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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說) 천봉설(千峯說) -이색(李穡)-

천하한량 2007. 5. 1. 01:58

설(說)
 
 
천봉설(千峯說)
 

조계(曹溪) 우상인(雨上人)은 귀곡(龜谷)의 제자인데 그 호(號)를 나에게 물었다. 내가 말하기를, “귀곡이 사람의 이름을 잘 짓는데 어찌 상인에게는 아끼는가. 일운(一雲)으로 하면 어떠한가.” 하였다. 상인이 말하기를, “우리들이 스승 섬기기를 자식이 아비 섬기듯 하는데 이것은 우리 스승의 이름으로 바꾸기를 청한다.”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내가 귀곡과 함께 교유한 지가 또한 오래되었는데, 이름을 잊었으니 내 죄이다. 천봉(千峯)으로 바꾸어보자.” 하였다. 상인이 말하기를, “좋으니 원컨대 그 말을 끝마쳐 달라.” 하였다. 상인이 이미 좋다 하였으니 내가 어떻게 사양하겠는가. 산은 땅에 붙어 있는데, 땅의 형세가 서북쪽이 높기 때문에 천하의 산이 서북에서 일어나서 동남쪽으로 달리어 중국에 두루 퍼졌으니, 우공(禹貢) 삼조(三條)에서 볼 수 있다. 오악(五嶽) 이 비록 존엄하고 높으나 각 방면에 있는 것이 또한 많다. 멈추어서 우뚝 선 것을 그 크고 작음에 따라 ‘봉우리’라고 이름하니, 봉우리가 천하에 벌려있는 것이 또 많을 것이다. 그 ‘천(千)’이라고 말하는 것은 중간 숫자를 든 것 뿐이다. 하나라고 부족한 것이 아니요, 만이라고 남는 것이 아니니 상인이 처하는 곳이 좋도다. 밝은 달이 그 위에 있으면 정(定)에서 나와 차(茶)를 달이니 상인이 맑도다. 어찌 이것을 취하지 않겠는가. 쌓인 눈이 그 아래에 가득하면 정(定)에 들어가 벽(壁)으로 향하니 상인이 높은데, 이것을 취하지 않고서 비[雨]를 취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비는 ‘나’를 이름이다. 내가 천봉(千峯)에 있으면 혜택이 사해에 미치어 싹이 나고 껍질이 터지니 초목이 생장하는 것이요, 아름다운 벼를 많이 심어서 나라를 상서롭게 하고, 그 백성을 넉넉하게 하니 그 이익이 넓다. 상인이 취한 것이 아마도 여기에 있나보다. 아마도 여기에 있나보다. 그러나 비가 항상 내릴 수 없으니 제때에 내리는 것이 좋은 것이다. 우리 대사의 사는 데가 그림 속 같은지라, 내가 푸른 신을 신고 가서 놀아 긴 소나무 아래와 흰 돌 위에 앉아서, 여러 봉우리에 대하여 상인과 더불어 그 뜻을 말하여 높은 봉우리의 소재(所在)를 묘하게 하고, 손을 잡고 올라 임하는 것이 이것이 내 소원이다. 암자의 이름은 보자(普滋)인데, 실로 환옹(幻翁)이 지은 것이라 한다. 상인의 마음이 여기에서 더욱 명백하여 질 것이다. 그러므로 아울러 언급한다.


[주D-001]오악(五嶽) : 중국에서는 태산(泰山)을 동악(東嶽)이라 하고, 형산(衡山)을 남악(南嶽)이라 하고, 화산(華山)을 서악(西嶽)이라 하고, 항산(恒山)을 북악(北嶽)이라 하고, 숭산(嵩山)을 중악(中嶽)이라 하며, 국가적으로 존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