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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跋) 제 척약재학음 후(題?若齋學吟後) -이색(李穡)-

천하한량 2007. 5. 1. 02:38

발(跋)
 
 
제 척약재학음 후(題?若齋學吟後)
 

이색(李穡)

급암(及菴) 민(閔)선생의 시의 조어(造語)가 화평 담담하고, 용의(用意)가 정하고 깊었는데, 당시 익재(益齋) 선생과 우곡(愚谷) 선생이 죽헌(竹軒) 정승과 더불어 한 마을에 살고 있어 철동 삼암(鐵洞三菴)이라 불렀으나, 급암은 죽헌의 사위이다. 죽헌이 서거하고 급암이 또 그 집에 와서 사니, 삼암의 칭호가 끊이지 않아서 한 세상이 모두 종주로 높였다. 나는 뒤늦게 났으나, 다행히 평시에 모두 그 분들의 도덕의 광휘에 교접함을 얻어 한 평생 태산 북두같이 귀의하여 사모할 것으로 삼았으니, 다행한 중에 다행한 일이다. 익재 선생이 매양 탄미하여 말하기를, “급암의 시법(詩法)은 스스로 천연의 의치(意致)를 얻었다.” 하고, 또 말하기를, “졸옹(拙翁) 언명보(彦明父)는 성질이 호방 활달하고, 사람들에게 허여함에 적었으나, 유독 급암만을 몹시 사랑하여 외출하면 말고삐를 나란히 하고, 취침하면 침상을 마주하였으며, 집사람에게 있고 없는 것과 생산에 대한 것을 묻지 않았으며, 또 같이 술을 즐기고, 또한 같이 즐겼다.” 하였다. 내가 급암의 문하에 왕래할 때는 급암의 나이가 이미 쇠하였으나, 부드럽고 한아한 군자여서 항상 후진(後進)을 끌어 들이기를 뒤지지나 않을까 두려워했다. 하루는 높은 행차로 누추한 내 집에 굽혀와서 나무 그늘에 앉아 있다가 해가 진 뒤에 갔다. 나는 지금까지 감히 이를 잊지 못한다. 외손 김경지(金敬之)씨가 급암 선생의 집에서 생장하였고, 향학(向學)하게 되어서도 또 급암에게 배워 익재ㆍ우곡에게도 친히 가르침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그 다북쑥이 삼[痲]속에 나면 붙들어 매지 않아도 곧게 클 것은 사세의 필연한 바이고 더구나 타고난 자질이 정수하고 아름다워 제배(?輩)들이 따를 수 없다. 이제 그 〈학음(學吟)〉을 보니, 더욱 그의 시법이 급암과 혹사함을 알겠다. 아, 시를 어찌 쉽게 말하며, 문장이라 이르랴, 학문이라 이르랴. 아, 시를 어찌 쉽게 말하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