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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跋) 발 우곡제 선생 송 홍진사 시권(跋愚谷諸先生送洪進士詩卷) -이색(李穡)-

천하한량 2007. 5. 1. 02:43

발(跋)
 
 
발 우곡제 선생 송 홍진사 시권(跋愚谷諸先生送洪進士詩卷)
 

이색(李穡)

선산(善山) 부계(缶溪)에 홍(洪)씨가 살고 있었는데, 그 어머니를 잘 받들어 효행으로 알려졌다. 그가 송경(松京)에서 학업을 닦고, 벼슬을 하다가 돌아감에 우곡 정(鄭)선생이 시로서 송별할 적에, 문헌공(文憲公 최충(崔沖)) 부자 형제가 국가고시의 주시관(主試官)을 계승 역임한 성대한 사실을 기술하였으니, 대개 그 어머니는 최씨의 10대 손이라는 것이다. 한때 유림의 종주였던 익재(益齋)선생, 급암(及菴) 민(閔)선생, 초은(樵隱) 이(李)선생, 칠원(漆原) 윤상의(尹商議), 단양(丹陽) 우제학(禹提學), 익양(益陽) 윤도사(尹都事), 매계(梅溪) 정정선(鄭旌善), 울진(蔚珍) 심중서(沈中書), 양천(陽川) 허이재(許彛齋)가 모두 그 운(韻) 자를 써서 시를 지었고, 회산(檜山) 황평장(黃平章)이 유학과 도교(道敎) 사이를 왕래하면서, 시를 창화(唱和)하기를 좋아하더니, 또한 홍씨의 일을 아름답게 여겨 시를 지어주니, 이제 26년이 되었다. 홍씨의 이름은 민구(敏求)요, 자는 호고(好古)이니, 익재선생이 명명한 바이다. 금년의 지공거(知貢擧)인 염동정(廉東亭)과 같이 계사년 진사과에 급제하였다. 때문에 그 회시(會試)를 시행함에 있어,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호고가 주사(主司 주시관)을 만났구나. 염동정도 또한 이 노인으로 하여금 그 문하에서 나오게 하려 할 것이요, 또 같은 해의 진사 출신을 굽혀서 문생(門生)으로 삼으려고 할 것은 의심할 것이 없는 일이다. 호고의 마음에도 또한 주사가 혹시 불쌍히 여겨서 거두어 줄 것을 바라지 않을 수 없을 것도, 역시 의심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인심으로써 말하는 것은 공도(公道)요, 하늘을 두고 말하는 것은 명(命 운명)이다. 26년 간의 옛 친분으로도 하루아침에 취사(取舍)하는 속에 참여함을 얻지 못하였던 것이니, 천명이 아니라고 일러야 옳겠는가. 공도가 아니라고 일러야 옳겠는가. 선비가 세상에 나서 젊어서 글을 읽고, 늙어서도 걷어 치우지 않는 것은 과연 무슨 일을 하려는 것인가. 대개 천성의 본원을 알고 득실의 근본에 통달하여 들어가서 자득하지 않음이 없으려는 것이다. 호고의 언어와 기색으로써 보건대 참으로 그 마음속이 유연한 자이요, 참으로 명을 아는 자이다. 내가 요행히 과거에 오른 이래로 두 번이나 시관을 맡았으나, 나와 같은 해에 진사한 사람들이 굴욕을 당하고 간 자도 또한 많았던 것이다. 그 고시의 문권(文券 답안지)을 당하여는 마음을 단정히 하고 눈을 문권에 주시하면서 한결같이 공도로 결단하는 것이니, 어느 겨를에 터럭만치라도 동년고구(同年故舊)에게 생각이 미치겠는가. 동년고구도 생각할 겨를이 없거든 어느 겨를에 한미한 집인지 훈벌의 대가(大家)인지를 생각하겠는가. 호고의 유연히 자득해 함은 의당한 일이요, 동정(同正)의 마음이 곧 나의 마음이니, 유연히 자득해 함은 의당한 일이다. 하물며 나이 44세이니, 다른 날에 성취하는 바를 그 어찌 헤아리랴, 호고의 말에 이르기를, “세상에서 이르기를, 양저(梁?)의 장원이 82세에 비로소 과거에 올랐으되, 또한 능히 공거를 관장한 바 있으니, 내 어찌 감히 스스로 선을 긋고 나가지 아니하랴.” 하였다. 그 말이 장하여 내가 더욱 가상하게 안다. 염동정이 비록 내게 청하지 않더라도 오히려 장차 이를 신장(伸張)하여 말하려 했거든, 하물며 또 서간을 보내어 호고를 위하여 나의 말을 요구함이랴, 내 그러기에 이를 써서 뒷날 주사자가 거자(擧子 시험 보는 선비)를 선발하는 법으로 삼게 하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