베이징 올림픽 때까지는 전 세계 배가 중국으로 몰려들기 때문에 사료를 운송할 배를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미 FTA에 이어 EU와의 FTA 협상이 체결되면 치명타를 입을 것이 뻔한 상황에서 축산농가들이 벌써부터 전초전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양돈협회는 지난달 6일 성명서를 내고 “사료업계가 양돈농가의 고통에 눈과 귀를 막은 것도 모자라 사료 가격을 인상해 농가를 막다른 구렁텅이로 몰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사료업계에서는 “마진을 높여 사료 회사 배 불리는 것도 아니고 원료와 운임이 올라 사료값이 오르고 있는데 손해 보고 장사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맞서고 있다.

한국처럼 사료 원료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일본 역시 지난해 하반기 이후 사료값이 40% 이상 올랐지만 실제 농가가 부담한 인상률은 6% 정도에 불과했다. 사료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축산농가, 사료업체, 정부가 부담하는 ‘사료가격안정기금’ 제도를 운영해 사료값 급등에 따른 충격을 흡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에는 사료값 인상에 대한 정책 대응 수단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농림부 관계자는 “사료원료구매자금을 올해 520억원 정도 풀었지만 별로 효과가 없었다”면서 “사료업체를 상대로 최대한 인상폭을 줄여 달라고 요청하고 있지만 사료 가격을 정부가 통제할 법적 근거는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