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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說) 순중설(純仲說) -이색(李穡)-

천하한량 2007. 5. 1. 01:53

설(說)
 
 
순중설(純仲說) 
 

갑인과(甲寅科) 장원(狀元) 김정언(金正言)이 말하기를, “내 이름이 자수(子粹)이기 때문에 내 자(字)를 순중(純仲)이라고 하였으니, 선생은 그 뜻을 설명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장차 가슴에 간직하렵니다.”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나는 비유하면 제패(?稗)와 같다. 학문이 박잡하고 말이 망발되니 어떻게 자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가.” 하였다. 순중이 말하기를, “제가 들으니, ‘나타나지 않을까 문왕(文王)의 덕이 순수함이여,’ 하였으니, 이는 문왕이 하늘과 더불어 공(功)이 같은 묘함을 찬양한 것입니다. 배우는 자가 감히 바랄 바는 아니나, 그러나 문왕을 기다려서 일어나는 자는 평범한 백성이니, 저도 어찌 평범한 백성의 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건괘(乾卦) 문언(文言)의 말을 써서 자를 순중(純仲)이라 하였는데, 대개 강(剛)하고 굳세고 순수하고 정(精)한 것은 건(乾)의 덕이니, 건의 덕은 문왕과 같지 않습니까.”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선비는 현인되기를 바라고, 현인은 성인되기를 바라고, 성인은 하늘 같이 되기를 바란다. 순중이 자부하는 것이 또한 얕지 않으니 말이 없을 수 없다.” 하였다.
하늘의 명령이 심원(深遠)하여 쉬지 않으니, 비록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다고는 하지만, 그러나 운행하여 쉬지 않고 커서 빠뜨림이 없는 것이 어찌 주재(主宰)하는 이가 없다고 할 수 있는가. 일월과 성신이 상(象)을 보이는 것과 풍우(風雨)와 상로(霜露)가 가르침이 되는 것이 어찌 일찍이 잠깐이라도 어긴 적이 있는가. 비록 꾸짖는 것이 위에서 보이고 재앙이 아래에서 일어나더라도 또 잠깐일 뿐이요, 그 생성(生成)하고 함육(涵育)하는 조화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하루 같으니, 그 다함이 없는 것과 순일(純一)한 것을 알 수 있다. 건괘의 대상(大象)에 말하기를, “군자(君子)가 이를 보고서 스스로 힘써 쉬지 않는다.” 하였으니, 성인이 사람에게 바라는 것이 깊다 하겠다. 군자가 스스로 힘쓰면 흔들리지 않고 쉬지 않으면 폐하지 않으니, 흔들리지 않고 폐하지 않는 것은 그 지극한 데 이르려는 것이다. 그 지극한 데에 이르면 하늘보다 먼저하여도 하늘이 어기지 않고, 하늘보다 뒤에 하여도 천시(天時)를 받드니, 하늘 같이 되기를 바라는 묘한 것이 이에서 나타난다. 이것은 문왕을 바랄 뿐이 아닌 것이다. 맹자가 말하기를, “문왕은 내 스승이다. 주공이 어찌 나를 속였으랴.” 하였다. 주공이 문왕을 스승으로 하여 《주역》의 괘효(卦爻)를 도왔으니, 이것은 성인이 성인을 스승으로 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악(禮樂)을 말하는 자가 모두 주공에게로 돌린다. 붉은 신[赤?]이 진중한 것을 볼 때면 그 마음이 어찌 순일하지 않겠는가. 문왕의 관저와 인지의 교화가 파부(破斧)ㆍ결장(缺?)의 때에도 행하여 풍(風)의 변한 것이 다시 바른 데로 돌아왔으니, 순일하여 쉬지 않은 소치가 아닌가. 그러므로 말하기를, “역경에 처하기가 어렵다.” 하였다. 주공이 성인으로도 이런 때를 만나지 않았으면 어디로 좇아서 그 통달한 효도를 알았겠는가. 슬프다, 순일한 법이 여기에 있지 않은가. 순중이 장원에 뽑혀 언관(言官)이 되었으니 현달하였다고 할 수 있다. 얼마 있다가 당시에 버려졌으나, 그러나 그 마음은 확고하여 흔들리지 않는다. 내가 아름답게 여겨 자설(字說)을 지어서 권면하니, 부디 지키는 바가 있게 하라. 지킴이 있으면 순일해질 것이다.


[주D-001]제패(?稗) : 제(?)는 쭉정이란 말이고 패는 원래 자귀로 깎아낸 나뭇 가지의 껍질이라는 말이니, 자기 자신을 그런 쓸모 없는 물건에 비유한 것이다.
[주D-002]파부(破斧)ㆍ결장(缺?) : 부는 도끼이고 장(?)은 자루 꽂는 구멍이 네모진 도끼이니, 모두 무기로 쓰던 것이다. 그 무기가 깨어지고 이지러지도록 전쟁에서 고생하였건만, 임금의 교화가 잘 실천되어 딴 마음을 먹지 않았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