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삼문(成三問) |
본관은 창녕(昌寧)으로 자는 근보(謹甫)이고 성승(成勝)의 아들이며 스스로 〈독서암(讀書庵)〉이라 호하였다. 세종[英廟] 때에 과거에 급제하고 또 중시(重試 3품 이하의 문관만이 응시하는 문과의 재시험)에 장원(壯元)으로 뽑혀 언제나 경연(經筵)에서 임금을 뫼셔 계옥(啓沃 임금을 깨우치고 돕는 것)한 점이 많았다. 세조[光廟]가 왕위을 물려받자 성삼문이 예방승지(禮房承旨)가 되어 국새(國璽)를 받들고 실성통곡(失聲痛哭)하였다. 박팽년(朴彭年) 등과 노산군(魯山君 단종)의 복위(復位)를 도모하다가 일이 발각되어 그의 부친 성승과 함께 사형을 받았다. 성근보(成勤甫)는 찬란하고 호방(豪放)하였으나 시(詩)는 잘하지 못하였다. 용재총화
세종 임술년 여름에 망한 원(元)나라 잔당들이 우리 나라에 글을 보냈으나 변방을 지키던 장수가 그 사신을 거절하고 입국시키지 않았다. 임금께서 친히 이변(李邊)을 보내어 이 일을 중국 조정에 알리니 성삼문이 서장관(書狀官 비서격)으로 수행하였다. 을축년 봄에 임금께서 성운(聲韻)을 크게 바로잡을 뜻을 가지고, 마침 중국의 한림학사(翰林學士) 황찬(黃瓚)이 학문이 있는데 요양(遼陽)으로 귀양왔다는 말을 듣고 신숙주(申叔舟)에게 가서 교정(校正) 받아 오라 명령하였는데, 성(成)선생 역시 함께 갔다. 그 해 가을 박연(朴堧)이 천자(天子)의 생일을 축하하러 북경(北京)에 가는데 신선생ㆍ성선생이 또 〈요양으로〉 갔다. 먼저 세 번째 갈 적에는 여러 선생이 모두 시를 지어 주었으나 뒤에 두 번째는 간혹 신선생과 합하여 지어 준 적이 있었다. 신선생이 요양(遼陽)에서 창화(唱和 남이 보낸 글에 맞추어 짓는 것)한 것이 몇 편 있었는데, 성선생이 이것을 모아 책 한 권을 만들어 노경(老境)에 한가하게 읽으려고 〈독서암한완(讀書庵閒玩)〉이라 이름하고 김수온(金守溫)이 서문을 지어 책머리에 붙였다. 본서(本序)
○ 임금이 내린 옷은 버리고 초야(草野)의 편복을 입었고 임금이 내린 역말은 두고 흰 채찍과 푸른 나귀를 탔다. 〈성삼문설원기(成三問雪冤記)〉
수찬 성삼문이 일찍이 어가를 호위하여 희우정(喜雨亭)에 가서 비해당(匪懈堂 안평대군(安平大君))을 따라 강에 나가 달을 완상(玩賞)하였다. 술이 거나하게 되었을 때 세자인 문종(文宗)이 환관들에게 시를 구하려 귤(橘) 한 쟁반을 주었다. 귤이 없어지자 시가 나타나니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놀라 영광으로 생각하고 각자 시를 지어 올렸다. 그 장면을 그려서 오래 전하도록 하라는 명령이 있었으므로 신숙주가 임강완월도(臨江玩月圖)의 서문을 지어 사실을 기록하였다. 본집(本集)
○ 병자년의 변고에 성삼문이 대궐 마당에 끌려 나갔을 때 신숙주를 보고 말하기를, “처음 그대와 집현전에 같이 있었을 때 세종께서 매일 왕손(단종)을 안고 집현전에 나와 산보를 즐기시면서 여러 학사들을 보고, ‘내가 죽은 뒤에 경들은 모름지기 이 애를 생각하라.’ 하신 말씀이 아직도 귀에 쟁쟁한데 그대 혼자 잊어버렸느냐?” 하였다. 다시 문초할 때 임금이 신숙주를 피하게 하였다. 강희안(姜希顔)이 공술(拱述)에 연루되어 고문을 받았으나 자복하지 않으니 임금이 묻기를, “강희안과 함께 모의하였느냐?” 하니, 성삼문이 말하기를, “정말 알지 못하오. 나으리[進賜]가 명사(名士)를 다 죽이니 이 사람은 남겨두었다 쓰는 것이 옳으리다. 정말 훌륭한 선비요.” 하여, 강희안이 이로 말미암아 화를 면하였다. 성삼문에게 형틀을 씌워 뜰 안으로 끌고 들어와 임금이 친히 심문하기를, “너희들의 이번 일은 무슨 일인가? 무엇 때문에 나를 배반하는가?” 하니, 성삼문이 소리 지르기를, “옛 임금을 복위시키려는 거요. 천하에 어찌 자기 임금과 자신의 어버이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있겠소. 내 마음은 나라가 다 아는데 나으리는 무엇이 이상하여 묻는 거요? 나으리가 남의 나라를 뺏앗아갔소. 나는 남의 신하가 되어 군주가 폐위당하는 것을 보고 견딜 수 없어서 그러는 거요. 나으리가 평소에 걸핏하면 주공(周公 주(周) 나라 성왕(成王)의 숙부로 어린 성왕을 끝까지 보좌했다)을 자칭하는데 주공도 이런 일이 있었소?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하늘에 태양이 둘이 없고 백성은 군주가 둘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오.” 하니, 세조가 발을 구르며 꾸짖어 말하기를, “내가 처음 위를 물려받을 때는 무엇 때문에 말리지 않고 오히려 나에게 의지하다가 지금에 와서 나를 배반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니, 성삼문이 대답하기를, “내가 처음 금지시킬 수 없었던 것은 형세상 그리하였소. 나는 기왕에 나아가서 금지시킬 수 없는 것을 알고 물러나 죽음이 있을 뿐인 것을 알았으나 헛되이 죽는다는 것은 무익한 일이기 때문에 오늘이 있기를 기다려 일의 결과를 노렸던 것이오.” 하였다. 세조가 말하기를, “너는 신(臣)이라 하지도 않고 나를 나으리라 하는데 너는 나의 녹을 먹지 않았느냐? 녹을 먹고 배반하는 것은 이랬다저랬다 하는 사람이다. 너를 병방 승지에서 예방 승지로 바꾼 것은 그 일을 잘하라고 한 것인데, 말은 상왕(上王)을 복위시키겠다고 하지만 사실은 네가 하려는 것이다.” 하니, 성삼문이 말하기를, “상왕(上王)이 계시는데 나으리가 어찌 나를 신하라 할 수 있소. 나는 사실 나으리의 녹을 먹지 않았소. 만약 믿어지지 않으면 나의 가산(家産)을 몰수하여 계산해 보시구려. 나으리의 말씀은 모두 허망된 것으로 쓸데가 없소.” 하니, 세조가 크게 노하여 무사를 시켜 달군 쇠로 그의 다리를 찌르라고 하였다. 그러나 팔이 끊어져도 굴복하지 않고, 천천히, “나으리의 형벌이 참혹하구려.” 하고, 안색을 변하지 않으면서 쇠가 식자 말하기를, “다시 달구어 오너라.” 하니 또 팔을 끊었다. 부친 성승(成勝)과 동생 삼고(三顧)ㆍ삼성(三省)과 함께 죽었다. 《동각잡기(東閣雜記)》
○ 우리 세종(世宗)께서 다른 나라에서는 모두 그 나라의 음으로 된 글이 있어서 그것으로 그 나라의 말을 적는데 우리 나라만 글이 없으며, 우리 나라의 음운(音韻)이 비록 중국과는 다르나 아(牙)ㆍ설(舌)ㆍ순(脣)ㆍ치(齒)ㆍ후(喉)ㆍ인(咽) 등 음과 음의 청탁ㆍ고저는 중국과 같지 않은 것이 없다. 언문(諺文) 자모(子母) 28자를 짓고, 궁중에 국(局)을 설치하여 성삼문ㆍ최항(崔恒)ㆍ신숙주(申叔舟) 등을 시켜 수정하도록 한 것이다. 당시 중국의 한림학사(翰林學士)의 황찬(黃瓚)이 요동(遼東)에 귀양와 있어서 삼가 신숙주를 시켜 중국에 들어가는 사신을 따라 요동에 가서 황찬에게 음운(音韻)을 질문하게 하였는데 무려 13번을 내왕하였다.동상
○ 문종이 동궁에 오래 있었는데 나이가 많아지면서 학문을 좋아하여 밤낮으로 쉬지 않았다. 달이 밝고 사람이 잠든 뒤면 간혹 책 한 권을 손에 들고 집현전 숙직실로 와서 어려운 것을 물었다. 당시 성삼문 등은 숙직할 때에 밤이라도 감히 의관을 풀지 못하였다. 하루는 한밤중이 되어 세자[鶴駕]가 오지 않을 줄 알고 옷을 벗고 누으려다가 갑자기 문밖에 신발소리가 나며 근보(謹甫 성삼문의 자)라고 부르면서 오니, 놀라 당황하여 얼떨결에 절할 정도였으니, 학문에 대한 근면과 신비를 좋아하던 마음은 천고에 드문 일이었다. 《용천담적기》
성삼문이 형벌을 받으러 수레를 타고 갈 때 그 집 종이 울며 술을 올리니, 삼문이 꾸부려 마시고 곧 시를 지어 이르기를,
임금이 내린 밥 먹고 임금이 주신 옷 입으며 / 食君之食衣君衣
예부터 먹은 마음 평생에 어김없기 바랐노라 / 素志平生願莫違
마음은 충과 효가 있을 뿐 / 心上但知忠與孝
현릉(문종의 묘)의 송백이 꿈에 아련하여라 / 顯陵松柏夢依依
하였다. 〈본전(本傳)〉
○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이 성종에게 아뢰기를, “성삼문은 충신입니다.” 하니, 성종의 안색이 변하자, 공(公)이 천천히 말하기를, “만약 변고가 있으면 신은 성삼문이 되겠습니다.” 하니, 성종의 낯빛이 평온해졌다. 《석담유사(石潭遺事)》
팔준도명(八駿圖銘) 병인(幷引) 동문선에서 나옴
혹독한 추위 뒤에는 반드시 따뜻한 봄이 오고, 급한 여울 아래에는 반드시 깊은 못이 있기 마련이니 평화와 혼란이 서로 이어 내려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옛날 고려가 성하지 못하여 천명이 이미 가버렸으니 위에서 허물어지고 아래에서 쇠하여져 시랑(豺狼)을 풀어 놓아 길목에 앉아 있게 하고 문관과 무관이 안일하고 향락만을 일삼아 전쟁이 교외(郊外)에서 일어나게 되니 어리석은 백성은 도탄에 신음하게 되었다.
