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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說) 중영설(仲英說) -이색(李穡)-

천하한량 2007. 5. 1. 01:57

설(說)
 
 
중영설(仲英說) 
 

나옹(懶翁)의 제자에 각웅(覺雄)이란 이가 있는데, 호는 중영(仲英)이다. 일찍이 서기(書記)가 되었는데, 옹이 매우 사랑하였다. 옹이 입적(入寂)한 뒤에 중영의 무리가 6ㆍ7년 동안 부도(浮圖) 옆에 있으며 배회하고 떠나가지 못하였다. 하루는 상당(上黨) 한맹운(韓孟雲)이 쓴 중영(仲英) 두 글자를 가지고 와서 말하기를, “우리 스승이 우리 마음을 편안하게 하였는데, 우리 마음이 스스로 편안하지 못하니 우리 죄이다. 우리 스승은 지공(指空)을 스승으로 하고 또 평산(平山)을 스승으로 하여 달려 다닌 것이 수천리요 또 수천리여서, 발이 부르튼 것도 근심하지 않고, 마침내 마음이 편안한 뒤에 한가하게 돌아왔으니, 삼산(三山)ㆍ이수(二水)의 기록에 바쳤고, 이로움을 베푼 것이 동쪽 땅에 두루하였다. 우리 스승은 두 번 이 세상에 온 사람이지만 달려다니기를 오히려 이렇게 하였거늘, 하물며 우리들이겠는가. 산에 놀고 내를 건너고 스승을 찾고 도(道)를 묻는 것이 시기를 잃을 수가 없으니 선생은 가르침이 있기를 바란다.”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상인의 학문은 나의 아는 바가 아니요, 내가 배운 것은 또 상인이 외도(外道)로 여기는 것이니 내가 장차 어떻게 책임을 맡겠는가.” 하였다. 내가 보건대 새와 짐승과 풀과 나무가 각각 한 태극(太極)이다. 동물 중에 양(陽)을 얻은 것이 웅(雄)이 되고, 식물 중에서 양을 얻은 것이 영(英)이 된다. 대개 수컷이 된 연후에야 암컷이 받을 수 있고, 꽃봉우리가 된 연후에야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대화(大和)를 보합(保合)하여 정고(貞固)한 데로 돌아가서 낳고 낳는 이치가 다함이 없으니, 이것은 나의 학설이다. 대사가 스승으로 삼는 대웅(大雄)이라는 이는 이른바 세존(世尊)인데 삼계(三界)의 스승이 되고, 대사가 구하는 심화(心花)라는 것은 이른바 과덕(果德)이니, 십방찰(十方刹)에 비치어 부처의 마음 마음이 곳에 따라 발현한 것이다. 대사가 그대로 달려다녀야 하겠는가. 대사가 돌아가서 이름과 호를 얼마 안되는 동안이나마 돌이켜 생각하여 얻음이 있으면, 우담발화(優曇鉢花) 가 세상에 출현할 것이나, 버릴 만한 가지와 덩굴이 뭐 있겠는가. 중영은 마땅히 가섭(伽葉)이 빙그레 웃은 것이 실상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을 알 것이니, 꽃 없이 공연히 가지만 꺾는 것을 기다리지 않는 것이 가할 것이다. 힘쓸지어다. 힘쓸지어다.


[주D-001]우담발화(優曇鉢花) : 불경에서는 3천 년에 한 번 꽃이 핀다는 아주 장엄ㆍ화려한 꽃이어서, 이 꽃이 피면 부처가 탄생한다고 하였다.
[주D-002]가섭(伽葉) : 석가여래의 제자로, 석가여래가 꽃을 따서 비비면서 빙그레 웃는 것을 보고, 자기도 따라서 웃고 후에 선(禪)의 교리(敎理)를 밝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