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페인자료 ▒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천하한량 2007. 8. 7. 19:11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르도바에서 그라나다까지는 소형 버스로 3시간 30분이 소요되었다.
언제부터인지 차내에는 침묵이 흐르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모두 창 밖을 보고 있었다.
나지막한 언덕마다 옹기종기 앉아있는 힌색의 작은 집들…
스피커에선 타레가의 애절한 사랑을 담은 세레나데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Recuerdos de la Alhambra)’이 반복되어 흘렀다.

 

우리는 고불고불한 고메레스 언덕길을 지나
알함브라 궁전(Alhambra-‘붉은 성’이라는 뜻)’이 있는 사비카 언덕으로 올라갔다.
싸이프러스(불멸을 상징하는 나무) 숲을 끼고 좌측으로 난 흙길을 잠시 걷자
말발굽 모양을 한 ‘정의의 문(‘재판의 문’이라고도 함)’이 나타났다.
처음 본 궁전의 모습은 화려한 모습이 아니었다.

 

궁전의 벽면은 '알함브라'라는 이름처럼 온통 담홍색 빛이 흘러 내렸다.
궁전에서 제일 높은 ‘벨라의 탑’은 알카사바(Alcazaba)의 요새를 지나야했다.
요새는 건물터와 벽이 있던 형태만 복원된 상태로 미로(迷路)와 같았다.
두 사람이 겨우 교차할 정도의 좁은 달팽이 계단을 올라 벨라의 탑 망루에 섰다.
속이 후련할 정도로 주변 경관이 시원하였다.

 

궁전의 동편으론 일 년 내내 눈이 녹지 않는
시에라네바다 산맥(Sierra Nevada)의 아름다운 설선(雪線)이 이어지고,
서편에는 비옥한 들판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마침 오후였던지라 태양빛을 고스란히 받고 있는 맞은편(북쪽)
알바이신(Albaicin) 지역은 아랍풍의 집들이 하얀 속살을 내비치고 있었다.

 

궁전의 중앙에는 16세기 스페인의 황금시대를 이끌었던
카를로스 5세(이사벨 여왕의 손자)가 지은 르네상스 양식의 궁전이 있었다.
우리는 이 주변에서 카사레알(Casa Real, ‘임금의 집’ 이란 뜻)에 들어가는 순서를 기다렸다.
알함브라 궁전의 꽃이라고 하는 카사레알은 198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뒤
하루 입장객을 9,800여명으로 제한하고 시간대 별로 적정 인원만 입장시켰다.

 

‘대사(大使)의 방’의 아치형 창과 황금빛 벽면은
온통 현란한 아라베스크 문양이 중첩되어 이어졌고,
사이사이마다 아랍어로 된 시(詩)가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었다.
마치 보석 덩어리에 조각을 한 듯이…
게다가 창틀을 통과해 바닥에 떨어진 그림자의 문양까지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밝음과 어두움,
빛과 그림자가 이루는 대조성은
마치 검은 차도르 사이로 아랍여인의 얼굴을 훔쳐보는 듯한 황홀한 세계였다.

 

후궁들로 가득한 하렘(harem-보통 궁궐 내의 후궁이나 가정의 내실을 말함)이 있던
124개 대리석기둥이 있던 ‘사자의 정원’이 또한 그랬고,
우주를 가져다 심어 놓은 듯한 ‘아벤세라테스의 방’이 그랬고,
섬세한 종유석 장식으로 유명한 ‘두 자매의 방’이 그랬고,
잔잔한 물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서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한다는 사각 정원, ‘파티오’가 그랬다.

 

1200년대 중반 나스르(무어)왕조에 의해 건축된 알함브라 궁전은
260년 만인 1482년에 완공되었다.
당시 이슬람 왕이었던 모하메드 13세는 이 궁전을 완공하면서,
“사랑하는 백성들이여! 너희가 살아서 지상의 천국을 보게 될 것이다.”
라고 선언했다고 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완공된 지 10년 만인 1492년 3월,
카스티야의 이사벨 여왕과 아라곤의 페르디난드 두 왕에게
아무런 저항도 못해보고 넘겨지게 되었다.

 

궁전의 마지막 주인 보압딜 왕은 기독교도에 쫓겨 차디찬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넘으면서,
“스페인을 잃은 것은 아깝지 않지만 알함브라를 다시 볼 수 없는 것이 원통하구나!”
라고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래서 훗날 그가 넘던 언덕을 ‘통한의 언덕’으로 불려졌으며,
궁전의 아름다운 분수와 연못의 물은 ‘무어인의 눈물’이란 별명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모든 것엔 삶과 죽음,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듯이
이곳의 영화(榮華)도 18세기엔 한때 황폐되었다가 다행히 19세기 이후 복원되었다.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 정원(Jardines Bajos)을 가로질러 아름답게 조경된 회양목 숲 속을 산책하였다.
어디서 청아(淸雅)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비 덩굴 사이로 높낮이와 음폭이 다양한 분수가 떨어지고 있었다.
타레가는 이처럼 아름다운 궁전의 달빛 창가에 기대여
콘차 부인(그의 제자)과 함께 지냈던 그날 밤을 생각하며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작곡했을 것이다.

