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웅이순신 ▒

1594년 8월 선조 27년 갑오년 (충무공 이순신 50세)

천하한량 2007. 5. 5. 17:20

 

 

 

 

8월1일[병오/9월14일] 비오고 바람이 세게 불다. 저녁에 낙안군수(김준계)가 강집(姜緝)을 데려다가 군량 독촉하는 일로 군율에 따라 문초하고 내어 보냈다.
8월2일[정미/9월15일] 비가 퍼붓듯이 내리다. 송희립이 들어왔다.
8월3일[무신/9월16일] 아침에는 흐렸으나 저물녘에야 개었다. 충청수사와 함께 활을 쏘았다.
8월4일[기유/9월17일] 비가 뿌리다가 저녁 나절에 개었다. 경상수사의 군관과 색리들이 명나라 장수를 접대할 때에 여자들에게 떡과 음식물을 이고 오게 한 죄를 처벌했다. 순천부사ㆍ발포만호가 와서 활을 쏘았다.
8월5일[경술/9월18일] 아침에 흐렸다. 오후에 경상수사에게로 가서 이야기하고 한 시간쯤이나 지나서 돌아왔다. 오늘 웅천현감ㆍ소비포권관ㆍ영등포만호와 윤동구 등이 선봉장으로서 여기에 왔다.
8월6일[신해/9월19일] 아침에 맑다가 저물녘에 비오다. 활 열순을 쏘았다. 탐후선이 들어왔다. "어머니께서는 편안하시고 면은 차츰 나아진다"고 했다.
8월7일[임자/9월20일] 종일 비오다.
8월8일[계축/9월21일] 비오다. 조방장 정응운이 들어왔다.
8월9일[갑인/9월22일] 비오다. 우수사, 조방장 정응운, 충청수사, 순천부사, 사도첨사가 같이 이야기했다.
8월10일[을묘/9월23일] 비오다. 장계 초고를 수정했다.
8월11일[병진/9월24일] 종일 비가 많이 내리다.
8월12일[정사/9월25일] 흐리되 비는 아니오다. 저녁 나절에 충청수사ㆍ순천부사ㆍ웅천현감ㆍ소비포권관과 함께 활을 쏘았다.원수의 군관 심준이 전령을 가지고 와서 이곳에 왔는데 군사에 관한 약속을 직접 만나서 논의하자고 하므로 오는 17일에 사천으로 나가 기다리겠다고 하였다.
8월13일[무오/9월26일] 맑다. 심준이 아뢰고 돌아가고, 노윤발도 보냈다. 오전 열 시쯤에 배에서 내려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견내량으로 가서 별도로 날랜 장수들을 뽑아 춘원포(통영군 광도면 예승리) 등지로 가서 적을 엿보아 무찌르게 했다.
8월14일[기미/9월27일] 아침에 흐리다가 저물녘에 비오다. 사도첨사ㆍ소비포권관ㆍ웅천현감 등이 달려와서 보고하기를 "왜선 한척이 춘원포에 정박해 있으므로 불의에 엄습하였더니 왜놈들은 배를 버리고 도망가기에 우리나라 남녀 열 다섯 명과 적의 배만 빼앗아 돌아왔다"고 했다. 오후 두 시 쯤에 진으로 돌아왔다.
8월15일[경신/9월28일] 맑다. 식사를 한 뒤에 출항하여 경상수사 원균과 함께 월명포(통영시 산양면)에 이르러 잤다.
8월16일[신유/9월29일] 맑다. 새벽에 출항하여 소비도에 이르러 정박했다. 아침밥을 먹은 뒤에 돛을 달고 사천 선창(사천군 읍남면 선진리)에 이르니. 기직남이 곤양군수(이광악)와 함께 와 있었다. 그대로 머물러 잤다.
8월17일[임술/9월30일] 흐리다 원수가 오정에 사천에 이르러 군관을 보내어 이야기하자고 했다 그래서 원수 있는 곳으로 가서 교서에 숙배한 뒤에 공사간의 예를 마치고 그대로 함께 이야기하니 오해가 많이 풀리는 빛이다. 원균 수사를 몹시 책망하니 원 수사는 머리를 들지 못하였다.