천하를 잃어버리니 조계박압지대업(操鷄搏鴨之大業)도 마침내 없어질 것이고 우(禹) 임금이 없었던들 백성들은 물고기가 되었을 것이니 제세안민(濟世安民)의 책임은 뉘에게 돌아갈 것인가. 오로지 우리 태조 강헌 지인계운 성문신무대왕(太祖康獻至仁啓運聖文神武大王)께서 천년의 기회에 맞추어 상성(上聖)의 자질을 타고 났으니 실로 하늘이 낳은 덕이요, 신과 함께 모의하셨네. 한 번 크게 노하여 사악한 중을 몰아내니 사직(社稷)은 빈터가 되지 않았으며 만전(萬全)의 계획을 내어 홍건적(紅巾賊)을 섬멸하니 종묘(宗廟)는 옛 모습 그대로이다. 나하추[納哈出]를 쫓고 올랄(兀剌 두만강의 여진족)을 정벌할 때 태산(泰山)으로 계란을 누르는 것같이 쉬웠고 지리산(智異山)에서 싸우고 운봉(雲峯)에서 승리하니, 질풍(疾風)이 어찌 떨어진 잎사귀 하나 쓸기 어려우랴. 토동(兎洞)에 말 안장을 푸니 해로운 기운은 바다 밖에 사라지고 압록강에서 고삐를 돌리니 대의(大義)는 해와 별보다 빛났어라. 수십 회 전장에 출입하며 한 고조(漢高祖)처럼 상처를 만지시기 몇 번이며, 천만 리를 달리시니 촉 나라 선주(先主 유비(劉備))같이 넓적다리의 살이 빠졌어라. 남쪽을 치면 북쪽에서 원망하며 대국은 두려워하고 소국은 그리워하여 가는 곳마다 서로 경하하니 정말 그 공훈 크게 이루었도다. 5백 년 만에 성인(聖人)이 나시니 칠덕(七德)은 이미 5백 년을 가름하였고 삼천의 암말[牝]인 신물(神物)이 나왔으니 한결같은 마음은 삼천여 명이 맞았어라[允協於三千]. 달리는 발굽은 법도에 맞고 부드러운 마음은 사람을 순하게 하네. 마음은 간절히 진영에 돌아가고 싶고 지혜는 익숙하여 잃었던 길로 도로 �O네. 오늘의 액운은 노력으로 풀 수 있고 내 채찍 가리키는 곳 어디고 건너가네. 생사를 서로 의탁함이 가볍지 않으니 문무의 공이 더욱 드러나네. 수레 소리 장대한 모양은 주 나라 원마(騵馬)와 가지런하고, 말이 크고 살찐 모양은 어찌 노(魯) 나라 수말에 뒤지겠는가. 태을(太乙)이 정기를 모았으니 하늘의 보배를 아끼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고 구오(九五)의 때를 얻으니 곤(坤)의 정(貞)에 부합하여 하늘같이 끝없어라. 활과 화살을 활집에 거둬들이고 신음하는 소리를 노래 소리로 변하게 하였으며, 산과 물길로 남만(南蠻)에 통하고 북쪽 풍속이 관대(冠帶)를 쓰게 되었다. 만세의 도덕정치[垂衣]를 열었으니 하늘의 아름다움이 진실로 오늘에 이르렀고, 삼한(三韓)을 안정시켜 베개를 높이 베게 하니 임금의 덕이 나에게 무슨 상관이 있는가하네. 이것은 비록 신무하심으로 사방을 정벌한 위엄도 크지마는 또한 준마(駿馬)들의 신통한 재주로 내달리는 효력을 얻은 덕도 있는 것이니 미물이라 할지라도 어찌 이것을 알지 못할 것인가. 모두가 때를 기다렸던 것이다. 삼가 생각하면, 우리 주상전하께서 하늘의 총명을 법받으시고 조상의 밝은 뜻을 이으셨네. 크게 어려운 일을 물려받아 뒤를 이어 어긋남이 없도록 생각하시고, 즉위하여 예교(禮敎)를 베풀고 차례를 계승하여 길이 잊지 않을 것을 생각하시며, 우러러 밭 이루고 집 터닦아 나라의 기초를 세우던 노고를 생각하사 매번 국을 대하고 담장을 볼 때마다 선조를 간절히 추모하셨네. 제왕의 업을 일으키는 것은 한 사람이 성공시키기 어려운 일이며 사람들의 협력이 있어야만 일을 성공시킬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셨다. 그러므로 공신을 책봉하여 대려(帶礪)의 맹세가 단단하였고 동물에까지 미치는 개유(蓋帷)의 은총이 또한 융성하셨다. 그러므로 여러 공신은 이미 운대(雲臺)에 화상을 그렸으나 팔준(八駿)은 아직도 소릉(昭陵 종묘 다음 가는 묘)에 진열한 것이 없었다. 드디어 윤음을 내리어 그림을 그리게 하니 호두(虎頭 진(晉) 나라 고개지(顧愷之)) 같은 화가가 윗도리를 벗어젖히고 그리기 시작함에 용함(龍頷 용의 턱)이 몰려 바다에서 나왔도다. 줄줄이 붉은 피 같은 땀 흘린 공로 완연하고 화살이 흰 살에 박혔으니 전쟁 치른 늠름한 모습이라. 화가의 손에 따라 죽은 뼈도 살릴 수 있고 눈으로 보면 썩은 고삐[朽索]를 경계할 것이니 여러 자손들이 한가한 때에 이 팔준도(八駿圖)를 보면 부귀는 말 위에서 얻은 것을 알 것이다. 겹 방석 위에 앉게 되면 바람에 빗질하고 비에 목욕하던 시절을 상상하게 될 것이며 여덟 가지 진미를 대하더라도 콩죽과 보리 밥 먹던 때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방탕하게 노는 것이 잠명(箴銘)함에 비유되고 산천은 얻기 쉬운 것이 아니라고 여기리니, 대동팔준(大東八駿)의 그림 한 폭이 마땅히 《시경(詩經)》의 빈풍(豳風) 칠월(七月 주 나라 건국을 노래한 시)편과 가지런한 것을 알 것이니, 아름답도다! 나는 새도 발꿈치가 변하고 튀어나오는 쥐가 수레를 망칠 수 있는 법이니, 주 목왕(周穆王)이 서왕모(西王母 곤륜산에 살았다는 신선으로 주의 목왕(穆王)이 선도(仙桃) 세 개를 얻었다 함)와 술 마실 때에 수레바퀴 자국은 온 누리에 가득하였고, 한(漢) 나라가 이사성(貳師城)을 포위하였을 때 나르는 수레가 지역 밖에 이르렀다. 말[馬]이 많다고 믿었으나 진(晉) 나라는 위험을 면할 수 없으며 말이 4천 필 되어도 제(齊) 나라는 일컬어지지 않았으니, 혹은 뜻을 잃어 덕을 더럽혔고 혹은 백성을 괴롭혀서 나라를 병들게 하였으니, 이것은 모두 제왕의 법을 황폐하게 하여 뒷 세상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아아! 당(唐) 나라에 충성하고 수(隋) 나라에 간사한 것은 사람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쓰면 호랑이가 되고 쓰지 않으면 쥐가 되가 되는 미물을 어찌 탓하리! 후일 왕께서 이 그림을 보시고 황조(皇祖)를 법도로 삼아 계승하실 것을 생각하시고 몇몇 그릇된 임금을 경계삼아 하루 이틀만이 아니라 언제나 이것을 생각하면 실로 우리 조선 만대의 복이도다. 신은 들으니 “선조를 드러나게 하는 것이 지극한 효도이며, 후세에 분명하게 보여 주는 것이 크나큰 교훈이다.” 합니다. 선조에 착한 일이 있었어도 이것을 모르면 현명하지 못하고, 알고도 후세에 전하지 않으면 어질지 못한 것입니다. 엎드려 보건대, 전하께서는 공경하심이 선조를 높이시고 은혜 베푸시는 것이 미물에 미치시어 선조께서 일컬은 바를 아름답게 여기시고 한 일을 아름답게 생각하여 오늘날 사모하고 염려하는 회포가 한없이 아름다우며 또 한없이 근심하여 후손들이 지켜갈 법규로 삼으시며 효도와 공경이 아울러 융성하고 현명하시고 인자하심이 두루 갖추어지셨으니, 가송(歌頌)을 지을 때가 바로 이때이기에 찬양하는 말씀을 어찌 않을 수 있겠나이까. 그러나 신의 기술은 마치 금(黔) 땅의 나귀같이 짧고 한문은 노(魯) 자와 어(魚) 자를 구별할 수 없으니 연대(燕臺 연(燕) 나라 소왕(昭王)이 대(臺)를 짓고 현인(賢人)을 구하였다)에서 현명한 사람을 구하는데, 천리를 달려갈 재주가 없으면서 들어온 것이 부끄러우며 한 나라 궁문에서 조서를 기다리는데 잘못 일고지가(一顧之價 백락(伯樂)이 한 번 돌아보면 말 값이 올랐다)를 더하여 벼슬을 얻었으나 어리석고 둔하여 비록 멀리 갈 자격은 없으나 닭의 울음과 개의 짖음으로 그 능력을 다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하물며 성스러운 공을 널리 펴는 것이 당연한 직분이기에 감히 어리석은 생각을 다하여 받들어 효성을 기술하여 기린(麒麟)의 덕을 만분지일이라도 노래하여 크나큰 아름다움을 미래에 전파하려 하나이다. 삼가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명을 올리나이다.
