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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跋) 발 황벽어록(跋黃蘗語錄) -이색(李穡)-

천하한량 2007. 5. 1. 02:41

발(跋)
 
 
발 황벽어록(跋黃蘗語錄)
 

이색(李穡)

〈황벽전심요결(黃蘗傳心要訣)〉과 〈완릉록(宛陵錄)〉은 공히 38매이니, 당(唐)나라 배휴(裴休)가 편찬한 것이다. 일본(日本)의 승려 윤중암(允中菴)이 널리 전포하려 생각하고, 손수 이를 새긴 끝에, 나의 말을 구하여 발문을 삼으려 하는데, 나는 이 학문에 대개 연구할 겨를이 없었으니 감히 말할 수 없고, 다만 윤중암에 대하여 아는 것만을 쓰려한다. 윤중암이 나이 25세였던 기해년에, 이 어록을 휴대하고 중국에 가서 배우려고 항해하다가, 풍랑에 동요되어 드디어 왕경(王京)으로 오니, 길이 막혀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중간에 병화를 만나 휴대했던 책을 잃었던 것이니, 이제 판각한 것은 보법제선사(報法齊禪師)의 구장본(舊藏本)인 것이다. 불가의 이야기는, “삼대[麻]도 같고 똥덩이도 같고 번개치듯 천둥치듯 한다.” 하니, 사람으로 하여금 놀라 눈을 크게 뜨게 하는데, 오직 이 어록만은 명백하여 깨닫기가 쉽다. 윤중암이 이와 같이 좋아하는 것을 보면, 그 마음을 가히 알 것이다. 그의 스승 견룡산(見龍山)이 도장로(道長老)와 같이 중봉(中峰)을 스승으로 섬겨 도를 얻고, 강남(江南) 도솔사(兜率寺)의 주지로 있다가 바로 본국으로 돌아왔는데, 도중에 연경에 머무르니, 여러 산의 장로들이 이를 존경하여 모두 그에게 미칠 수 없다고 스스로 말하였다. 내가 연경에 있을 때에, 이를 익숙히 들은 바 있다. 그러기 때문에 용산도 또한 범상한 사람이 아님을 알았으니, 윤중암의 연원(淵源)을 가히 볼 수 있고, “먼곳에 있는 사람을 관찰하려면 그 주인한 바로서 한다.” 하였으니, 윤중암이 어느 사람의 집에 객사를 정하였는데, 원정당(元政堂)과 염밀직(廉密直)이었으며 산은 반드시 사람의 발자취가 드물게 이르는 곳을 택하였고, 그 묵희(墨? 서화)에 있어서도 맑고도 기이한 자취가 있었으며, 더욱이 백의선(白衣仙)의 전신법(傳神法 그림을 그리는데 있어 그 신정(神情)을 전달하는 법)을 좋아하였는데, 그 사람됨에 있어서 가장 그 결함을 말할 만한 것이 없는 것이다. 나는 그러기 때문에 즐겨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