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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說) 백중 설 증 이장원 별(伯中說贈李狀元別) -이색(李穡)-

천하한량 2007. 5. 1. 01:47

설(說)  
 
백중 설 증 이장원 별(伯中說贈李狀元別)
 

금번 경신과(庚申科) 장원(狀元) 백중(伯中) 이문화(李文和)가 장차 시골로 근친(覲親)하려 하여, 나의 말을 청하면서 말하기를, “백중이라는 자(字)의 설(說)을 선배에게 받지 못하였으니, 한 말씀을 받아 가지고 가고자 원합니다. 집에서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하는 데는 장차 무엇을 근본으로 삼아야 합니까.”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그 물음은 과연 크다. 중(中)일 뿐이다.” 하였다. 부모를 잘 섬기는 것은 효(孝)요, 임금에게 옮기면 충(忠)이니, 이름은 비록 다르나 이치는 한 가지다. 이치가 하나인 것은 곧 이른바 중이다. 왜냐하면 대개 사람이 날 때에 건(健)ㆍ순(順)ㆍ오상(五常)의 덕을 갖추었으니 이른바 성(性)이다. 어찌 예부터 충과 효라는 것이 따로 있었겠는가.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아서 거울처럼 비었고 저울처럼 공평한 것은 성(性)의 체(體)이니 그 이름은 중이고, 그것이 감통(感通)하여 구름이 떠가듯 물 흐르듯 하는 것은 성(性)의 용(用)이니, 그 이름은 화(和)이다. 중의 체가 서면 천지가 위치에 놓이고, 화의 용이 행하면 만물이 발육하며, 성인이 천지의 화육(化育)에 참여하여 돕는 미묘한 작용으로, 덕성이 높아지고 인륜이 펴져서 천질(天秩)이 찬연히 밝아지는 것이니, 충ㆍ효ㆍ중ㆍ화가 어찌 이치가 다르겠는가. 순(舜)이 천하로써 부모를 봉양하였으니 그 효도가 크다. 이것은 순의 중(中)이요, 고수(??)가 사람을 죽인다면 업고 달아날 것이니 이것은 순의 중이다. 주공(周公)이 나이 어린 성왕(成王)을 업고 주나라 왕실을 안정시켰으니 그 충성이 지극하다. 이것은 주공의 중이요,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이 유언비어를 퍼뜨리자 3년 동안 동방에 피해 있었으니 이것은 주공의 중이다. 화하기만 하고 중이 못 되면 유하혜(柳下惠)가 될 뿐이요, 중만 잡고 권도를 쓰지 못하면 자막(子莫)이 될 뿐이다. 이것은 임금을 섬기는 것과 어버이를 섬기는 것, 몸을 행하는 것과 사물에 응하는 것이 중과 화일 뿐이니, 중과 화의 극치에 이르고자 하면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왜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것인가, 천리(天理)를 보존하자는 것이요. 신독(愼獨)은 왜 하는 것인가, 인욕(人欲)을 막자는 것이다. 천리를 보존하고 인욕을 막는 것이 모두 지극한 데 이르면, 성인의 학문은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다. 순과 주공은 능히 그 지극한 데 이른 이이고, 유하혜와 자막은 한쪽에 치우친 자이다. 천년 뒤에까지 선비가 학문에 뜻을 둔다면 마땅히 바라고 사모할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지금 어떤 사람이 여러 사람에게 외치기를, “순을 배우기를 원하는가, 주공을 배우기를 원하는가.” 한다면, 반드시 모두 말하기를, “감히 못하겠다.” 할 것이다. “유하혜를 배우기를 원하는가, 자막을 배우기를 원하는가.” 하면 반드시 모두 말하기를, “배우고 싶지 않다.” 할 것이다. 그러나 그 행실을 살펴보면 감히 못한다는 말에 대해서 시행하는 것은 옳지만, 하고 싶지 않다는 말에 이를 많이 볼 수가 없으니, 이것은 내가 밤낮으로 스스로 책망하고 부끄러워하는 바이다. 백중이 장원에 뽑힌 것은 나와 같으나 가르침을 구하고 유익함을 구하여, 탁월하게 큰 중(中)의 지경으로 나아가려 하는 것은 나보다 훨씬 뛰어나니, 훗날의 성취를 헤아릴 수가 있겠는가. 마침 더 위에 매우 곤하여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대강 품고 있던 바를 말한다. 바라건대 백중은 가서 중용을 읽어보라. 감히 이것을 백중에게 주는 것으로 삼노라.


[주D-001]천질(天秩) : 하늘이 규정한 품질(品秩)과 등급(等級)을 말하는데, 예법(禮法)과 제도(制度) 등을 이른다.
[주D-002]순(舜)이 …… 것이니 : 순(舜)은 아들로서 임금이지만 그 아버지 고수는 평민이니, “만일 잘못되어서 고수가 사람을 죽였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하고 물은 데 대하여, “임금의 자리를 버리고 그 아버지를 업고라도 도망할 것이다.”고 대답한 고사이다.
[주D-003]피해 있었으니 : 주 무왕(周武王)이 죽고 그의 아들 성왕(成王)이 7세로 왕이 되었는데, 무왕의 아우인 주공(周公)이 섭정하여, 성왕을 등에 업고 신하들의 조회를 받았다. 그의 형되는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주공이 왕이 되려고 한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리자, 주공은 그의 형들을 정벌하러 동쪽지방으로 가서 평정하였으나, 한편 성왕이 자기를 의심하므로 돌아오지 못하고 3년간을 그대로 그 지방에 머물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