외나무 횡운골(橫雲鶻)
횡운골이여 길들었고 건장하니 / 橫雲鶻閑且佶
만리의 피땀이이요 천금의 뼈로다 / 萬里血千金骨
소나기 같이 다리를 넘어 사라지듯 / 驟徒略彴滅若沒
높이 든 네 발굽은 한 번도 헛디딤 없어라 / 超據四足無一蹶
우리 태조 비바람 속에 고생하던 때 / 我祖辛勤沐以櫛
위험한 고비는 몇 번이나 같이하였던가 / 乘危幾時同倉卒
우리의 터전을 크게 닦아 오늘이 있으니 / 基我丕丕有今日
횡운골이여! 그 공 제일이로세 / 橫雲鶻功第一
유린청(游麟靑)
유린청이여 몸이 봉우리같이 우뚝 솟았으니 / 游麟靑體峯生
순하면서 굳세니 동의 영기로세 / 地之類銅之英
어진 상서 들춰내어 임금을 받들었고 / 振之仁瑞聖明
나이 들수록 기예도 성숙하네 / 齒歷延長藝老成
사방으로 간악한 무리들을 짓밟아 나라가 편안하네 / 四踣艱頑邦以寧
31년 그 영기를 빛내고 / 三十一祀耀厥靈
죽어서 돌구유 남아 있어 큰 이름을 떨치니 / 死有石槽留雄名
유린청이여! 그 덕 어찌 다 말하리 / 游麟靑德馬稱
추풍조(追風鳥)
추풍조여 오랑캐 땅에서 들어오니 / 追風鳥來自胡
나라의 보배요 천하에 둘이 없네 / 域中寶天下無
소리 타고 해를 좇아 허공에 오르니 / 乘聲逐日騰半虛
단번에 임금 은총 입었구나 / 一見特荷乾心紆
험난한 곳을 사람과 드나들어 / 入險濟難與人俱
신무를 도와 나라를 평정했네 / 替揚神武淸坤隅
소릉(당 태종)의 백제공과 비슷하니 / 昭陵白帝功爲徒
추풍조여! 하도복희 시대에 용마(龍馬)가 하도(河圖)를 지고 나왔다 함)에 응해 나았구나 / 追風鳥生應圖
발전자(發電赭)
발전자여! 용이냐 말이냐 / 發電赭龍邪馬
기예의 용무함 짝할 이 적으리라 / 藝之武匹也寡
제 그림자 돌아보며 머리 들어 한 번 우니 / 顧影長嗚脰一騀
기북(말의 산지)의 만필 말이 모두 아래로세 / 冀北萬匹材盡下
치달리면 법에 맞아 조금도 어김없어 / 馳驤合規無偏頗
채찍 한 번 휘둘러 사직을 안정시켰네 / 一鞭攸指定稷社
대동 천년이 길이 편안하리니 / 大東億載長帖妥
발전자여! 참으로 훌륭한 말이로다 / 發電赭吁駉者
용등자(龍騰紫)
용등자여! 천마의 새끼로다 / 龍騰紫天馬子
번개 같은 눈동자에 통 같은 귀로세 / 散電睛揷筩耳
달 가운데 영기를 받고 황하의 기운 모아서 / 稟靈月窟河聚氣
우리에게 진룡을 선사하니 변화가 귀신 같네 / 貺我眞龍化若鬼
오래도록 전쟁터에서 생사를 의탁하여 / 久矣臨陣托生死
너긋하게 진흙 천지를 거부하지 않았네 / 容與一世泥淖地
공로는 적로가 단수(형주(荊州)에 있는 시내인데 유비(劉備)가 적로를 타고 액을 면했던 곳)를 뛰어 넘은 것과 같으니 / 功符的盧躍檀水
용등자여! 만년을 빛나리 / 龍騰紫光萬祀
응상백(凝霜白)
응상백이여 힘만 칭찬할 것이 아니로다 / 凝霜白匪稱力
크기도 크고 굳세고 슬기롭네 / 大有顒剛且淑
압록강 물 출렁이며 기슭은 천 길인데 / 鴨水湯湯岸千尺
흰 화살 날아가며 붉은 활 번쩍인다 / 白羽昕晣晣彤弓赫
밤을 비치는 광경이 휘영청 밝은데 / 照夜光景輝相燭
나부끼는 깃발이 발굽을 따라가네 / 央央義斾隨踠之
한 번 삼한을 돌아 백성의 뼈에 살을 부쳐 주었으니 / 一回三韓骨而肉
응상백이여! 싫어함이 없었어라 / 凝霜白而無斁
사자황(獅子黃)
사자황이여 가는 길 막을 이 없네 / 獅子黃行無疆
승상은 현명하고 장군은 강하였다 / 丞相明將軍强
하늘이 한 번 불어 기운 모아 상서를 내어 주어 / 天一翕聚呈厥祥
용의 새끼가 바다에서 머리를 불쑥 내밀었네 / 龍媒闖然海之央
두류산(지리산) 바위마다 도적 기세 창궐한데 / 頭流岩岩賊氣張
한 번 뛰어 무용을 뽐낼 적에 칼 빛이 뒤따랐네 / 一超奮武隨劍光
적의 머리 산같이 베어 바치니 / 坐見獻級如崇岡
사자황이여 정말 훌륭하여라 / 獅子黃思斯戚
유현표(維玄豹)
유현표여 으르렁 소리 내며 사납다 / 維玄豹闞以虣
오래 적수 없었으니 뉘에게 비교하리 / 久無敵誰與
방성의 정기 모여 잠저에 비치더니 / 房星摛精潛邸耀
드디어 뛰어난 말이 태어났다 / 胚胎逸蹄殊踸踔
토동에 안장 푸니 신기한 공을 세웠으며 / 解鞍兎洞輸奇効
섬 오랑캐는 백 척 배가 한 척도 못 돌렸네 / 島夷百艘無回櫂
단청으로 그린 화상도 늠름하니 / 畫上丹靑凜惟肖
유현표의 위풍이 당당하여라 / 維玄豹之蹻蹻
차원부의 원한을 씻어준 응제 두 수[車原頫雪寃詩應製二首]
원 위에 거센 바람에 사기가 기우는데 / 原上風顚舍杞傾
반암에 맑은 물을 누가 보호하는고 / 半岩誰護舊雙淸
두어 굽이 물에는 오로지 두 여울물 있어서 / 數灣唯有二灘水
한결같이 네 악한을 소리치며 꾸짖는다 / 一樣喧訶四孼生
공이 스스로 주(註)하기를, “원(原)이란 송원(松原)과 마원(麻原) 두 재[嶺]를 말하며 우봉(牛峯)과 송경(松京 개성)의 경계에 있다. 차원부(車原頫)는 공리를 돌아보지 않았으며, 하륜(河崙)이 악한 일 할 기미를 알고 평산(平山)으로 갔다. 사기(舍杞)는 차원부(車原頫)를 가리키는 말이다. 공정(恭定 태종(太宗))께서 마침내 차원부가 무고히 살해당한 것을 알고 노하여 하륜을 꾸짖기를, ‘나의 기(杞)와 재(榟 모두가 좋은 목재)가 이제 다 쓰러졌다.’ 하였다. 반암(半岩)이란 반산풍월(半山風月)로 매화(梅花)라는 뜻이며, 차원부가 있던 평산(平山) 수운암(水雲岩)의 동구(洞口)를 말한다. 차원부가 그곳에 살 적에 몇 그루의 매화를 바위가에 심어놓고 천 포기의 국화를 못 위에 심었다. 그래서 스스로 매화의 뜻을 취하여 그 골짜기에 사람은 없고 다만 매화와 국화의 두 가지 청신함만 있는 것을 길게 한탄한 것이다. 두 여울물이라는 것은 수운동(水雲洞)이 동북면(東北面)에 있는 것을 말하며, 네 악한[四孼生]이란 조준(趙浚)ㆍ정도전(鄭道傳)ㆍ하륜(河崙)ㆍ함부림(咸傅霖)을 가리킨다.” 하였다.
