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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說) 호연 설 증 정보주 별 (浩然說贈鄭甫州別) -이색(李穡)-

천하한량 2007. 5. 1. 01:45

설(說)
 
 
호연 설 증 정보주 별 (浩然說贈鄭甫州別)
 

호연(浩然)한 기운은 곧 천지의 시초이니, 천지가 그것으로 제 위치에 놓인다. 그것이 만물의 근원이니 만물이 그것으로 발육된다. 오직 이 기운을 함축하여 체(體)가 있다. 그러므로 이 기운이 발하여 용(用)이 되는 것이다. 이 기운은 가장자리도 없고 틈도 없으며, 후박(厚薄)ㆍ청탁(淸濁)ㆍ이적(夷狄)ㆍ중화(中華)의 구별이 없으니, 호연이라 이름하는 것이 또한 옳지 않은가. 요(堯)의 인과 순(舜)의 지혜와 공자의 온량공검양(溫良恭儉讓)은 모두 스스로 강(彊)하여 쉬지 않고, 순일(純一)함이 그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발현된 것이다. 오직 강하기 때문에 능히 천하의 사물에 흔들리지 않으며, 천하의 사물이 저지(沮止)할 수 없기 때문에 쉬지 않으며, 오직 순일하기 때문에 능히 천하의 사물에 섞이지 않으며, 천하의 사물이 간단(間斷)하게 할 수 없으므로 그치지 않는 것이다. 덕이 이것으로 말미암아 높아지고 공이 이것으로 말미암아 드러나서, 당세에 나타나고 후세에 무궁토록 전하는 것이니, 이른바 호연이라는 것이 그 속에 가득찬 것이 아니면 어떻게 이에 이를 수 있겠는가. 옛날의 성인은 마음으로 이것을 보존하고 몸으로 살펴, 행하는 일에 드러나서 말로 운운(云云)할 필요가 없었다. 맹가(孟軻)씨는 이 도(道)가 날마다 쇠퇴해지는 것을 근심하여 그 실마리를 끄집어내어 천하의 선비를 분발시켜, 그 둔한 것을 채찍질하여 날카로운 데로 나아가게 하였으니, 이에 양기(養氣) 즉, 기운을 기른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맹가씨가 어찌 과장하여 말한 것이겠는가마는, 여기에 종사하는 자가 적으니 또한 괴이한 일이다. 보주 자사(甫州刺史) 정군(鄭君)이 나에게 말하기를, “전에 내가 이름을 우(瑀)라고 지었을 때에, 그대가 내 자를 온숙(溫叔)이라 지어 주었는데, 내가 지금 우(寓)로 고쳤으니, 원컨대 그대는 끝까지 은혜를 베풀어 자를 지어 달라.”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크다, 이름이여. 천지 사방을 우(寓)라고 하는데, 천지 사방 가운데 서서 좌편으로도 보고 우편으로도 돌아보니 그것이 크지 않은가. 지극히 작은 몸으로 호연(浩然)한 기운을 길러 천지의 사이에 가득차게 하는 그것이 어렵지 않은가. 그러나 천지와 만물은 일체이므로 사람의 한 몸에 천지와 만물이 갖추어졌으니, 그 몸을 닦는 데는 먼저 그 뜻을 가져야 하고 뜻을 가진 다음에야 기운을 기를 수 있다. 점차로 쉬지 않고 그치지 않는 지경에 이르면, 이른바 조그마한 몸이 위와 아래로 천지와 더불어 함께하게 되어, 초목ㆍ금수와 같이 잠깐 동안이라도 함께 썩지 않고 빛을 천백 년 후까지 끼칠 것이다. 초목ㆍ금수와 더불어 잠깐 동안이라도 썩지 않아서 빛을 천백 년 후까지 끼치는 것은 곧 호연한 기운이 천지 사이에 가득찼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맹가씨는 크고 강하고 곧은 것으로 말하였는데, 지금 그대는 강(彊)하고 순일한 것으로 호연(浩然)을 풀이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그 뜻을 주석(注釋)하고 그 말은 주석하지 않는 것은, 내가 배운 것이 이러하다.” 하였다. 정군의 성품은 닦이고 깨끗하며 강개(慷慨)하여, 당세의 사업에 뜻은 있으나 그 기운을 기르는 데에는 미치지 못함이 있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에 호연(浩然)으로 자를 짓는 것이니, 바라건대, 그 이름대로 실천함이 있을지어다. 보주로 부임함에 있어 글을 지어 주기를 요청하기에, 드디어 써서 가는 데에 전송하는 시(詩)의 머리에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