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장은 산수가 수려하고 토지가 비옥하며 기후가 온화하여 선사시대부터 인류가 정착한 지역으로 오랜 전통문화를 이어온 고장이다.
▲ 한산에 위치한 건지산성의 전부가 한 눈에 내려다 보여 산성의 규모를 알 수 있을뿐만 아니라 산성의 주변 환경마저도 파악할 수 있다. <사진/문화재청> | ||
서해로부터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병풍처럼 막아내는 천방산, 희리산, 장태산, 월명산 등으로 이어지는 산맥이 우리 고장을 에워싸고 있다. 또한 우리 고장은 전북 장수군 장수읍을 발원지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다가 대청호에서 다시 서쪽으로 흘러 서해로 유입하는 금강하구의 북쪽에 자리하고 있다.
우리 고장은 선사유적을 비롯해 많은 역사적 향기가 듬뿍 담겨져 있는 고장이기도 하다. 청동기시대부터 마한·백제·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성격을 가진 유구들이 발견된 서천봉선리유적(사적 제473호)과 패망한 백제의 재건을 위한 백제 부흥운동의 본거지로서 주류성(周留城) 역할을 했다는 건지산성(사적 제60호), 고려 말 삼은(三隱) 중 한 사람인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유적 등 수많은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있는 고장이다.
서천은 백제의 설림군(舌林郡)이 신라 경덕왕 15년(756)에 서림군(西林郡)으로 고쳐졌다가, 고려 초인 현종 9년(1018)에는 가림군(嘉林郡, 현재의 부여군 임천면)에 속하였다. 그 후 감무(監務: 고려시대에 지방의 군(郡)과 현(縣)에 파견한 관직)를 두었고 1314년에 지서주사(知西州事)로 승격시켜 서주(西州)라고 불리다가 1413년에 다시 서천군으로 고쳐 부르게 됐다.
한산은 백제의 마산현(馬山縣)이 신라 때에 가림군의 영현(領縣)이 되었다가 고려 초에 감무를 두어 홍산현(鴻山縣)을 함께 관할케 하였으며 후에 지한주사(知韓州事)로 승격되었고, 1413년에 한산군(韓山郡)이 됐다. 비인은 백제의 비중현(卑衆縣)이 신라 경덕왕 15년에 비인현(庇仁縣)으로 개칭되고 서림군의 영현으로 하였다. 고려 현종 9년에 가림현에 속하게 되었다가 뒤에 감무를 두었고, 조선시대에 비인현으로 하여 홍주진관에 속하게 되었으며 그 뒤 비인군(庇仁郡)이 되었다.
우리 고장 서천은 1914년에 일제가 식민지 지배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서천군·한산군·비인군 등 3개 군을 합쳐 서천군(舒川郡)이 이루어져 현재까지 이르게 됐다.
문화와 문화재
21세기를 ‘문화의 세기’라고 일컫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문화적 요소에 대한 관심과 그 영역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동서양을 막론하고 문화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져 자국문화는 물론 세계 각국의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국경 없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럼 문화란 무엇인가? 이에 대하여 많은 학자들이 개념을 정의하였다.
사회학자인 홍승직은 “한 사회 내에서 사람들이 질서 있게 상호 작용하는 데 필요한 가치와 규범의 총체이다”라고 하고, 도올 김용옥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삶 그 자체이다. 즉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서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하며 늙어 마침내 죽게 되는데, 그 모든 과정이 곧 문화이다. 따라서 문화의 무대는 높은 나무판대기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삶 속에 내재해 있다”고 말하였다.
영국의 경제학자이자 사회개혁가인 아놀드 토인비(Arnold J. Toynbee)는 “문화란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 인간과 보이지 않는 힘과의 만남의 결과이다”고 하였고, 미국의 시인인 엘리어트(T. S. Eliot)는 “문화란 하나의 생활양식이다.
한 나라의 문화는 국내의 여러 지방문화로 형성되어 있으며, 그것은 전체 문화의 다양성과 통합성을 가져 온다”고 하였다. 또한 영국의 인류학자 타일러(E. B. Tylor)는 “지식, 신앙, 예술, 법률, 도덕, 관습 그리고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의 인간에 의해 얻어진 다른 모든 능력이나 관습들을 포함하는 복합총체”가 문화라고 규정하였다.
이렇듯 문화에 대한 다양한 정의를 통해 문화가 가지는 여러 가지 특성을 파악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문화는 습득되는 것이다. 둘째, 문화는 사회 구성원들에 의해 공유된다. 셋째, 문화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넷째, 문화는 축적의 산물이다. 다섯째, 문화는 상호 연관성을 지닌다. 이러한 문화의 특성은 우리의 삶 속에 그대로 내재되어 있으므로 우리의 행동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표현된다고 할 수 있다.
문화재란 인류문화 활동의 소산으로써 문화적인 가치를 지닌 모든 것을 가리키기 때문에 넓은 의미에서 보면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구전(口傳), 음악, 인종학적 유산, 민속·법·습관·생활양식 등에 관련된 모든 것을 포괄한다. 그렇기 때문에 근래에는 문화재라는 말보다 ‘문화유산’이라는 말이 널리 사용되기도 한다.
문화재란 한마디로 민족이 이룩한 유형·무형의 모든 문화적 소산이므로 우리는 문화재를 통해서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키고 조상들의 생활상과 의식까지도 엿볼 수 있다. 따라서 문화재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관심과 애정을 갖는 것은 민족의 얼을 지키고 생활화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기획취재에 들어가면서
▲ 고공 사다리차를 이용하여 비인읍성의 전경을 바라보고 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 봄으로써 땅 바닥에서 바라 볼 때와는 많은 시각적 차이와 당해 문화재에 대한 느낌을 달리할 수 있다. |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인근에서 생활하고 있는 우리 고장의 주민들은 그것 혹은 그곳이 문화유적인지조차 알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경우가 흔하다고 할 수 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지에 대해서 따져 책임을 묻는 데 노력을 기울이기 보다는 지금부터라도 우리 고장의 문화재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실천하는 것이 더 실용적이라는 생각에 ‘하늘에서 내려다 본 우리 고장의 문화재’라는 이름의 기획취재를 계획했다.
이 기획취재에서는 매회마다 필자가 직접 촬영한 문화재 항공사진을 기재함으로써 독자들이 당해 문화재를 다른 각도에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뿐더러 그 문화재가 주변 환경과 어떻게 어우러져 있는지를 살필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이 기획취재는 총 6회에 걸쳐 보도될 것으로 제1회는 서천의 역사, 문화와 문화재, 기획취재의 취지 등을 언급한다. 제2회, 제3회, 제4회는 서천군을 3개 구역으로 나누어 각각의 구역 내에 분포되어 있는 문화재 상호간의 관계를 항공사진을 통하여 파악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제5회는 우리 고장의 문화재가 이 지역사회에 어떻게 작용할 수 있는지를 탐구하고 문화재 100배 즐기기에 대한 방법을 모색하기로 하겠다. 제6회는 우리 고장 문화재 분포지도의 제작과 기획취재 마감을 정리함으로써 끝이 난다.
아무쪼록 이 기획취재가 많은 독자들과 주민들로 하여금 우리 고장 문화재의 위상을 좀 더 확고히 정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이강선 기자 kslee6566@kor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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