봄산을 향하여 우는 자규에게 묻노니 / 哭向春山問子規
그 사람 무슨 일로 이 지경이 되었는가 / 幽人何事至於斯
어찌 알리, 어젯밤 용루의 나비 날아와 / 那知昨夜龍樓蝶
운암동 바둑판을 장난으로 휘저은 일을 / 飛戲雲岩洞局棊
공이 스스로 주(註)하기를, “자규에게 묻는다는 것은 시인의 뜻이다. 그 사람[幽人]이란 차원부(車原頫)를 두고 한 말이고 용루의 나비란 태조께서 꿈에 차원부를 보았다는 뜻이다. 날아와 운암동의 바둑판을 희롱하였다는 것은 나비가 날아와 차원부의 바둑 두는 것을 휘저어 희롱하였다는 뜻이다. 차원부는 본시 처사로 공리를 생각하지 않고 바위 골짜기에다 집을 짓고 서너 명의 형들과 더불어 도[天眞]를 닦고 있었다. 태조가 나라의 근본인 중대사를 의논하려 하였으나 미처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대상이 없어 아쉬워할 적에 갑자기 꿈을 꾸고 깨달은 점이 있었다. 과거에 위화도 회군을 의논하였을 적에 다섯 번의 칙서(勅書)를 내려 한 달에 사흘은 방문해 주도록 하였다. 그러다가 마침내 서자(庶子)가 적자(嫡子)를 싫어하는 태자들의 난이 일어나게 되어 네 형(兄)과 함께 주살되고 말았으니 이때의 사실을 누가 감히 명백하게 변명할 수 있을 것인가? 신은 또 중병이 있어서 마음과 정신이 어지러워 실수가 많아 평상시의 일을 기억하려 하나 잊어버리고 보답하지 않았다. 그 많은 은총에 보답 하나 못하였으니 신이 만 번 죽어도 죄를 용서 받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지금 차원부가 원을 풀게 되었으니 어찌 시운의 성쇠에 따른 일이 아니겠는가마는 오로지 성상께서 선대의 유의(遺意)를 이어서 살펴보신 결과인 것이다.
동자습서(童子習序)
동방에 있는 우리 나라는 해외에 있기 때문에 말이 중국과 달라 통역을 하여야만 서로 통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역대 임금부터 대국을 지극하게 섬겨 승문원(承文院)을 두어 이문(吏文)을 관장하게 하고, 사역원을 두어 통역을 관장하게 하여, 각기 그 본업에 전념하며 오래도록 그 임무를 수행하게 하니 그 생각이 치밀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러나 한자의 음을 배우는 사람들이 계속 전해 내려와 이어받는 지 오래되어 잘못되고 틀린 것이 점점 많아져서 종(縱)으로는 사성(四聲)의 빠르고 느린 것이 문란하고, 횡(橫)으로는 7음(七音 순(脣)ㆍ설(舌)ㆍ치(齒)ㆍ아(牙)ㆍ후(喉)ㆍ반설(半舌)ㆍ반치(半齒))의 청탁을 잃게 되었는데, 또 중국의 학자들이 옆에서 바로잡아 주는 일도 없기 때문에 비록 노숙한 학자나 익숙한 역관이라도 일평생 그대로 따라가 마침내 고루하게 되고 말았다. 세종과 문종(文宗)께서 이것을 걱정하시고 훈민정음을 만드시니 천하의 소리는 이것으로 적지 못할 것이 없게 되었다. 그리고 《홍무정운(洪武正韻)》을 번역하여 중국의 음(音)을 바로잡고 또 그것으로 《동자습(童子習)》을 직해(直解)하니 번역한 뜻이 평탄하고 부드럽게 되어, 중국말을 배우는 입문서가 되었다. 지금 부승지 신숙주(申叔舟)ㆍ겸승문원교리(兼承文院校理) 조변안(曹變安)ㆍ행예조좌랑(行禮曹佐郞)ㆍ김증(金曾)ㆍ행사정(行司正) 손수산(孫壽山) 등에게 명하여 정음(正音)으로 한자의 뜻을 옮기도록 하여 글자마다 밑에 가늘게 쓰게 하였으며 또 방언을 써서 그 뜻을 해석하게 하였다. 이어 화의군(和義君) 이영(李瓔)ㆍ계양군(桂陽君) 이증(李璔) 등에게 명하여 이 일을 감독하도록 하고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 김하(金何)ㆍ경창부윤(慶昌府尹) 이변(李邊) 등을 시켜 의심스러운 것을 증명하게 하여 마침내 이두 책의 음과 뜻이 명확히 드러나서 마치 손바닥을 보듯 분명하였다. 통탄스러운 일은 책이 겨우 이루어지자마자 활과 칼을 계속하여 버리신 것이다. 세종ㆍ문종이 승하한 것 삼가 금상전하(今上殿下 단종)께서 즉위하신 초에 선왕(先王)의 뜻을 추모하여 급히 책을 간행하도록 하시고, 또 신 삼문(三門)도 교열에 참가하여 서문을 쓰라고 명하셨다.
신이 생각하건대, “사방의 말이 비록 남북이 서로 다르지만 말의 소리가 아(牙)ㆍ설(舌)ㆍ순(脣)ㆍ치(齒)ㆍ후(喉)에서 나는 것은 남과 북의 차이가 없는 것이다. 이것을 명백하게 알면 말의 소리가 어려울 것은 없다. 우리 동방에서 나라가 생긴 지 몇 천 몇 백 년을 지나 사람들은 날마다 말을 쓰고 있으나 우리에게 7음이 있는 것을 모르고 있으니, 7음마저 모르는데 하물며 청탁과 경중을 알 수 있겠는가? 그러니 한어(漢語)가 어려운 것은 말할 것도 없는 일이다. 이 책이 번역되어 칠음(七音)과 사성(四聲)이 입만 벌리면 자연히 분별되고 종으로 횡으로 서로 정연하여 조금도 틀림이 없으니 옆에서 바로잡아 주는 사람이 없는 것이 무슨 걱정될 것인가. 학자가 먼저 정음 몇 자만 배우고 다음에 이 책을 읽어 열흘 동안이면 한어를 통할 수 있으며 운학(韻學)도 명백하여져서 대국을 섬기는 일은 이로써 다 될 것이다. 두 성인(聖人 세종ㆍ문종)이 제작하신 오묘하심은 백대에 높이 뛰어나심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의 번역은 하늘을 두려워하여 나라를 잘 보호하는지극한 계획이 아님이 없으니 우리 성상께서 선왕의 뜻을 잘 이으시고 잘 실행하시는 아름다움도 또한 지극하도다.
최 주부가 봉양하려 귀향함을 전송하는 시의 서문[送崔主簿歸養詩序]
나의 벗 최지보(崔智甫)는 근실하고 정성스런 사람이다. 나와 서로 알게 된 것은 계축년 봄부터의 일로, 그 당시에는 최후(崔侯 지보(智甫))의 부친이 서울의 저택에 있어서, 최후가 아침저녁으로 부모를 보살피는 효성이 지극하여 맛있는 음식을 잘 받들면서도 언제나 효성을 다하지 못한 것같이 생각하였다. 내가 때로 왕래하며 이것을 목격하고 정말 최후를 따를 수 없다고 생각하였으니, 이때부터 교제가 더욱 두터워졌다. 지금 그 아버지는 양지(陽智)의 촌가(村家)에 가 계시는데, 내가 최후에게, “왜 모시고 와서 봉양하지 않는가?”라고 물었더니, 최후는 슬픈 듯 얼굴빛을 변하면서 말하기를, “우리 부모가 거기 계시는 것이 그 마음이 편하시기 때문이니, 내가 그것을 어기지 못한다.” 하고, 곧 조정에 고하여 그 직위를 떠나서 처자를 데리고 남쪽으로 돌아갔다. 전 예문관 직제학 최선생이 먼저 사운시(四韻詩)를 지어서 그의 가는 것을 노래하니 내가 재배하고 머리를 조아려 공경하면서 서문을 써서 말하기를, “우리 나라는 여러 성스러운 임금께서 서로 이어서 효도로 다스렸기 때문에 대부(大夫)나 사(士)의 어버이가 먼 곳에 있는 사람들은 어버이의 나이 많아지면 돌아가 봉양하겠다는 뜻을 들어주어 어버이된 사람들로 하여금 봉양을 받게 하고, 자식된 사람으로 하여금 그 효심을 다하게 하니, 임금께서 늙은이를 늙은이답게 대접하여 효도를 진작시킨 것은 그 은혜가 지극하도다. 다만 자식된 사람이 공경하게 그 덕의(德義)를 이어 받들고 내 마음의 정성과 공경을 일으켜 돌아가 봉양하는가 안하는가에 달려 있을 뿐이다. 내가 보니, 사대부 중에 높은 관을 쓰고 홀(笏)을 단정하게 하고 천천히 걷고 느릿느릿 행동하는 것이 마치 아무 근심없이 만족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하루아침에 어버이를 사별하여 발을 구르며 통탄하며 비로소 돌아가 부모를 봉양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사람이 매우 많다. 아아! 어버이가 집에 계실 때 돌아가 봉양하여야 하는 것을 누가 하지 못하게 금하여서 하지 않았으며 누가 가지 못하게 말려서 가지 않았던가?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사람치고, 돌아가 봉양하는 것이 아름다운 일이며 돌아가 봉양하지 못하는 것이 아름답지 못한 일인 줄 누가 모르리오. 그러나 금지하지 않는 데도 하지 않으며, 말리지 않는 데도 가지 않는 것은 오로지 마음으로 흠모하는 것이 이 벼슬에 있기 때문이다. 자식된 사람이 이 벼슬을 흠모하지 않는다면, 현명하고 효도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최후(崔侯)의 가는 것을 따를 수 없다고 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최후의 가는 것이 어찌 나의 마음이 이처럼 공경하도록 하겠는가.” 하였다.
