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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說) 지현설(之顯說) -이색(李穡)-

천하한량 2007. 5. 1. 01:39

설(說)
 
 
지현설(之顯說) 
 

문생(門生)인 좌부대언(左副代言) 강은(姜隱)의 자(字)는 지현(之顯)인데, 나에게 자설(字說)을 지어 주기를 청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은(隱)이라는 것은 볼 수 없는 것을 말한다. 그 이치는 은미하나 사물에 나타나는 것은 그 자취가 찬연하니, 은(隱)과 현(顯)이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체(體)와 용(用)은 한 근원인 것이 분명하다. 현(顯)에 대한 설명을 다해 보겠다. 하늘은 높고 땅은 낮은데 만물이 제각기 다르게 흩어져 있어, 일월(日月)과 성신(星辰)이 펼쳐져 나열되어 있고 산악이 솟아 있고 물줄기가 흘러가니, 이는 ‘드러난 것’이라고 말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러한 까닭을 아는 자가 적다. 또 임금을 높이고 신하는 낮추어 백 가지 제도가 닦아 갖추어 지고, 시서(詩書)ㆍ예악(禮樂)이 성하게 일어나며, 전장(典章)과 문물(文物)이 빛나게 꾸며져 있으니, 이 또한 ‘드러난 것’이라고 말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 유래(由來)된 것을 아는 자 또한 적다. 사람의 마음에서 찾아 보면 거울처럼 비어 있고 저울처럼 공평하여, 사물이 앞에 오면 조금도 사(私)가 없으며, 구름이 떠가듯 물이 흐르듯 하여 사물이 지나가면 조금도 막히는 것이 없다. 체는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고, 용은 감촉하면 마침내 통하여 광명하고, 찬란하며 순수하고 독실하다. 은(隱)이라고 하자니 용(用)은 머리부터 꼬리까지 모두 나타나 있고, 현(顯)이라고 하자니 체(體)는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다. 그러므로 “군자의 도는 광대하고도 은미하다.” 하였으니, 귀신(鬼神)의 덕과 연비어약(鳶飛魚躍)의 시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顯)의 도(道)는 내 마음에서 보아서 천덕(天德)에 통달할 뿐이다. 사군자(士君子)는 그 처한 지위대로 행하여 가는 곳마다 자득(自得)하지 않음이 없으며, 가슴 속이 쇄락(?落)한 것이 광풍(光風)ㆍ제월(霽月)과 같아서, 음사(陰邪)가 그 정상(情狀)을 숨기지 못하고 귀(鬼)와 역(域)이 그 형상을 감추지 못할 것이다.
지현(之顯)은 소년으로 과거에 뽑혀 대(臺)와 성(省)을 고루 거쳤으니, 그 행적을 상고해 보면 군자답다. 강하고 굳센 기운은 간사(姦邪)에 부닥치면 곧 꺾이게 하고, 온화하고 부드러운 바탕은 효도와 우애를 도탑게 하여, 서로 감화되게 하여, 평생에 행한 것이 남에게 말하지 못할 것이 없으니, 현(顯)의 도가 행하여진 것이다. 공자는 말하기를, “나더러 숨긴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너희에게 숨김이 없다.” 하였으니, 공자는 밝기가 일월과 같았다. 지현이여, 우러러 사모하고 가슴에 간직할지어다.