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웅이순신 ▒

1594년 9월 선조 27년 갑오년 (충무공 이순신 50세)

천하한량 2007. 5. 5. 17:23

 

 

 

 

 

9월1일[병자/10월14일] 맑다. 순무사 서성의 공문과 장계 초고가 들어왔다.
9월2일[정축/10월15일] 맑다. 아내의 병이 좀 나아졌으나, 원기가 몹시 약하다고 하니 염려스럽다.
9월3일[무인/10월16일] 비오다. 새벽에 임금의 밀지가 들어왔다. "수군과 육군의 여러 장병들이 팔장만 끼고 서로 바라보면서 한가지도 계책을 세워 적을 치는 일이 없다"고 하였다. 세 해 동안이나 바다에 나와 있는 그럴 리가 만무하다. 여러 장수들과 맹세하여 죽음으로써 원수를 갚을 뜻을 결심하고 나날을 보내지마는, 적이 험고한 곳에 웅거하여 있으니 경솔히 나아가 칠 수도 없다. 하물며 나를 알고 적을 알아야만 백번 싸워도 위태하지 않다고 하지 않았던가! 초저녁에 촛불을 밝히고 홀로 앉아 스스로 생각하니 나라일은 어지럽건만 안으로 건질 길이 없으니 이를 어찌하랴! 마침 흥양현감이 내가 혼자 앉아 있음을 알고 들어와서 자정까지 이야기하였다.
9월4일[기묘/10월17일] 맑다. 경상수사 원균이 와서 이야기했다. 소비포권관ㆍ여도만호가 들어왔다.
9월5일[경진/10월18일] 맑다. 충청수사가 들어왔다.
9월6일[신사/10월19일] 맑고 바람이 잔잔하다. 충청수사ㆍ우후ㆍ마량첨사와 함께 활을 쏘았다. 저물녘에 들으니 "김경로가 우도(右道)에 이르렀다"고 한다.
9월7일[임오/10월20일] 맑다. 순천부사의 편지를 보니, "좌의정(윤두수)과 순찰사(홍세공)가 10일께에 본부로 온다"고 했다.
9월8일[계미/10월21일] 맑다. 장층부사(황세득)를 헌관(獻官)으로 삼고, 흥양현감(배흥립)을 전사(典祀)로 삼아서 내일 둑제를 지내려고 입재(入齎)시키었다. 첨지 김경로가 왔다.
9월9일[갑신/10월22일] 맑다. 여러 장수들이 활을 쏘았다. 삼도가 아울러 모였는데, 원균 수사는 병으로 오지 않았다. 첨지 김경로도 같이 쏘았다.
9월10일[을유/10월23일] 맑고 바람도 잔잔하다. 사도첨사가 활쏘기 대회를 열었는데, 우수사도 모였다. 김경숙이 돌아갔다.
9월11일[병술/10월24일] 맑다. 공무를 보고, 남평의 색리와 순천의 격군으로서 세번이나 양식을 훔친 자를 처형했다. 충청수사가 와서 봤다.
9월12일[정해/10월25일] 맑다. 조방장 정응운의 편지에 답장했다. 우수사ㆍ충청수사가 함께 왔다.
9월13일[무자/10월26일] 맑고 따뜻하다. 조도어사 윤경립의 장계 도 통을 보니, 하나는 "진도군수를 파면해 달라"는 것이고, 하나는 "수륙 양군이 서로 침해하지 말라"는 것과 "수렬들을 전쟁에 보내지 말라"는 것이니, 그 뜻은 자못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저녁에 하천수가 장계 회답과 홍패(과거 합격자 명단) 아흔 일곱장을 가지고 왔다. 영의정 편지도 왔다.
9월14일[기축/10월27일] 맑다. 홍양현감이 술을 바쳤다. 우수사ㆍ충청수사가 같이 활을 쏘았다. 방답첨사가 공사례를 했다.