팔가시선서(八家詩選序)
내가 하루는 비해당(匪懈堂 안평대군)이 지은 《당송팔가시선(唐宋八家詩選)》을 얻어 와서 향을 피우고 옷을 단정히 하고 여러 번 되풀이하여 읽고는 삼가 재배하며 머리를 조아리고 말하기를, “시체(詩體)는 고금의 변함이 있으나 학자들이 다 같이 배워서 만세에 바꿀 수 없는 것이 네 가지 체(體)가 있으니 아송(雅頌)ㆍ소사(騷些)ㆍ고시(古詩)ㆍ율시(律詩)가 그것이다. 소위 아송이란 것은 성인의 손에서 나와 만세의 교훈을 세운 것이며, 소사(騷些)는 곧 주자(朱子)가 주해한 초사(楚辭)이며, 고시는 곧 유리(劉履)의 선시(選詩)로 세상의 학자들은 또 그 계통을 알고 존경하고 있는 것이다. 율시(律詩)에 있어서는 그것을 뽑은 사람이 한 사람이 아니며, 모두 푸른 것을 뽑아 흰 것에 배합하는 식으로 부드러운 살과 연한 뼈만 찾는 것을 숭상하고 있으니 훌륭한 군자로서는 탐탁하지 못한 것이다. 이 선집을 보니 팔가(八家) 이외 다른 사람들의 작품은 모두 싣지 않았다. 선택에 이르러서는 지극히 정밀하고 엄정하여 일반적인 것보다는 훨씬 뛰어났다. 그러나 시대적으로 멀고 작자 또한 많은데 지금 단지 팔가(八家)의 시에만 그쳤으며, 팔가 가운데서도 몇 수만을 고르는데 그쳤으니 어떤 사람들은 넓게 취하지 못한 것을 의심할지 모른다. 대체로 좋은 옥을 산출하는 곳이 곤륜산(崑崙山)만이 아닌데, 천하에 옥을 말하는 사람은 모두 곤륜산을 제일로 삼기 때문에 곤륜산이 천하에서 옥이 많은 곳으로 알려진 것이다. 곤륜산 옆에 있는 사람들은 까치를 잡는 데도 옥돌을 사용하니 옥이 정말 많은 것이다. 그러나 옥을 캐서 갖는 것은 반드시 그 빛깔이 온아하고 윤택하며 옥결이 치밀하고 부드러워 밤[栗] 같으며 그것을 두드리면 소리가 맑고 길게 여운이 있는 것이 좋은 것이니, 옥을 선택하는데 오묘한 점이 있다. 군자가 취하는 것 또한 이것과 같은 것이다. 시를 지은 것이 정말 성정(性情)에서 출발하여 풍속과 교화에 관한 것이 아니며 선과 악이 사람을 징계하고 권고할 만한 것이 아니라면 모두 취할 것이 못 되는 것이다. 아아! 시는 주 나라에 와서 극성하였으나 성인이 교화를 위하여 선택한 것은 단지 3백 11편이면 충분하였고, 굴원(屈原)ㆍ송옥(宋玉)ㆍ소무(蘇武)ㆍ이릉(李陵) 이후로 시와 부(賦)를 짓는 것이 주(周) 나라의 배가 되었어도 주자와 유씨(劉氏)가 교록(校錄)한 것이 또 많지 않았으니 시가 어찌 많다고 좋은 것이겠는가. 많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아아! 만세(萬世)의 장벽(墻壁)을 뚫어서 학자들로 하여금 밝은 길로 인도한 것은 부자(夫子 공자)가 시를 산삭하신 공이다. 초사와 시선을 만든 것도 모두 아송(雅頌)을 도와서 성교(聖敎)에 큰 공이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선집(選集)은 명현(名賢)들의 아름다운 작품을 모아서 시학(詩學)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여 지금 사람과 장래 사람들로 하여금 시와 소(騷)의 여운을 알게 하여 느껴서 분발하고 경계하여 징계된다면 이 역시 성현의 뜻인 것이다. 삼문(三問)이 직접 지극히 아름다운 것을 보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글을 썼다.
두보의 시운을 써서 신범옹 신숙주 에게 보이다.[用工部韻示申 泛翁 申叔舟]
삼한 서북땅은 의주인데 / 三韓西北是義州
긴 강이 만고토록 성 아래 흐르누나 / 長江萬古城下流
청춘에 이곳을 지나는 것 벌써 두 번인데 / 靑春過此己云再
다음 세 번째는 가을에 갈 것 같다 / 第三行色如在秋
그대 이 걸음이 응당 잦을 것이니 / 君之此行應頻頻
이 걸음 잦은 것을 그대 근심말지어다 / 此行頻頻君莫愁
하루아침의 근심이 어찌 군자의 근심이리오 / 一朝患豈君子患
종신의 근심이 장부의 근심이라 / 終身憂是丈夫憂
입으로는 주공 공자의 말을 하며 손에는 시서를 놓지 않고 / 口談周孔手詩書
행차에는 살찐 말이 있고 추위에 가벼운 갖옷이라 / 行有肥馬寒輕裘
마음가짐 그대는 쇠같이 굳건하니 / 操心君可堅似鐵
일을 만나면 그대는 갈쿠리같이 굽지 말라 / 遇事君休曲如鉤
곤궁하여도 마음을 편히하여 천명을 즐길 것이요 / 窮也慰慰樂天命
나아가면 마음 넉넉하여 나라의 정사를 펼 것이다 / 達則優優敷國政
독선과 겸선은 궁과 달을 따르시니 / 獨善兼善隨窮達
군자의 한결같은 덕이 어찌 성하지 않는가 / 君子一德豈不盛
범옹이 차운한 시를 부치다 [附泛翁次韻]
그대의 재주와 명성 중국 천지 흔들어서 / 吾子才名動神州
중화인도 벌써 보통 인물이 아닌 것을 아네 / 華人已識非凡流
시상과 글씨는 대적할 이 없고 / 詩腸筆陣莫如敵
인품은 노성하였으나 연세는 젊었어라 / 器宇雖老富春秋
사방을 경영할 장한 뜻 어릴 적부터 품고 있으니 / 桑弧壯志自齠齕
가슴에 어찌 이별의 슬픔 있을 건가 / 胸中肯遣生離愁
객창에서도 책을 손에서 놓은 적 없으니 / 客窓卷帙手不釋
요순 같은 군신 되려 항상 근심을 품네 / 堯舜君臣常懷憂
청운의 발걸음 하늘 길 트여 있고 / 靑雲步武天路遠
전해오는 가업을 계속하여 이어오네 / 家業人道傳箕裘
음운을 탐구함이 뉘 가장 앞섰던가 / 探音究韻誰最先
먼 것도 따오고 깊은 것도 찾아낸다 / 遠亦摘之深亦鉤
스스로 궁과 달은 운명이 있다고 말하니 / 自言窮達天有命
궁하면 자신을 지키고, 달하면 정치하네 / 窮來自守達聞政
원하노니 이제부터 그대 더욱 노력하여 / 願子從今更努力
공업을 청사에 크게 적게 하라 / 功業書之靑史盛
범옹이 두보의 시운을 써서 지은 시에 차운한 시[次泛翁用工部韻]
나그네 혼이 어찌 어둑한 듯 녹아날까 / 客魂那用黯然銷
모이고 흩어지는 구름 바람에 떠간다 / 聚散雲在風中漂
좌중에 오랑캐 장사치 돈을 자랑하며 / 座上商胡弄緡錢
나를 꼬이고 나에게 오만 부리며 말에 교만함이 많구나 / 財我傲我言多驕
그 중에도 한 둘은 문자를 알아 / 中有一二識文字
나를 좋아하여 술 사들고 찾아온다 / 愛我携酒來相要
창자 채울 것으로는 싣고 온 쌀이 있고 / 撑腸只有駄來米