 

어느덧 궁전 넘어 서편 하늘 끝이 산화(散華)하는 석양으로 눈이 부셨다.
이제 곧 아름다운 궁전은

가슴에 묻어 두었던 옛사랑을…
깊이 간직했던 애절한 마음을…
빛나는 달빛에 다시 고백하게 될 것이다.

(계속)

 

 

 

 

 

 

 

 

 

 

 

 

 .

 * 사각 정원인 ‘파티오’(바로 위 사진은  EnCyber 인용)

 

  이영혜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으로 한 때 이슬람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컸던 적이 있었다.

투우와 정열의 나라 스페인도 한때는 이슬람 지배하에 놓여 있었다.

특히 스페인의 남부 도시 '그라나다'는 사라센(이슬람) 제국의 아름다운 유적들이 남아있는 곳이다.

그라나다의 시에라 네바다 산을 배경으로 구릉 위에 우뚝 서있는 알함브라 궁전.

13세기 경 나스르 왕조의 무하마드 1세 알 갈리브가 축조를 시작하여

그 후 몇 대를 걸쳐 완성된 알함브라 궁전은

이슬람 문화권에서 인도의 타지마할 궁전과 함께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손꼽힌다.

아라비아어로 '빨간 도시 - Red City'라는 뜻을 지닌 알함브라 궁전은

대리석으로 지은 독특한 건축 양식과 내부 장식이 너무도 인상적인 곳이다.

8세기 경부터 스페인 전역을 지배하던 무어인(이슬람 교도)들은 15세기에 이르러

그들의 마지막 보루였던 그라나다를 내놓을 때까지 도시 곳곳에 이슬람 문화를 심어 놓았다.

마치 꿈의 궁전을 방불케 하는 알함브라 궁전은 분수를 중앙에 두고 기둥으로 둘러쳐진 회랑과
이슬람을 상징하는 아라베스크 문양의 천장과 벽면등 정교하면서도
화려하게 장식된 건축 양식은 이슬람 건축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알함브라 궁전은 아름다운 건축미로도 유명하지만 결정적으로 그 이름을 떨치게 된 것은
타레가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 Recuerdos de la Alhambra' 이라는 명곡 때문이다.
스페인의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인 프란치스코 타레가(1852-1909)는

그의 제자였던 콘차 부인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거절당하고 만다.
실연의 아픔을 잊기 위해 타레가는 여행을 떠났다가 알함브라 궁전을 찾게 되는데..

그곳의 아름다움에 도취된 타레가는 지난 사랑의 아픔을 아름다운 기타 선율에 옮겨놓는다.

이 곡의 매력은 뭐니뭐니 해도 '트레몰로'라는 화려한 기타 주법에 있다.

이 주법은 우수에 찬 A minor의 멜로디와 함께 이 곡을 명곡 반열에 올려놓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A-A-B 형식을 가진 이 곡의 후반부는 A minor에서 A major로 조바꿈되면서 분위기가 화사하게 밝아진다.
마지막 코다 부분은 지난 추억을 회고하는듯 가슴깊이 여운을 남기며 끝을 맺는다.

'기타의 사라사테'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기타 연주에 뛰어났던 타레가는

스페인 기타 음악을 이끈 음악가로 클래식 기타의 테크닉과 레퍼토리를 넓힌 공로를 인정받아

'근대 기타의 아버지'라고 불리운다.
그는 알함브라 극장에서 첫 리사이틀을 가졌으며 마드리드 왕립음악원의 교수를 역임했다.

그의 제자 중에는 20세기 최고의 기타리스트로 평가 받는 안드레스 세고비아도 있다.

"기타는 작은 오케스트라"라고 추켜 세웠던 베토벤.
가난 때문에 피아노가 없어 기타로 작곡을 했던 슈베르트.
바이올린의 귀재였지만 기타 연주에도 탁월한 재능을 보였던 파가니니.
그들 모두 기타를 사랑했다.


세고비아는

 "기타의 소리가 아름다운 이유는 그 안에 부드럽고 설득력 있는 목소리가 담겨있기 때문인데,
다른 악기에선 이러한 시적인 목소리를 찾을 수 없다."

고 말했다.  기타 선율에 실린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지난 사랑을 되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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