8월18일[계해/10월1일] 흐리되 비는 아니오다. 식사를 한 뒤에 원수가 청하므로 나아가 이야기하고서 아뢰고 돌아왔다. 경상수사 원균은 취해 드러누워 오지 않으므로, 나만 곤양군수(이광악)ㆍ거제현령ㆍ소비포권관 등과 함께 배를 돌려 삼천포 앞바다로 왔다.
8월19일[갑자/10월2일] 맑다. 새벽에 사량(통양시 사량면)뒤쪽에 이르니 원균 수사는 아직 오지 않았다. 칡을 예순 동이나 캐었는데 원균수사가 그제서야 왔다. 저녁 나절에 출항하여 당포(통영군 산양면 삼덕리)에 이르렀다.
8월20일[을축/10월3일] 맑다. 새벽에 출항하여 진에 이르렀다. 우수사(이억기)와 조방장 정응운이 와서 봤다. 우수사와 여러 장수들과 함께 활을 쏘았다. 충청수사는 어머니의 병환이 위중하여 아뢰고 흥양으로 돌아갔다.
8월21일[병인/10월4일] 맑다. 곤양군수ㆍ사도첨사ㆍ마량첨사ㆍ남호만호ㆍ영등포만호ㆍ회령포만호ㆍ소비포권관이 와서 봤다.
8월22일[정묘/10월5일] 맑다. 경상우우후ㆍ낙안군수ㆍ권양군수ㆍ거제현령이 와서 봤다.
8월23일[무진/10월6일] 맑다. 공무를 보고 그대로 활을 쏘았다.
8월24일[기사/10월7일] 맑다. 각 고을에 수군을 징발하는 일로 박언춘ㆍ김윤ㆍ신경황을 내어 보냈다. 조방장 정응운이 돌아갔다.
8월25일[경오/10월8일] 맑다. 곤양군수ㆍ소비포권관을 불러 와서 같이 이야기하고 활 여섯 순을 쏘았다. 정원명이 들어왔다.
8월26일[신미/10월9일] 맑다. 공무를 보는데 흥양 보자기 막동이란 자가 장흥의 군사 서른 명을 몰래 그의 배에 싣고 도망갔다. 그래서 처형하여 효수했다. 활터 정자에 올라가 활을 쏘았다. 충청우후도 와서 같이 쏘았다.
8월27일[임신/10월10일] 맑다. 우수사와 여러 장수들이 함께 와서 활을 쏘는데, 홍양현감은 술을 바쳤다. 아들 울의 편지를 보니 아내의 병이 위중하다고 했다. 그래서 아들 회를 내 보냈다.
8월28일[계유/10월11일] 비는 조금 오다 마는데 바람이 세게 불다. 진도군수(김만수)가 와서 봤다.
8월29일[갑술/10월12일] 맑으나 된바람이 세게 불다. 공무를 봤다. 남해현감이 들어왔다. 의병장 성응지가 죽었다니 참으로 슬프다.
8월30일[을해/10월13일] 맑고 바람조차 없다. 남해현감 현즙(玄楫)이 와서 봤다. 저녁 나절에 우수사(이억기)ㆍ장흥부사(황세득)ㆍ충청우후(원유남)ㆍ웅천현감(이운룡)ㆍ거제현령(안위)ㆍ소비포권관(이영남)도 왔다. 아내의 병이 몹시 위독하다고 한다. 그러나 나라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다른 일은 생각이 미칠수 없다. 김양간이 서울에서 영의정의 편지와 심충겸(병조판서)의 편지를 가지고 왔다 분개하다는 뜻이 많이 적혀 있다. 원균 수사의 하는 일이 매우 해괴하다. 나더러 머뭇거리며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고 하니, 천년을 두고서 한탄할 일이다. 곤양군수가 병으로 돌아가는데, 보지 못하고 보내어 너무너무 섭섭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