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跋)
서 도은시 고후(書陶隱詩藁後)
이색(李穡)
정사년 중동(仲冬 음력 11월) 그믐 전 3일에, 새벽에 일어나 세수하고 머리 빗고 나서, 향불 피우고 꿇어앉아 도은의 시 두어 편을 읽으니, 구슬이 소반 위를 굴러가는 것 같고, 얼음덩이가 산골을 흘러 나오는 것 같으며, 그 구슬과 얼음을 옥병에 넣어둔 것 같아서 훌륭한 시문들과 더불어 마땅히 아울러 전할 것이요, 고인만이 홀로 그 아름다움을 점유하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소년 시절에 시를 읽고도 그 맛을 모르다가 유독 부자(夫子 공자)가 취한 바, “마음의 감사함을 없게 하기 위함이다.” 한 말에 방불하게 상상하여 논년에 이르러도 능히 잊지 못하였다. 도은의 시어의 뜻이 이미 쇄락하여 한 점의 티끌도 없고, 그의 뜻이 오직 이에 있는지라, 족히 사람의 성정(性情)의 바름에 감동을 주어, 무사(無邪)한 곳으로 돌아가게 할 것이다. 이 까닭에 나는 몹시 좋아하여 그 책 뒤에 써서 돌려 보내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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