땔나무도 좋아서 객중에 걱정 없다 / 薪桂客中難蘇樵
험하고 평탄한 것 만남을 따라 자리 정하면서 / 險夷隨遇爲之所
자유스럽게 휘파람 길게 불며 여사에 누웠구나 / 偃蹇長嘯臥逆旅
10년 한학 무슨 소용된단 말인가 / 十年漢學知何用
지금에야 겨우 한두 마디 얻었노라 / 今來只得二三語
고향에 돌아갈 제는 은ㆍ근 두 글자 변별하리니 / 還鄕應辨銀根二
형제와 붕우들이 허락하여 주리라 / 弟兄朋友許相許
아서라 천운이 이와 같으니 / 已哉天運苟如此
술 더 내고 안주 들자 / 且添罇酒添魚煑
두보의 시운 써서 범옹에게 보이다[用工部韻示泛翁]
산 것은 뜬 구름 같고 죽으면 그만인데 / 生也如浮死也休
인생 백년을 어찌하여 오래 오래 근심하리 / 百年何必長愁憂
요동의 여관에는 아무런 할 일 없어 / 遼東館裏一事無
며칠을 술 주전자와 서로 머뭇거리누나 / 數日罇酒相淹留
인생이 이쯤 되면 저절로 즐거우니 / 人生如此自有樂
무엇하러 방외(세상밖)의 단구(신선)를 구할건가 / 不用方外求丹丘
마른 웅어 거친 밥이 내 허기 채워주는데 / 脩鱅蔬糲飽我飢
항차 도서가 있어 맑고 아담한 것 제공하네 / 況有圖書供淸幽
하늘과 땅은 넓고 이 몸은 작은 것이 / 乾坤納納此身小
마치 아홉 소에 한 털이라 / 正如一毛傳九牛
귀한 것도 운명이요 천한 것도 운명이니 / 貴也命也賤也命
귀하다는 것 반드시 왕후로 봉함을 받는 것 아니리라 / 所貴未必封王侯
옛 성현과 통달한 선비 지금 어디 있나 / 古來賢達今何處
긴 노래 한 곡조에 마음만 유유하다 / 長歌一曲心悠悠
간 곳마다 주인이 날 취하게 하니 / 在在主人能醉我
누가 나그네 설움 알겠는가 / 誰知客裏悲貂裘
요순 같은 군신 내 힘으로 안 되는 것 / 堯舜君民非我力
빛나는 좋은 선비들 왕국에 가득 찼다 / 藹藹吉士多王國
내 몸 춥지 않고 배마저 안 고프니 / 吾身不寒腹不飢
성대의 포난이 이만하면 만족하지 / 聖代飽煖亦自得
범옹이 차운한 시를 부록하다[附泛翁次韻]
인생 만사 쉬는 것만 못하나니 / 人生萬事莫如休
세상의 무슨 일이 근심 없을쏘냐 / 世間何事無愁憂
광음은 흘러 동으로 흐르는 물과 같고 / 光陰倏忽東流水
태양은 어찌 날 위하여 머물겠는가 / 白日爲我寧淹留
나이는 삼십인데 살쩍은 반백이요 / 年來三十鬂毛班
단약(신선이 되는 약)을 찾으려도 단구를 찾을 길 없네 / 還丹無處尋丹丘
객중에 찌푸린 눈썹 누구와 펴볼꺼나 / 客中雙眉誰與伸
다행히 하산(성(成)씨의 본관)이 있어 그윽한 정 읊어보네 / 幸有夏山吟淸幽
거칠고 졸렬한 내 재주로 기이한 칼날과 맞서보니 / 欲將荒拙當奇鋒
천균(1균은 30근)같이 무거워서 아홉 소를 돌리는 듯 / 千鈞撞回九牛
하산의 재주 본시 대적할 이 없어서 / 夏山才調木無敵
천 수의 시를 지어 왕후라도 경멸하네 / 詩成千首輕王侯
여사로 시를 지어 심오하게 달통하였는데 / 餘事聲韻通幾微
부끄럽다 내 재주 거칠어서 부질없이 이렁저렁 / 愧余魯莽空悠悠
다만 술잔 있어 즐거울 수 있으니 / 只有杯樽可爲樂
요양의 봄 술을 돈피[제일 좋은 모피(毛皮)] 갖옷으로 바꾼다 / 遼陽春酒捐貂裘
명성이 중화에 떨치는 것 어찌 나의 힘이겠는가 / 名動中華豈我力
예의의 우리 나라에 힘입었네 / 禮義每賴吾王國
태평 세월 떳떳하여 남과 북이 따로 없어 / 太平有常無南北
객창에서 너와 함께 여전히 만족하려 하네 / 客裏與爾還自得
삼가 유별시에 차운하여 중국 사신 내한 예겸을 전송하다[敬次留別韻奉送 天使倪內翰 謙
서로 만난 그날로 마음을 알아 즐겁고 / 相知卽日喜心知
이별 뒤에 서로 생각하는 것 얼마만한 세월인고 / 別後相思問幾時
학령(요동의 산)에 구름 차서 섣달 눈 쌓였는데 / 鶴嶺雲寒仍臘雪
압록강 푸른 파도 벌써 봄 자취로다 / 鴨江波綠已春姿
비단 주머니는 단지 해노(종)의 줍는 것 없을 뿐 / 錦囊只乏奚奴拾
말 술은 원래 번쾌(한 고조(漢高祖)의 신하)의 사양이 아니라 / 斗酒元非奱噌辭
천리 길 그대 보내는 오늘의 마음 / 千里送君今日意
남포(이별하는 곳을 말함)에 한 잔술로 차마 못 헤어지네 / 一杯南浦忍分離
내한 예겸의 시를 부록하다[附倪內翰韻]
해상에서 서로 만나 즉석에서 친구 되어 / 海上相逢卽故知
한가한 담소에 매양 시간 가는 줄 몰랐어라 / 燕閑談笑每移時
같은 마음은 금난계를 맺었고 / 同心好結金蘭契
서로 시를 읊으니 옥수같은 자질이 어여쁘다 / 共吟偏憐玉樹姿
감히 양웅이 글자 많이 안다 하겠는가(자신을 비유한 말) / 敢謂楊雄多識字
본래부터 자우(춘추시대 정(鄭) 나라 사람)가 수사 잘하는 줄 알았어라(상대방을 찬양하는 말) / 雅信子羽善修辭
강가에는 이별의 정 견딜 길이 없어 / 不堪別袂臨江渚
동풍에 말을 멈추어 이별을 원망한다 / 勤馬東風怨別離
최 제학 덕지 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전송하다.[送崔提學 德之 還鄕]
전원에 돌아감이 은둔의 계교 아니로세 / 歸田非隱計
나오고 드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리라 / 出處政如斯
한 나라 임금께선소광을 생각하고 / 漢主思疏廣
당 나라 조정에선 공규를 중시했네 / 唐朝重孔戣
강산이 그를 기다리는 듯 / 江山如有待
원숭이와 새도 또한 알아주네 / 猿鳥亦相知
처음에서 끝까지 의리를 다했으니 / 終始能全義
공 같은 사람 바로 나의 스승일세 / 如公我所師
최덕지(崔德之)는 본관이 전주(全州)이고, 존양당(存養堂)이라고 자호(自號)하였다. 태종(太宗) 때에 급제하여 누차 고을을 맡았었는데 가는 곳마다 명성을 쌓았다. 세종(世宗) 때 집현전 직제학(直提學)에 이르렀으며, 시로 이름이 났다. 문종(文宗) 말년에 관직을 버리고 물러가 영암(靈巖)에서 늙으려 하니, 당시 명사들이 모두 전송하는 시를 지었다. 희현당 책에 제(題)하기를,
이윤(伊尹 탕(湯) 임금을 도와 상(商) 나라를 세운 어진 신하)의 자임하는 것과 안회(공자의 수제자)의 현명함으로 / 尹之任回也賢
혹은 즐겁게 요순의 도를 즐기고 / 或囂然而樂堯舜
혹은 길게 한숨 쉬며 높고 굳은 경지를 탄식하였다 / 或喟然而歎高堅
이 같은 행동하면 역시 이 사람이 되거늘 / 有爲亦若是
내가 어찌 홀로 그렇지 아니하리 / 余何獨不然
하였다.