9월15일[경인/10월28일] 맑다. 새벽에 충청수사와 여러 장수들과 함께 망궐례를 했다. 새로 급제한 사람들에게 홍패를 나누어 주었다. 충천우후(원유남)가 본도로 돌아갔다.
9월16일[신묘/10월29일] 맑다.
9월17일[임진/10월30일] 맑고 따뜻하다. 여러 장수들과 함께 활을 쏘았다. 우후 이몽구가 둔전에서 수확하는 일로 나갔다.
9월18일[계사/10월31일] 맑고 지나치게 따뜻하다. 종일 활을 쏘았다.
9월19일[갑오/11월1일] 종일 비오다. 홍양현감ㆍ순천부사ㆍ해남현감이 와서 이야기했다.
9월20일[을미/11월2일] 바람 불고 비오다. 홀로 앉아 간밤의 꿈을 기억해 냈다. 꿈에 바다 가운데 외딴 섬이 달려 오다가 눈 앞에 와서 주춤 섰는데, 소리가 우레같아 사방에서는 모두들 놀라 달아나고, 나만은 우뚝 서서 끝내 그것을 구경하니 참으로 장쾌하였다.
9월21일[병신/11월3일] 맑다. 활터 정자에 나가 앉아 공무를 보고 활을 쏘았다. 여러 장수들로 하여금 뛰어넘기를 하게 하고, 또 사병들로 하여금 씨름을 하게 하다가 밤이 깊어서야 헤어졌다.
9월22일[정유/11월4일] 우수사ㆍ장흥부사ㆍ경상우후가 와서 명령을 듣고서 갔다. 원수의 비밀서류가 왔는데, 27일에는 꼭 군사들을 출동시키라는 것이었다.
9월23일[무술/11월5일] 맑으나 바람이 사납다. 아침에 활터 정자에 올라가 공무를 봤다. 경상수사 원균이 군사기밀을 논의하고 갔다. 낙안의 군사 열 한 명과 방답의 수군 마흔 다섯 명을 점검했다.
9월24일[기해/11월6일] 맑고 종일 바람이 세게 불다. 공무를 봤다. 오늘 더그레(號衣)를 나누는데, 전라좌도는 누런 옷 아홉 벌, 전라우도는 붉은 옷 열 벌, 경상도에는 검은 옷 네 벌이었다.
9월25일[경자/11월7일] 맑다. 첨지 김경로는 군사 일흔 명을 거느리고, 첨지 박종남은 군사 육백 명을 거느리고 들어왔다. 조붕도 와서 같이 자면서 밤에 모여 앉아 이야기했다.
9월26일[신축/11월8일] 맑다. 새벽에 곽재우ㆍ김덕령 등이 견내량(거제군 사등면 덕호리)에 이르렀으므로 박춘양을 보내어 건너온 까닭을 물었더니, "수군과 합세할 일로 원수(권율)가 전령하였다"고 하였다.
9월27일[임인/11월9일] 아침에 맑더니 저물녘에 비오다. 아침에 출항하여 포구에 나가자 여러 배들도 일제히 출항하여 적도(거제도 둔덕면) 앞바다에 대었다. 그러니 첨지 곽재우, 충용 김덕령, 별장 한명련ㆍ주몽룡 등이 와서 약속하고, 각각 원하는 곳으로 갈라 보냈다. 저녁에 병사 선거이가 배에 이르렀으므로 본영의 배를 타게 했다.
9월28일[계묘/11월10일] 흐리다. 새벽에 촛불을 밝히고 홀로 앉아 적을 치는 일로 길흉을 점쳤더니 길한 것이 많았다. 흉도 안바다에 진을 쳤다.
9월29일[갑진/11월11일] 맑다. 출항하여 장문포(거제군 장목면 장목리) 앞바다로 마구 쳐들어 가니, 적의 무리는 험준한 곳에 웅거하여 나오지 않는다. 누각을 높이 짓고, 양쪽 봉우리에는 진지를 쌓고서 항전하러 나오지 않는다. 선봉의 적선 두 척을 무찔렀더니, 뭍으로 내려가 도망가 버렸다. 빈 배들만 쳐부수고 불태웠다. 칠천량에서 밤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