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페인자료 ▒

예술과 역사의 도시 바로셀로나

천하한량 2007. 8. 7. 19:18

예술과 역사의 도시 바로셀로나

 

림픽 주경기장을 조금 지나
항구로 내려가는 길에 전망대라 볼 수 있는 작은 공원이 있었다.
그 곳에선 바로셀로나의 구시가지와 항구 그리고
타원형의 먼 지중해까지 한 눈에 들어왔다.
반짝이는 물빛은 인어의 비늘처럼 눈이 부셨다.

 

공원에는 수비라치(Josep Maria Subirachs, 1927~)의 조각품이 있었으며,

이후 바로셀로나의 여러 곳에서 그의 작품을 보았다.
그는 가우디(Antonio Gaudi y Cornet, 1852~1926)가 사망한 이듬해
분신처럼 태어났으며(9개월 후), 가우디가 최후까지 혼신을 다해 짓던
성 가족 성당의 나머지 조각을 이어가고 있다.

 

사실, 바로셀로나하면 가우디를 연상한다고 하지만
수비라치 또한 스페인을 대표하는 예술가로서
그의 창작 활동은 국‧내외적으로 왕성한 편이다.
언젠가 서울 잠실의 올림픽 공원에서 그의 작품을 우연히 발견하고

무척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

 

시가 시작된다는 부두 앞 광장으로 내려왔다.
크고 작은 요트들이 정박되어있는 내항은 잔잔했고,
바다가 얼마나 맑던지 물고기가 유영(遊泳)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이곳은 1492.10.12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1451~1506)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귀환한 항구이기도 하다.

 

이곳에도 마드리드에서 본 것과 같이
아메리카 대륙을 향해 손짓하는 ‘콜럼버스 기념탑’이 있었다.
그렇지만 콜럼버스에 대한 평가는 5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신대륙 발견이라는 업적과 인류 역사상 가장 큰 학살을 촉발한 침략자라는
평가가 나누어지고 있다.

 

탈리아 밀라노 대성당의 영향을 받아 700여 년 동안 지어졌다는
바로셀로나 대성당은 벽돌을 쌓아 올린 대칭형의 구조로
고딕과 까딸루냐 양식이 적절히 조화를 이룬 건물이었다.

성당의 바닥에는 성인의 유체가 모셔진 무덤이 있어 섬 짓 놀라기 하였지만,

화려한 스테인 글라스와 고풍스러운 벽화는 아름다웠다.

 

콜럼버스가 이사벨 여왕을 알현했던 ‘왕의 광장’은
대성당 정면 왼쪽 안에 있는 작은 광장으로
역사박물관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주변에는 왕궁과 동시에 세워진 예배당과
'마틴 왕의 망루'와 '아라곤 왕국 문서관'이 있었다.

 

그 밖에도 2100년 전 로마시대 시저의 양아들인 아우쿠스 황제가 쌓았다는

로마의 성벽과 기독교인을 가두었다는 감옥이 골격 그대로 남아있어

세월의 무상함을 역사와 함께 느껴보았다..
특히 대주교의 사택이 시립역사연구소로 사용하고 있어 놀랐다.

(계속)

 

 * 수비라치 조각이 있는 공원

 

* 조각가 수비라치, 대표작으로는 마드리드 상징탑, 바로셀로나 시청 정면 조각 등이 있다.

 

 * 수비라치의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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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콜럼버스 기념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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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의 광장’과 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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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로셀로나 대성당과 내부의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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