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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說) 경춘설(景春說) -이색(李穡)-

천하한량 2007. 5. 1. 02:04

설(說)
 
 
경춘설(景春說) 
 

내가 관동(關東)을 유람하는데 간성(杆城) 지군(知郡) 박군(朴君) 인을(仁乙)이 자(字)를 구하고 또 말을 청하였다. 내가 늙은지라, 학문이 희미하고 문사(文辭)가 마음대로 되지 않아, 말을 하여도 글을 이루지 못하고, 뜻을 말하여도 온축(蘊蓄)한 데에 이르지 못하니, 어떻게 그 책임을 질 수 있겠는가. 그러나 함께 사원(寺院)에 있었으니 구면(舊面)이 아니라 할 수 없고, 지금 나를 만나 그 정(情)이 매우 성하니 욕(辱)되게 함이 없을 수 없다. 이에 경춘(景春)이라 박군의 자를 짓고 말하기를, “인(仁)은 하늘에 있어서는 생(生)이다.” 하고 사람에 있어서는 심(心)이라 하며, 을(乙)은 방위에서는 동쪽에 있고 물건에서는 나무에 있다. 그러므로 인(仁)은 네 가지 덕(德)을 포괄(包括)하고 을(乙)은 사방의 첫머리가 되니, 곧 상제(上帝)가 거기에서 나서 한 해에 운행하는 것이다. 그 운행하는 것이 동쪽에 있으면 봄이라 하고 남쪽이면 여름이요, 서쪽이면 가을이요 북쪽이면 겨울이다. 겨울이면 다시 봄이 되어 낳고 낳아서 궁하지 않아 만고가 하루 같으니, 봄이 사시의 첫머리가 되는 것이 거짓이 아니요, 인(仁)이 네 덕을 포괄한 것이 빈 말이 아니다. 을(乙)의 뜻을 또 어떻게 말하랴. 사람에게 있어서는 마음을 존양(存養)하는 것이니, 집에 있으면 사랑하고 효도하고 정치를 하면 측은(惻隱)하게 여기는 것이 인(仁)을 미루어 나가는 것이다. 또 그 얼굴이 순수하여지고 등이 수북하여지고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살찌는 것은 인의 발현이요, 봄의 화창한 것이다. 백성이 좇아서 화하는 것이 봄 바람에 서 있는 것 같아서, 화한 기운이 사방으로 통달하여 무궁한 데까지 흐르는데, 하물며 한 고을의 땅이겠는가. 현달하여 위에 있어서 당(唐)의 양춘(陽春)을 펴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니, 그대는 잠심(潛心)할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