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은자료실 ▒

목은 이색(牧隱 李穡)선생의 영정(금남사(錦南寺)

천하한량 2006. 12. 8. 00:31
                  금남사(錦南寺)에 목은 이색(牧隱 李穡)선생의 영정

 

 

 

 

 

종    목 시도유형문화재 
제232호 (하동군)
명     칭 목은이색선생영정(牧隱李穡先生影幀)
분     류
수량/면적 1점
지 정 일 1983.08.12
소 재 지 경남 하동군  청암면 중이리
시     대
소 유 자 금남사
관 리 자 금남사
상 세 문 의 경상남도 하동군 문화관광과 055-880-2364
설     명 고려 후기의 충신이자 성리학자인 목은 이색(1328∼1396) 선생의 초상화로, 가로 60㎝, 세로 120㎝ 크기의 엷은 채색화이다.

이색은 삼은(三隱) 중 한 사람으로, 14세에 성균시에 합격하였고, 공민왕 16년(1367) 성균관대사성이 되었다. 학문과 불교에 대한 조예가 깊었고 정치에도 큰 발자취를 남겼다.

화폭 왼쪽 윗부분에 조선 태종 4년(1404)에 제작된 이래 영조 42년(1766)에 다시 그렸다는 기록을 적어 두고, 오른쪽 위쪽으로는 선생을 찬양한 글을 기록해 놓았다.

조선 전기의 초상화 기법이 잘 나타난 있는 작품으로, 강원도 원주 용화산 고자암에 보존하고 있던 것을, 광무 10년(1906) 중이리 소재의 경모당으로 옮겼다가 그곳이 하동댐 건설로 수몰됨에 따라 이곳 금남사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청암면 평촌리 금남사(錦南寺)에 목은 이색(牧隱 李穡)선생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이색선생은 고려말의 성리학자이며 삼은(三隱)의 한사람으로서 14세에 성균시(成均試)에 합격, 중서(中瑞) 사전부(司典簿)로 원에 있던 부친으로 인해 원의 국자감(國子監) 생원이 되었고 공민왕 16년에는 성균대사성이 되었다. 정몽주(鄭夢周), 김구용(金九容)등과 명륜당(明倫堂)에서 학문을 강론하자 이에 정주(程朱)에서 성리학(性理學)이 처음으로 일어났다. 문하에 권근, 김종직, 변계량 등을 배출하여 조선 성리학의 주류를 이루게 하였으며, 한편 불교에 대한 조예도 깊어 고려말기의 학문과 정치에 거족을 남긴 분이다. 시호는 문정공(文靖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