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자료실 ▒

석유전쟁

천하한량 2007. 10. 28. 20:04
(서울=연합뉴스) 신지홍 기자 = 지구촌 곳곳에서는 지금 `총성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에너지전쟁, 즉 석유전쟁이 그것이다.

"이라크 전쟁은 석유를 얻기 위해 일으킨 것"이라는 앨런 그린스펀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폭로'는 석유전쟁의 적나라한 실상을 드러낸 것이었다. 석유를 위해서라면 전쟁도 불사하지 않겠다는 것이 작금 열강들의 태도다.

지구촌 최대의 '석유 블랙홀'은 단연 중국이다. 중국은 2005년 석유소비량이 3억2천500만t으로 15년만에 3배로 증가, 세계 2위의 석유소비국으로 떠올랐다. 중국의 석유사냥은 거침없다. 석유만 확보할 수 있으면 해당국의 정치상황이나 인권은 개의치 않는다. 중국이 민주화 시위를 탄압한 미얀마를 싸고돈 것도 그 때문이다.

중국이 가장 공을 들이는 지역은 아프리카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지난해 아프리카 순방에 나서 나이지리아에서 사회간접자본 40억달러 투자를 대가로 4개 유전을 확보했으며 케냐와도 석유탐사 계약을 체결했다. 수단 유전에도 30억 달러 안팎을 투자했다. 리비아와 알제리와도 장기 석유생산 계약을 했다.

유전 뿐 아니라 광물자원도 무차별적으로 확보, 80억달러 이상의 거금을 들여 칠레와 콩고, 베트남 등지에서 비철금속 광산 10개를 확보했다.

중국이 지난해 아프리카 48개국 국가의 정상급을 초청, 무이자 차관과 채무를 모두 탕감해준 것이나 올 들어 50억 달러 규모의 중.아프리카 발전기금을 조성하기로 한 것도 석유확보를 위해서다. 인종학살이 진행되고 있는 수단을 겨냥한 국제적 제재에 중국이 반대하는 것도 결국은 같은 이유 때문이다.

중국이 총력을 기울이는 거대 유전 중 하나가 일본과 갈등을 빚고 있는 동중국해 가스전이다. 중국이 일본과 영유권 분쟁중인 동중국해에 12개의 광구(鑛區)를 독자 설정함으로써 표면화된 갈등은 양국간 일진일퇴로 이어지다 최근 공동개발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올해 독일을 누르고 세계 3대 경제대국으로 올라설 것으로 보이는 중국은 두자릿수 대의 경제성장을 지속하고 2020년 1인당 GDP를 2000년의 4배로 끌어올릴지 여부는 성장의 동력격인 석유확보에 달렸다는 판단 아래 에너지전쟁에 사활을 걸고 있다는 분석이다.

세계 최대의 에너지 소비국인 미국은 전 세계 에너지의 25%를 쓰고 있지만 소비량의 6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부시 대통령이 "미국은 석유에 중독돼 있다"며 에너지의 주축을 원자력으로 옮기겠다는 의지를 밝혔지만 석유 없는 미국은 상상할 수 없다.

미국의 석유확보 전쟁은 문자 그대로 전쟁 양상으로 치닫곤 했다. 1953년 무하마드 모사데크 이란 총리가 이란의 풍부한 석유자원을 국유화하려 하자 미국과 영국은 전 세계적으로 이란 석유수입을 금지하고 군부를 부추겨 쿠데타를 배후에서 지원했었다.

대량살상무기 제거 등의 명분 아래 미국이 도발한 이라크 전쟁의 결과는 엄청난 석유공급원의 확보로 곧 가시화될 전망이다. 이미 지난달 미 헌트오일이 전쟁 이후 미 업체로는 처음으로 쿠르드 지역의 유전을 개발, 석유생산에 돌입했으며, 조만간 이라크 의회에 계류중인 석유법이 통과되면 주요 메이저들은 전쟁 도발의 배경이자 승리의 과실인 석유 캐기에 뛰어들 것이다.

미국은 석유공급 경로를 다변화하기 위해 카스피해 석유를 지중해로 실어나르는 BTC 송유관 건설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한 데 이어 터키의 세이한항-투르크메니스탄-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의 카라치카항까지 연결되는 송유관을 건설, 유럽에서 아시아로 연결되는 원유 공급선을 확보하는 프로젝트도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는 에너지로 유럽연합(EU) 국가들의 존망을 움켜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회원국들이 사용하고 있는 가스의 절반은 러시아산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에 있어 에너지는 무기인 셈이다. 시베리아 가스관과 사할린 프로젝트는 이 나라 석유수출의 수족이다.

러시아는 호주 시드니에서 9월 개최됐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에서 호주와 매년 10억 달러가 넘는 우라늄을 구입하기로 하는 등 활발한 자원외교를 펼쳤다.

국영 가스회사 가즈프롬 부회장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제1부총리는 "솔직히 가즈프롬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최대 천연가스 공급처가 되길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러시아는 에너지를 무기로 이른바 '동진(東進) 정책'의 페달을 밟겠다는 의지를 안팎에 과시하고 있다.

석유생산이 전무한 일본도 세계 제2의 경제를 끌고 가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사활을 건 전쟁에 나서면서 우방인 미국과 갈등을 빚었는가 하면 가스가 묻힌 바다를 공유하는 중국과는 여러 해 대치하고 있다.

일본은 중동 최대급 유전인 아자데간 개발에 소요되는 총 20억 달러 가운데 75%를 투자, 2012년까지 하루 15만-26만 배럴의 원유를 확보한다는 구상이었으나, 투자를 철수하라고 압력을 가한 미국과 심각한 갈등을 빚은 끝에 지분을 10%로 줄인 사정이 있다.

일본은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등지의 원유생산에 꾸준히 지분참여를 하고 있으며 석유의존도를 줄이고 원자력을 늘리는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중이다.

경제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인도 역시 최근 미얀마와 천연가스 송유관 건설에 합의하는 등 에너지 확보전을 가속화했으며, 중남미에서는 베네수엘라가 4월 자원국유화를 선언한 데 이어 볼리비아도 이달 에너지산업의 국유화를 선언하는 등 자원 민족주의가 깊어지고 있다. EU 국가들은 러시아의 입김을 약화시키기 위해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를 새로운 가스공급원으로 모색하고 있다.

shin@yna.co.kr

(끝)

<오픈ⓘ와 함께하는 모바일 연합뉴스 70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