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웅이순신 ▒

1594년 4월 선조 27년 갑오년 (충무공 이순신 50세)

천하한량 2007. 5. 5. 17:01

 

 

 

 

4월1일[기유/5월20일] 일식(日蝕)을 할 것인데 하지 않았다. 장흥부사(황세득)ㆍ진도군수(김만수)ㆍ녹도만호(송여종)가 여제를 지낸다고 아뢰고 돌아갔다. 충청수사가 와서 봤다.
4월2일[경술/5월21일] 맑다. 아침밥을 먹은 뒤에 활터 정자로 올라갔다. 삼가현감과 충청수사와 같이 종일 이야기했다. 조카 해가 들어왔다.
4월3일[신해/5월22일] 맑다. 오늘 여제를 지냈다. 삼도의 군사들에게 술 천 여든 동이를 먹였다. 우수사와 충청수사도 같이 앉아 군사들에게 먹였다.
4월4일[임자/5월23일] 흐리다. 원수의 군관 송홍득과 변홍달이 새로 급제한 홍패(과거 합격증)를 가지고 왔다. 경상우병사의 군관 박의영이 와서 그의 장수의 안부를 전했다. 식사를 한 뒤에 삼가현감이 왔다. 저녁 나절에 활터 정자로 올라가니, 장흥부사가 술과 음식을 가지고 와서 종을 오손도손 이야기하였다.
4월5일[계축/5월24일] 흐리다.
4월6일[갑인/5월25일] 맑다. 별시를 보는 시험장소를 개설하였다. 시험관은 나와 우수사(이억기)ㆍ충청수사(구사직)요, 참시관(시험감독관)은 장흥부사(황세득)ㆍ고성현령(조응도)ㆍ삼가현감(고상안)ㆍ웅천현감(이운룡)으로 시험을 감독하게 하였다.
4월7일[을묘/5월26일] 맑다. 일찍 모여 시험을 받았다.
4월8일[병진/5월27일] 맑다. 몸이 불편한 채 시험장으로 올라 갔다.
4월9일[정사/5월28일] 맑다. 시험을 마치고 방을 내어 붙였다. 조방장 어영담이 세상을 떠났다. 통탄함을 무엇으로 말하랴!
4월10일[무오/5월29일] 흐리다. 순무어사(서성)가 진에 온다는 기별이 먼저 왔다.
4월11일[기미/5월30일] 맑다. 순무어사가 들어온다고 한다. 그래서 문안선을 내어 보냈다.
4월12일[경신/5월31일] 맑다. 순무어사 서성이 내 배에 와서 이야기 했다. 우수사(이억기)ㆍ경상수사(원균)ㆍ충청수사(구사직)가 함께 왔다. 술이 세 순배 돌자 경상수사 원균은 짐짓 술취한 척하고 미친듯이 날뛰며 억지소리를 해대니, 순무어사도 무척 괴이쩍어 했다. 삼가현감이 아뢰고 돌아갔다.
4월13일[신유/6월1일] 맑다. 순무어사가 전쟁 연습하는 것을 보고싶어 한다. 그래서 죽도(통영시 한산면) 바다 가운데로 나가서 연습했다. 선전관 원사표, 금오랑 김제남이 충청수사(구사직)를 잡아 갈 일로 왔다.
4월14일[임술/6월2일] 맑다. 김제남과 함께 자세한 말을 했다. 저녁 나절에 순무어사의 배로 가서 군사기밀을 자세히 의논했다. 잠시 후에 우수사가 오고, 순천부사ㆍ방답첨사ㆍ사도첨사도 아울러왔다 나는 하직하고 배로 돌아왔다.
4월15일[계해/6월3일] 맑다. 충청수사(구사직)가 선전관(원사표)ㆍ금오랑(김제남)ㆍ우수사(이억기)와 함께 왔다. 충처수사 우경 구사직과 작별했다.
4월16일[갑자/6월4일] 맑다. 아침밥을 먹은 뒤에 활터 정자로 올라갔다. 경상수사(원균)의 군관 고경운과 도훈도와 변고에 대비하는 색리ㆍ영리를 잡아다가 지휘에 응하지 않고 적변을 빨리 보고하지 않은 죄로 곤장을 쳤다. 저녁에 송두남이 서울에서 내려왔다. 장계에 따라 낱낱이 명령받은대로 시행했다.
4월17일[을축/6월5일] 맑다. 저녁 나절에 활터 정자로 올라가서 공무를 봤다. 우수사가 와서 봤다. 거제현령(안위)이 급히 와서 보고하는데, "왜선 백 여 척이 본토에서 처음 나와서 절영도로 향한다"고 했다. 저물 무렵에 거제에 살다가 사로 잡혔던 남녀 열 여섯명이 도망하여 돌아왔다.
4월18일[병인/6월6일] 맑다. 새벽에 도망쳐 돌아온 사람이 있는 곳에 가서 적정을 자세히 물으니, 대마도 평의지(종의지)는 웅천땅 입암(진해시 웅천동 제덕리)에 있고, 평행장(소서행장)은 웅포에 있다고 한다. 충청도 신임 수사(이순신), 순천부사, 우수사 우후(이정층), 거제현령(안위)이 왔다.
4월19일[정묘/6월7일] 비오다. 첨지 김경로가 원수부에서 와서 적을 토벌할 대책을 논의하고서 그대로 한 배에서 잤다.
4월20일[무진/6월8일] 종일 가랑비가 오다. 우수사ㆍ충처수사ㆍ장흥부사ㆍ마량첨사가 와서 바둑을 두고 군사 일도 의논했다.
4월21일[기사/6월9일] 비가 오락가락하다. 혼자 봉창 아래 앉아 있어도 저녁내 아무도 오지 않았다 방답첨사(이순신)가 충청수사가 되었으므로, 중기(重記:교대할 때에 넘겨주는 인계인수서)를 수정하는 일로 돌아갔다. 저녁에 김성숙과 곤양군수 이광악이 와서 봤다. 흥양현감(배흥립)도 왔다.
4월22일[경오/6월10일] 맑다. 바람이 시원하여 가을 날씨같다. 첨지 김경로가 돌아갔다. 장계와 조총을 보해 올렸다. 저녁에 장흥부사와 흥양현감이 왔다.
4월23일[신미/6월11일] 맑다. 순천부사(권준)ㆍ흥양현감(배흥립)ㆍ장흥부사(황세득)ㆍ임치첨사(홍견) 등이 왔다. 곤양군수 이광악이 술을 가지고 왔다.
4월24일[임심/6월12일] 맑다. 아침에 서울 편지를 썼다. 영암군수(박흥장)ㆍ마량첨사(강응호)가 와서 봤다. 순천부사가 돌아갔다. 각 항목의 장계를 봉해 올렸다. 경사우수사가 있는 곳에 순찰사 종사관이 왔다고 한다.
4월25일[계유/6월13일] 맑다. 꼭두새벽부터 몸이 불편하여 종일 괴로워했다. 보성군수가 와서 봤다.
4월26일[갑술/6월14일] 맑다. 통증이 극히 심하여 거의 인사불성이 되었다. 곤양군수가 돌아갔다.
4월27일[을해/6월15일] 통증이 차츰 덜하다
4월28일[병자/6월16일] 맑다. 경상수사(원균)와 좌랑 이유함이 와서 봤다. 아들 울이 들어왔다.
4월29일[정축/6월17일] 맑다. 기운이 상쾌하진 것 같다. 오늘 우도에서 삼도의 군사들에게 술을 먹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