범옹이 두보의 시운으로 지은 시에 차운하다[次泛翁用工部韻]
지맥은 요동 경계에 이어졌고 / 地脉連遼境
강 흐름은 바다 어구에 접하였다 / 江流接海門
고기잡이와 나무꾼은 언제나 곳곳에 모여 있고 / 漁樵常頓頓
꽃과 버들은 동산을 이뤘구나 / 花柳自園園
이슬이 무거우니 붉은 꽃은 언덕에 기대었고 / 露重江欹岸
불타고 남은 곳은 푸른 풀이 무성하다 / 燒殘綠遍原
봄빛이 멀리 바라보게 하니 / 春光供遠矚
산에 나무는 점점 번성해 가는구나 / 山木漸成繁
범옹의 원시를 부록하다[附泛翁元韻]
의주는 큰 진으로 / 義州爲鉅鎭
나라 서문의 자물쇠 같아라 / 鎖鑰國西門
혹독한 추위에 봉화 오르지 않고 / 極寒無烽燧
농촌은 밭과 동산 안고 있네 / 村居按圃園
백성이 편안하여 밤에 문을 열어놓고 / 民安開夜戶
보리는 피어나서 봄의 언덕 컴컴하네 / 麥秀暗春原
나그네의 감상은 시절 따라 일어나니 / 客子感時物
꽃은 시들면서 녹음이 짙어간다 / 紅殘綠漸繁
범옹이 두보 추청(秋晴) 시의 운으로 지은 시에 차운하다[次泛翁用工部秋晴韻]
꽃에 눌려진 물은 거울 같고 / 花壓水爲鏡
가는 풀을 바람이 빗질하네 / 草纖風作梳
맑은 흥취 시절따라 일고 / 淸興因時得
그윽한 수심 술로써 제거한다 / 幽愁用酒除
삼춘은 나그네 길에 남아 있고 / 三春殘客路
한 달 지났어도 집의 편지 아직 없네 / 一月隔家書
시구마다 선생이 걸출하여 / 句句先生傑
읊을 제마다 못 따름을 부끄러워하네 / 吟吟愧不如
범옹의 원시를 부록하다 [附泛翁元韻]
객창에 도리어 일이 많아 / 客裏還多事
머리는 게을러서 한 달에 한 번 빗네 / 頭慵一月梳
산빛은 창문으로 들어오고 / 山光侵戶牖
풀빛은 뜰 위로 올라오네 / 草色上庭除
근심에 드는 술잔 이제사 익어가고 / 慣把澆愁酒
멀리 보내는 편지에 시름을 담아보네 / 憂緘寄遠沓
타향이 강 북쪽 이곳이니 / 他鄕江北是
내일은 또 어떠할꼬 / 明日更何如
범옹이 두보 중소(中宵)시의 운으로 지은 시에 차운하다[次泛翁用工部中宵韻]
지금 사람 옛날의 도를 버려 / 今人棄古道
귀하고 천한 것 가리어서 친하고 소원하구나 / 貴賤作親踈
몸은 세상에 기생하는 것임을 알았으며 / 已識身如寄
이름은 또 헛된 것을 이제사 알았도다 / 從知名又虛
성밖은 요양 길이요 / 城外遼陽路
쟁반에는 패수의 생선일세 / 盤中浿水魚
창자를 채울 것이 무엇이 있나 / 撑腸何所有
가득 쌓인 다섯 수레의 책이네 / 磊落五車書
범옹의 원시를 부록하다[附泛翁元韻]
의주진 1천 집에 / 義州鎭千戶
말도 타고 소도 잘 쓴다 / 騎馬能射疏
풍월은 읊는 중에 지치고 / 風月吟中困
강산은 눈 아래에 비었구나 / 江山眼底虛
단지 잔에 술 있는 것 알 뿐이요 / 但知杯有酒
먹는데 생선 없는 것 탄식 않노라 / 不歎食無魚
끝내는 활과 칼을 쓰게 되니 / 畢竟趨弓劍
지금까지 글을 읽은 것이 잘못이네 / 從來誤讀書
범옹이 두보 시의 운으로 지은 시에 차운하다[次泛翁用工部韻]
여관 생활 한가하여 담소함이 말숙하나 / 旅館乘閑笑語淸
오래 묵게 되니 의주성이 싫증나네 / 留連猶厭義州城 /
꽃 지니 봄 가는 것이 언제나 애석하고 / 花殘每惜春光老
구름 일어나니 나그네 시름 금할 길 없다 / 雲起難禁客恨生
돌아갈 길은 산이 깊어 궁벽한 곳으로 다니고 / 去路山深從地僻
돌아갈 날 임박하니 하늘 맑기 소원일세 / 歸心日迫願天晴
동서남북 다니면서 무엇을 하는가 / 東西南北何爲者
뜬 세상 뜬 인생이라 이름도 소용없네 / 已識浮生不用名
범옹의 원시를 부록하다[附泛翁元韻]
긴 압록강 객창에도 맑았는데 / 鴨綠長江客裏淸
나팔 소리 비장하게 변방의 성을 흔들도다 / 角聲悲壯撼邊城
취중에 그윽한 흥은 춘삼월에 저물었고 / 醉中幽興三春暮
보이는 곳 높은 구름 만리에 솟아난다 / 眼底高雲萬里生
오늘은 채찍 들고 곧장 가지마는 / 今日一鞭直去住
내일 아침은 여덟째 역에서 맑고 흐림 기다린다 / 明朝八站候陰晴
재주 없어서 스스로 헛되이 늙은 것만을 한탄하며 / 才疎自恨年空老
요동을 향하여 이름 말하기도 부끄러워하노라 / 羞向遼東說姓名
두보 시운을 써서 범옹과 자후에게 보이다.[用工部韻示泛翁子厚]
요양으로 돌아갈 길 바라보니 아득한데 / 遼陽歸路望中遙
가는 말에 채찍 치며 성스런 조정 기원한다 / 策馬行行願聖朝
흐르는 물결이 번쩍이는데 짧은 젓대 불고 / 流水波飜吹短篴
먼 하늘에 처절한 저 소리는 구슬픈 퉁소로다 / 遠天聲切動悲簫
다행히 이 시대 세상이 통일됨을 만났으니 / 幸逢今日車同軌
고려 사람 부질없이 다리 놓은 것 웃었노라 / 閑笑麗人浪作橋
이곳은 삼한의 서북 끝 / 此是三韓西北極
백성들 나무하며 희희낙락 즐거워함을 기쁘게 여긴다 / 喜看糄戶樂蘇樵
범옹이 차운한 시를 부록하다[附泛翁次韻]
굽이진 압록강 하늘같이 아득하고 / 鴨江縈紆天與遙
동쪽 향하고 백 번 꺾여 바다로 향하는 듯하여라 / 向東百折若宗朝
봄바람 한가한 정취 방초에 둘려 있고 / 春風閑趣回芳草
먼 나그네 시름을 퉁소에 의지한다 / 遠客歸心寄短簫
오늘은 외로운 배 계수나무 삿대 저어가고 / 今日孤舟遙桂棹
초봄에는 한 죽장으로 얼음 다리 밟았었네 / 初春一篳踏氷橋
장하도다, 천연적으로 참호되어 동북을 나눴는데 / 壯哉天塹分東北
강가의 마을 노래 소리는 해 저문 나무꾼일레 / 江上村歌日暮樵
범옹이 서울 제공들의 송별시 운으로 지은 시에 차운하다[次泛翁用京洛諸公送行韻]
나의 학문이 그대처럼 정밀치 못함이 부끄러운데 / 慙余學未似君精
요양의 만리 길을 서로 같이 동행하네 / 同作遼陽萬里行
침대 위에서 오랑캐 장사치 우리와 무릎 같이하고 / 榻上賈胡連我膝
하늘 끝 나그네 인정을 애석해 하네 / 天涯遠客惜人情
꿈속에서 가는 고향 참으로 가는 것 못 되고 / 夢中鄕國非眞到
봄 지난 동산 숲은 푸르기만 하구나 / 春後園林只是靑
시구마다 짓는 것이 모두 백설이라 / 句句吟成皆白雪
화답하려 하니 내 어찌 수심을 면할쏘냐 / 和來能免百愁生
범옹의 원시를 부록하다[附泛翁元韻]
치ㆍ설ㆍ아ㆍ순의 음이 아직 정밀치 못한데 / 齒舌牙唇尙未精
중원에 쓸데없이 질문하러 가는구나 / 中原虛作問奇行
삼경에 새 달은 고향 꿈꾸게 하고 / 三更新月生鄕夢
한 침대 훈훈한 바람 나그네 마음 움직이네 / 一榻薰風動客情
먼지 이는 요동 하늘 아득히 멀었고 / 塵起遼天迷遠大
구름 걷힌 골령엔 푸른빛이 드러난다 / 雲收骨嶺露餘靑
소매 안의 여러 공의 지은 시 때때로 내어 보며 / 袖中時見諸公子
되는 대로 읊어보니 이별 시름 솟아난다 / 信口吟來別恨生
범옹이 두보의 시운으로 지은 시에 차운하다[次泛翁用工部韻]
이 몸은 붙어 사는 것 같을 뿐 / 此身如寄耳
운명이라면 스스로 편안할 것을 / 若命當自安
마음이 이미 이러하니 / 寸心已如此
생사를 그 뉘가 어렵게 하리오 / 生死誰避難
인생에 누가 근심 없으리 / 人生孰無憂
근심은 술만이 풀 수 있네 / 憂來酒可寬
예림에 이미 말 달렸고 / 藝林曾掉鞅
학해에서 이미 파도도 보았노라 / 學海嘗觀瀾
농사짓지 않아도 아내 배곯지 않고 / 不耕妻不飢
누에치지 않아도 아이 춥지 않네 / 不蚕兒不寒
평생의 뜻 사방에 있으니 / 平生志弧矢
가는 곳마다 술상 있구나 / 到處有杯盤
다만 팽택(도연명)같이 취하기 바랄 뿐 / 但成彭澤醉
어찌 문원의 마른 것 걱정하리 / 肯患文園乾
술 깨어 비로소 눈뜨니 / 酒醒始張目
노복(奴僕)이 밥먹기 권하네 / 僕夫勸飯飡
범옹의 원시를 부록하다[附泛翁元韻]
국사가 나라 일을 견고하게 아니할 수 없는데 / 王事固靡鹽
소신이 어찌 편안할 것 생각하리 / 小臣敢懷安
작은 몸을 이미 맡겼으니 / 日已委微質
눈앞에 험하고 어려운 것 없다 / 眼前無險難
고향집은 동남쪽으로 멀고 / 故業東南遠
요동 하늘은 서북으로 넓혀 있다 / 遼天西北寬
속음의 정ㆍ변도 모르면서 / 俗音昧正變
재주 생각 않고 거센 파도 돌리려 하네 / 不量回驚瀾
사람만 만나면 빈번히 물었어도 / 逢人煩問訊
흉내 내려니 이빨만 차가워진다 / 欲效牙齒寒
덮어두고 말하지 말자 / 置之不必道
다시 술잔이나 대할 것을 / 且復臨杯盤
옷은 취하면 젖고 / 衣裳醉時濕
목구멍은 깨면 마르는 것 / 咽喉醒後乾
멀리 유람하니 쉬 감상이 일어나네 / 遠遊易感人
언제 풍찬(야숙(野宿)하는 것)을 그칠 건가 / 何日休風飡
[주D-001]조계박압지대업(操鷄搏鴨之大業) : 계림(鷄林) 즉 신라를 얻고 압록강까지를 정복하여 삼한을 통일했다는 말
[주D-002]한결같은 마음을 …… 맞았어라[允協於三千] : 주왕(紂王) 수(受)는 신하가 매우 많았으나 마음이 각기 다르고, 무왕(武王)은 신하가 단 3천 명이었지만 오로지 한마음이었다는 뜻임. 《서경 태서(泰誓)에 나오는 말임》
[주D-003]구오(九五)의 때를 얻으니 : 비룡재천(飛龍在天)이라는 말이 있는데 천자가 등극하는 것을 말한다.《易 乾卦》
[주D-004]임금의 덕이 …… 있는가 : 해가 뜨면 심고 날이 지면 쉬고, 우물은 파서 마시고 밭은 갈아 먹는데, 제왕이 우리들에게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라는 〈격양가〉의 구절로 태평성대를 말함.
