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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說) 맹양설(孟陽說) -이색(李穡)-

천하한량 2007. 5. 1. 01:41

설(說)
 
 
맹양설(孟陽說)
 

정유년(丁酉年) 과거에 급제한 이좌랑(李佐郞)이 그 친구 정자인(鄭子因)에게 부탁하여, 나에게 자(字)를 지어 달라고 청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이서(李舒)씨는 나의 친구인데 어찌 편지가 없는가. 이것은 예를 잃어버린 것이니, 나는 자(字)에 대하여 말하기 어렵다.” 하였다. 내가 이서씨를 아낀 지가 오래다. 처음에 진사 시험을 볼 때에 갑자기 자기가 지은 과문(科文)을 가지고 내 집에 와서 시정하여 주기를 청하였다. 내가 그 용모를 보니 매우 훌륭하고 그 기운이 청수(淸粹)하므로 마음으로 기뻐하였다. 그의 글을 읽어 보니 정확하고 성실하면서도 속되지 않아 조금만 고치니 크게 어그러지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또 배나 기뻐하였다. 왕래한 지 오래지 않아서 과연 고시관(考試官)의 취한 바가 되어, 몇 해 안 되어 정언(正言)에 제수되었는데, 풍채가 여러 사람들 중에서 뛰어나니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이정언은 반드시 크게 쓰일 것이다.” 하였다. 시골에서 부모를 모시고 있어 나오지 않은 지가 □해나 되었는데, 비록 부르는 명이 있어도 응하지 않으니 세상을 피하는 것과도 같았다. 이제 그 이모부 진씨(陣氏)가 서울로 오는 편에 편지를 써서 내게 고하기를, “지난 번 자인(子因)이 갈 때에 선생한테 청하여 내 자를 지어 오라고 강요하였습니다. 그것은 저와 같은 무리가 감히 직접 선생께 여쭐 처지가 못 되고, 자인이 선생께 사랑을 받고 있으므로 그를 통하여 선생의 말씀을 얻어 나의 영광으로 삼으려 하여 미처 나의 실례된 것을 헤아릴 겨를이 없었던 것입니다. 선생께서 나를 더럽게 여기지 않으시고 그 불가한 까닭을 밝게 말하여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는 선생께서 저를 가르칠만 하다고 여기신 것이니, 얼마나 큰 다행한 일입니까. 원하건대 끝까지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편다는 것은 양기(陽氣)의 일이다. 봄 기운이 발양하면 모든 만물이 드디어 화창하여, 화기가 흘러 넘쳐 간격 없이 두루 젖어드니, 세상에 비유하면 당우(唐虞)의 때가 바로 그것이다. 이때를 당하여는 임금과 신하가 모두 성인이고 예(禮)와 악(樂)이 크게 행하여, 사흉(四凶)의 무리는 마치 작은 구름이 푸른 하늘에 있는 것과 같다가, 그것이 사라진 뒤에는 밝은 해가 중천에 있어서 광채가 찬란한 것과 같으니 그 교화가 입혀지고 덕이 운행됨이 이때에 융성하게 된다. 지금 배우는 자들이 조금만 지식이 있는 이는 반드시 말하기를, “순(舜)은 어떤 사람이며 나는 어떤 사람인가.” 하니, 이서씨로서 요ㆍ순의 세상에 뜻을 두지 않으리라고 나는 믿지 못하겠다. 이에 자를 맹양(孟陽)이라 지으니, 맹양은 그 이름과 자의 뜻대로 실천하기를 생각하는 것이 좋겠다. 만일 말하기를, “나의 이름을 ‘편다’라고 한 것은 거둘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다면, 노씨(老氏)에 가까운 것이니, 이것은 음이요 양이 아니다. 양은 군자이니 바라건대 서로 더불어 힘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