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봉양하기 위해 가는 최 주부를 전송한 시의 서문[送崔注簿歸養詩序] |
내 친구 최후(崔侯) 지보(智甫)는 성실한 사람이다. 서로 알기는 계축년 봄부터였다. 그때 최후의 아버님께서는 서울 집에 계셨는데 최후는 삼가 아침저녁으로 문안을 드리며, 봉양에 있어 항상 만족하지 못한 듯이 걱정하였다. 나는 오가며 눈여겨 보고 최후에게 미치지 못하겠다고 여겨 이로부터 더욱 깊이 사귀게 되었다.이제 그 아버님께서 양지(陽智)의 별장으로 내려가신다 하기에, 나는 최후에게, “어째서 본집으로 모셔다 봉양하지 않는가.” 하였더니, 최후는 쓸쓸히 대답하기를, “아버님께서 그곳에 계셔야 편안하다고 하시니, 감히 어길 수 없는 일이 아니겠소.” 하고, 이내 임금께 고하여 그 벼슬을 그만두고 처자를 거느리고 남쪽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전(前) 예문관 직제학 최 선생(崔先生)이 먼저 사운시(四韻詩)를 지어, 그 걸음을 두고 노래하였기에 나는 머리 숙여 재배하고 삼가 서문을 쓴다.
우리 나라 역대 임금께서 모두 효도로 나라를 다스려서, 무릇 조관(朝官)들에게 그 어버이가 멀리 떨어져 있고 나이 늙었으면, 돌아가 봉양하겠다는 청을 들어 주어 그 어버이 된 자는 봉양을 받고, 자식은 그 정성을 다하게 하였으니, 위에서 노인을 잘 대접하여 효도를 일으킨 것이기에 은혜가 지극히 거룩하다.그러나 자식된 자는 은덕과 의리를 공경히 받들어 제 마음의 정성을 불러일으켜 돌아가 봉양할 수 있는가 없는가에 달렸을 뿐이다. 나는 사대부가 관을 높이 쓰고 홀(笏)을 바로잡고 느린 걸음으로 점잖게 걸어, 얼굴에는 아무 근심도 없는 듯이 만족하다가, 하루아침에 망극한 변고를 듣고 발을 굴러 통한(痛恨)하며, 비로소 물러가 봉양하지 못한 후회를 하는 자가 많음을 보았으니, 슬픈 일이다.어버이가 계실 적에 돌아가 봉양할 일이지, 누가 금지해서 못했는가, 누가 말려서 못했는가. 이제 후회한들 무엇하겠는가. 사람이라면 누군들 돌아가 봉양하는 것이 좋은 일이고, 그렇지 못한 것이 좋지 못한 일인 줄을 모르겠는가마는, 금하지도 않았는데 하지 않았으며 말리지도 않았는데 가지 않은 것은, 반드시 벼슬을 그 마음속에 사모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식으로서 그 벼슬을 사모함이 없다면 효도라 할 수 있고 어질다 할 수 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누가 최후(崔侯)의 가는 것을 보고 감히 따를 수 없다고 말하며, 또 어찌 나로 하여금 공경하는 마음을 이같이 일게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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