[주D-005]매번 국을 …… 추모 : 요임금이 죽은 뒤에 순(舜)이 국을 대하여도 요임금이 보이고 담을 대하여도 요임금이 보였다는 고사.
[주D-006]대려(帶礪)의 맹세 : 공신을 책봉하고 작위를 주며 맹서하기를, “황하의 물이 띠처럼 줄고, 태산이 숫돌만큼 낮아지도록 나라를 영구히 보존하여 먼 후손까지 이르게 한다.” 하였다.
[주D-007]개유(蓋帷) : 떨어진 휘장을 버리지 않는 것은 말을 싸서 묻기 위함이요, 떨어진 수레 덮개를 버리지 않는 것은 개를 싸서 묻어 주기 위한 것이다. 《禮記 檀弓》에 나오는 말임.
[주D-008]썩은 고삐[朽索] : ‘내가 만백성을 대하니 썩은 고삐로 여섯 말[馬]을 모는 듯 두려움을 느끼니 사람 위에 앉은 사람이 어찌 조심하지 않을 것인가?’ 하였다. 《서경 오자지가(五子之歌》에 나오는 구절.
[주D-009]방성(房星) : 28수(宿)중의 하나인데 세상의 말을 주관하는 별자리이다.
[주D-010]하늘을 두려워 …… 보호하는 :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섬기는 것을 낙천(樂天)하는 것이며,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은 하늘을 두려워하는[畏天] 것이다. 낙천하는 삶은 천하를 보호하며, 하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그 나라를 보호하는 것이다. 《맹자》에 나옴.
[주D-011]3백 11편 : 《시경》에 모여 있는 시가 모두 3백 5편으로 여기서는 시를 가리킴.
[주D-012]사방을 경영할 장한 뜻 : 고대 중국에서 남자를 낳으면 뽕나무활과 쑥대살로 천지(天地) 사방을 쏘아서 성공을 기원하였다고 함. 남자가 큰 뜻을 품고 웅비(雄飛)하여 성공하라는 뜻.
[주D-013]금난계(金蘭契) : 두 사람의 마음이 같으면 그 날카로움이 금도 끊을 수 있고, 한 마음에서 나오는 말은 그 냄새가 마치 난초같이 향기롭다 한다.
[주D-014]소광(疏廣) : 한(漢) 나라 난릉(蘭陵) 사람으로 자는 중옹(仲翁), 〈춘추전(春秋傳)〉에 밝았다. 선제(宣帝) 때에 박사(博士)가 되었다가 다음에 태자태부(太子太夫)가 되어 5년 뒤에 늙어서 사퇴하였다. 선제와 태자가 많은 물건을 주었으나 모두 친우들에게 나누어주고, “사람이 현명하고 재물이 많으면 그 뜻을 손상시키고, 어리석은데 재물이 많으면 잘못을 더욱 많이 저지르게 된다.”하고, 자손들에게 재물을 남겨 주지 않았다.
[주D-015]공규(孔戣) : 당(唐) 나라 목종(穆宗) 때 사람으로 자는 군엄(君嚴)이며 벼슬은 예부상서를 지냈다. 한유(韓愈)가 소(疏)하기를, “조정에 공규(孔戣)와 같은 사람이 불과 2,3명밖에 없다.”고 칭찬한 사람이다.
[주D-016]시구마다 …… 백설(白雪)이라 : 예전 초(楚) 나라 서울 영(郢)에서 어떤 사람이 노래를 잘 부르는데 처음에는 보통 유행가인 하리(下里) 파인(巴人) 같은 것을 불렀더니, 같이 합창하여 부르는 자가 수백 명이 있었다. 그러나 수준이 높은 노래를 부르니 따라서 합창하는 자 10여명에 지나지 않았고 양춘백설(陽春白雪)이라는 최고의 노래를 부를 적에는 따라 부르는 자가 아주 없었다고 한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주D-002]한결같은 마음을 …… 맞았어라[允協於三千] : 주왕(紂王) 수(受)는 신하가 매우 많았으나 마음이 각기 다르고, 무왕(武王)은 신하가 단 3천 명이었지만 오로지 한마음이었다는 뜻임. 《서경 태서(泰誓)에 나오는 말임》
[주D-003]구오(九五)의 때를 얻으니 : 비룡재천(飛龍在天)이라는 말이 있는데 천자가 등극하는 것을 말한다.《易 乾卦》
[주D-004]임금의 덕이 …… 있는가 : 해가 뜨면 심고 날이 지면 쉬고, 우물은 파서 마시고 밭은 갈아 먹는데, 제왕이 우리들에게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라는 〈격양가〉의 구절로 태평성대를 말함.
[주D-005]매번 국을 …… 추모 : 요임금이 죽은 뒤에 순(舜)이 국을 대하여도 요임금이 보이고 담을 대하여도 요임금이 보였다는 고사.
[주D-006]대려(帶礪)의 맹세 : 공신을 책봉하고 작위를 주며 맹서하기를, “황하의 물이 띠처럼 줄고, 태산이 숫돌만큼 낮아지도록 나라를 영구히 보존하여 먼 후손까지 이르게 한다.” 하였다.
[주D-007]개유(蓋帷) : 떨어진 휘장을 버리지 않는 것은 말을 싸서 묻기 위함이요, 떨어진 수레 덮개를 버리지 않는 것은 개를 싸서 묻어 주기 위한 것이다. 《禮記 檀弓》에 나오는 말임.
[주D-008]썩은 고삐[朽索] : ‘내가 만백성을 대하니 썩은 고삐로 여섯 말[馬]을 모는 듯 두려움을 느끼니 사람 위에 앉은 사람이 어찌 조심하지 않을 것인가?’ 하였다. 《서경 오자지가(五子之歌》에 나오는 구절.
[주D-009]방성(房星) : 28수(宿)중의 하나인데 세상의 말을 주관하는 별자리이다.
[주D-010]하늘을 두려워 …… 보호하는 :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섬기는 것을 낙천(樂天)하는 것이며,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은 하늘을 두려워하는[畏天] 것이다. 낙천하는 삶은 천하를 보호하며, 하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그 나라를 보호하는 것이다. 《맹자》에 나옴.
[주D-011]3백 11편 : 《시경》에 모여 있는 시가 모두 3백 5편으로 여기서는 시를 가리킴.
[주D-012]사방을 경영할 장한 뜻 : 고대 중국에서 남자를 낳으면 뽕나무활과 쑥대살로 천지(天地) 사방을 쏘아서 성공을 기원하였다고 함. 남자가 큰 뜻을 품고 웅비(雄飛)하여 성공하라는 뜻.
[주D-013]금난계(金蘭契) : 두 사람의 마음이 같으면 그 날카로움이 금도 끊을 수 있고, 한 마음에서 나오는 말은 그 냄새가 마치 난초같이 향기롭다 한다.
[주D-014]소광(疏廣) : 한(漢) 나라 난릉(蘭陵) 사람으로 자는 중옹(仲翁), 〈춘추전(春秋傳)〉에 밝았다. 선제(宣帝) 때에 박사(博士)가 되었다가 다음에 태자태부(太子太夫)가 되어 5년 뒤에 늙어서 사퇴하였다. 선제와 태자가 많은 물건을 주었으나 모두 친우들에게 나누어주고, “사람이 현명하고 재물이 많으면 그 뜻을 손상시키고, 어리석은데 재물이 많으면 잘못을 더욱 많이 저지르게 된다.”하고, 자손들에게 재물을 남겨 주지 않았다.
[주D-015]공규(孔戣) : 당(唐) 나라 목종(穆宗) 때 사람으로 자는 군엄(君嚴)이며 벼슬은 예부상서를 지냈다. 한유(韓愈)가 소(疏)하기를, “조정에 공규(孔戣)와 같은 사람이 불과 2,3명밖에 없다.”고 칭찬한 사람이다.
[주D-016]시구마다 …… 백설(白雪)이라 : 예전 초(楚) 나라 서울 영(郢)에서 어떤 사람이 노래를 잘 부르는데 처음에는 보통 유행가인 하리(下里) 파인(巴人) 같은 것을 불렀더니, 같이 합창하여 부르는 자가 수백 명이 있었다. 그러나 수준이 높은 노래를 부르니 따라서 합창하는 자 10여명에 지나지 않았고 양춘백설(陽春白雪)이라는 최고의 노래를 부를 적에는 따라 부르는 자가 아주 없었다고 한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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